체실 비치에서 (영화 특별 한정판, 양장)
이언 매큐언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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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와 플로렌스 두사람은 방금 식을 올렸다.

그들에게는 너무도 많은 계획이 있었다. -p.12

첫눈에 반해 아주 천천히 사랑을 키워가는동안 그들은 누구보다도 멋진 미래를 그리며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사정보다 더욱 심각한 속사정이 있었다. 호텔방을 가득 메운 어색함과 두려움의 입자들. 서로가 눈을 맞추면서도 자꾸만 뜸을 들였던 이유가 기대와 떨림이 아니었다니.

 

사교적인 배려라는 담요가 그들을 결속하는 만큼이나 그들의 차이를 덮어버리고 그들의 눈을 멀게 했기 때문이었다. -p.174

 

섹스와 결혼이 혼연일체였던 시절을 지나 은밀하게 혼전순결이 깨어지고는 있었지만 그럼에도 두사람은 혼전순결을 존중한다. 그렇지만 각자의 이유가 달랐다. 첫경험에 거는 기대와 걱정의 차가 극명하게 갈렸다. 문제가 더 심각했던건 플로렌스였다. 그녀는 섹스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생각만으로도 그것은 역겨운 고통을 유발한다. 그녀의 몸은 본능보다 이성에 더 충실하다. 진실을 얘기할 기회를 놓쳐버린 플로렌스. 어쩌면 그런 상황쯤은 견딜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고 여겼을것이다. 사랑해라는 말을 수없이 속삭이면서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에 대한 사랑은 그녀가 거는 미래처럼 단단히 결속시킬 자신이 있었다. 에드워드가 조금만 협조를 해 준다면.

 

그는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늘 새롭게 굽이치는 파도나 물결과 같은 것임을 깨달아가고 있었고, 바로 지금 그런 상태를 경험하고 있었다. -p.150

 

로큰롤과 일렉트릭 블루스를 즐겨 듣던 에드워드, 클래식에 강렬한 열정을 쏟는 플로렌스. 서로의 동선이 겹치지 않을만큼 취향은 달랐어도 각자 자라온 환경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그래도', '그래서' 였기에 그들은 문제될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고전적이고 보수적인 시대의 흐름을 벗어던지지 못했다. 즉 젊은 에너지의 자유분방함과 격정적인 순간을 첫날밤으로 아껴둔것이다. 아니 미뤄둔것이라고 보아야겠다.

 

자꾸만 다짐하며 마음을 다독이는 플로렌스와 어떻게든 이 상황을 아름답게 리드하고자 한 에드워드. 그녀의 머리속을 지배한 당연한 의식 그리고 형식적인 손놀림. 하지만 먼저 상황을 종료시킨건 에드워드의 지나친 성적 흥분감이었다.

 

그토록 아름답던 체실비치에서 두사람은 시작도 전에 깨어진다. 바닷가의 조약돌처럼 잘게잘게.

 

두사람의 닮은 점이라면 거짓 감정속에서 성장기를 지났다는 점이다.

 

감정적으로 메마른 성장기를 지난 플로렌스. 그녀는 감정의 솔직함보다 형식적 관계를 더 중요시했다. 모든 인간관계의 평정을 위해 언제나 노력은 스스로의 몫이었다. 사랑이라는 껍데기속에서 완벽한 침묵을 택한 그녀. 그런 그녀의 침묵은 바이올린 선율을 통해서만 격정적으로 흘러 터진다. 오로지 섹스에 대해서만 형편없던 그녀. 그렇다고 그녀의 사랑까지 의심할 수 있을까.

 

미쳐버린 엄마를 위해 연극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에드워드. 어머니를 세계를 보호하기 위해, 정상적인 가정의 모습을 지켜내기위해 택한 침묵들. 그는 그곳을 떠나 자신만의 세계에 안착하는 날만을 고대했다.

 

Lie.

서로가 그토록 원했던 이상적인 미래는 그들을 구조하지 못했다. 고통의 신음과 흥분의 신음은 파열음을 만들뿐이었다.

서툴러서 미안했고 솔직한 감정앞에 미안했고

서로가 하나가 되는 순간의 황홀감을 받아들일 수 없어 미안해한다. 혐오와 수치심으로 범벅이 되어버리고 각자 홀로 남겨졌음에도 영원히 그들은 그 미안함으로 놓쳐버린 사랑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을 그리움으로 채우며 살아갈것이다.

 

멀쩡한 성인 두 명이 그런 사건을 서로에게 설명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p.165

 

부드러운 애무와 그 순간 퍼져나가는 짜릿함. 플로렌스에게 거기까지가 마지노선이었다면!

그렇다면 에드워드가 사랑과 인내를 가지고만 있었더라면 그들의 미래는 정말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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