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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입속에서
마이클 모퍼고 지음, 바루 그림, 이원경 옮김 / 밝은미래 / 2020년 10월
평점 :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온 지 아직 75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2차 세계대전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고 우리는 그들이 남긴 여러 증거자료를 통해서 전쟁을 기억할 뿐이다. 어떤 식으로든 전쟁의 참혹함을 대신할 언어는 없겠지만 이렇듯 전쟁의 기억에 놓이는 것만으로도 두렵고 아픈 일이다. 하지만 두 번 다시 그런 어리석은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기억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실화다. 평화주의자였던 한 남자가 비밀 요원이 되어 늑대의 입속에서 살아남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프랜시스 카마츠에게 아흔 번의 해가 뜨고 아흔 번의 해가 졌다. 그가 기억하는 전쟁은 두렵고 무서웠던 감정보다 전쟁으로 먼저 보내야 했던 이들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마음이 더 커 보인다. 자신의 선택으로 혼자서 가정을 지켜야 했던 아내 낸시, 누구보다 용감했던 동생 피터, 작전 중 잃은 동료 폴, 극적으로 그를 구출했던 크리스틴, 그리고 끝까지 함께 살아남은 오귀스트.
누구보다 큰 키와 큰 발을 가졌던 그는 동생 피터와는 생각이 달랐다. 평화주의자로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가려 했으나 전쟁이 동생을 집어삼키자 생각이 바뀌게 된다. 사랑하는 가족과 조국을 지키기 위해 맞서 싸우지 않으면 그들 모두를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처럼 전쟁은 수많은 이들의 생각과 삶을 바꾸어 놓는다.
이제 그는 더 이상 평화주의자가 될 수 없었다. 견딜 수 없는 의무감이 그의 큰 발을 전쟁 속에 들여놓게 된다. 그는 훈련을 받고 레지스탕스 요원으로 다시 태어난다.
비열하고 위험하고 악랄한 자들을 피해 살아남아야만 했던 그들은 서로를 위해 철저히 신분을 숨긴다. 그와 함께 활동하는 동료와 끊임없이 그를 돕는 또 다른 동료들은 나치의 집요한 감시망을 뚫고 작전에 투입되지만 그들의 희생보다 민간인의 희생은 그보다 열배 또는 백배 이상이 되는 걸 목격하기도 한다.
인간성이 말살되는 전쟁터, 죽고 죽이고, 보복에 더한 보복만이 남은 곳에서 죄책감 따위로 흔들릴새가 없다. 꼭 다시 되찾을 거라는 희망 하나로 그의 큰 발은 쉴 틈이 없었다. 언덕을 넘고 산을 오르내리고 강을 건너며 몇 번의 행운이 따르는 동안 희망의 불빛은 조용히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그가 죽음을 불사한 순간보다 그들을 도와준 민간인들의 용기를 더 높이 칭찬하는 모습에 먹먹함이 밀려온다.
전쟁은 수많은 이들의 삶을 빼앗아갔다. 하지만 그는 자녀들에게 동료의 이름을 붙여 삶은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맨 뒷장 그의 사진 속에서는 전쟁의 두려움 따윈 느낄 수 없지만 그의 기억 속을 채웠던 시간들 중 전쟁의 상처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뻥 뚫려버린 가슴한켠의 조각들을 온전히 메우지 못하고 떠났겠지만 그들이 존재했기에 평화는 왔음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어린이 도서로 출간된 만큼 프랜시스의 입장에서 쓴 편지글 형식은 아이들에게 전쟁의 아픔을 전달하기에 더 효과적일듯하다. 전쟁은 그 누구에게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프랜시스 또한 자신의 안전보다 타인의 안전을 위해 큰 희생을 치렀다. 그 모습을 보며 누군가의 희생으로 지금처럼 따스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감사할 따름이다.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서 평화의 소중함을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