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집
래티샤 콜롱바니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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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위해 살았던 그리고 살려는 여자들이 있다.

한 명은 오랜 과거 속 여자이고 한 명은 현재를 살아가는 여자다. 과거 속 여인은 타인을 위해 자신의 삶을 기꺼이 내어 주었고 현재의 여자는 타인에게 맞춘 삶을 살다 이제 막 방향을 전환하려 한다. 과거 속 여인처럼.

 

세상은 균열을 내려는 자와 세상의 균열을 빛으로 채우려는 이들이 있다. 이 이야기는 오래전 프랑스 구세군의 역사와 함께 한다. 구세군의 의미는 '세상을 구원하는 군대'라는 뜻이다. 작가는 프랑스 역사 속 인물인 블랑슈 페롱이란 인물을 모티브로 연대를 이끌어낸다. 독일 총리 메르켈은 어느 연설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성과 연대와 연민이라고 했다.

사회적 약자와 소외받은 이들, 거짓과 편견으로 얼룩진 세상에서 상처받은 이들, 세상의 문밖으로 밀려나버린 이들에게 우리는 왜 따스한 마음 한 조각을 내어주지 못하는 것일까.

 

이야기는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 솔렌의 시선으로 풀어내고 있지만 작가는 그 밑바탕에 오래전 누군가의 희생으로 세워진 '여성 궁전'에 관한 스토리를 숨겨 놓았다.

세상이란 집은 오랫동안 여자들을 위한 곳이 아니었다. 여자들에게 있어 집은 편안함과 안락한 공간이 아닌 주변인들을 위해 희생하는 공간일 뿐이었다. 존재감을 잃어버린 채 살아간 수많은 여성들은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삶을 살았다. 1920년대 그렇게 거리로 내몰린 여자들과 아이들을 위해 버려졌던 건물을 희망으로 채운 이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이 희생으로 닳고 닳을 때까지 타인을 위해 살다 떠났다.

 

블랑슈는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가 따듯한 이불 속이 아니라 찬바람 부는 거리라는 것을 알았다. -p.148

 

아무리 세상이 각박해도 좋은 일은 뜻이 모이기 마련이다. 가끔 뉴스에도 어려운 이들을 익명으로 돕는 자들을 보면 대게 넉넉한 이들보다 그렇지 못한 이들이 더 많다. 이곳 '여성 궁전'은 세상이란 집에서 쫓겨난 이들의 쉼터다. 솔렌은 변호사로 일하다 눈앞에서 끔찍한 일을 겪게 되어 다시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녀에게 내린 처방전이란 고작 봉사활동이 전부다. 여태껏 누군가를 위해 변론은 했을지언정 무료 봉사 따윈 해 본 적이 없던 그녀였지만 대필 작가를 구한다는 말에 이끌려 여성 궁전을 찾게 된다.

 

그곳은 그녀가 늘 보고도 지나쳤던 길가의 거지를 외면했던 순간들처럼 자신과는 동떨어진 세상이었다. 솔렌은 그곳에서 고통받는 여자들의 삶을 보게 된다. 그랬기에 그들에게 다가서는 일이 쉬울 리가 없다. 하지만 악습으로부터, 폭행으로부터, 결핍으로부터, 다름으로부터 도망친 여자들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자 자신이 하는 일이 고작이 아님을 알게된다. 심지어 어떤 여자들은 이름조차도 가질 수 없었다. 누구에게 종속된 채 불리던 여자들. 여성 궁전은 그런 여자들에게 자기만의 방을 내어줌으로써 그들 스스로의 삶을 되찾게 도와주었다.

 

솔렌은 그제서야 대필 작가라는 일의 의미를 찾아낸다. 타인의 입장이 되어 타인의 삶을 바라보게 되자 그제서야 자신을 보게 된 것이다. 상처받은 삶을 다시 상처받은 이들을 위해 떼어주는 일. 그들의 조각난 삶을 다른 이들의 조각과 맞추며 살아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난 너무 무심히 지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길 위에서 아슬아슬한 삶을 살던 여자의 생을 보면서 미국의 어느 유명 가수의 과거가 떠올랐다. 그녀는 노숙생활을 하던 시절, 강간을 피하기 위해 잠을 자지 않으려 했으며 심지어 머리도 짧게 잘라 최대한 성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겪어야 되는 고통들에 분노가 치민다.

 

블랑슈의 숭고한 희생을 보며 신이 지상으로 내려보낸 사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길이 있는 곳에 뜻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해내듯 그녀는 불가능해 보였던 여성 궁전을 되살려 놓았다. 순간 나 스스로 시도조차하지 않고 포기했던 순간들이 떠올라 창피해진다.ㅎ

 

삶에도 질량보존의 법칙이 존재한다. 무언가를 잃으면 다시 무언가를 얻게 됨을 깨달은 솔렌의 삶처럼. 여성 궁전은 더 이상 그녀의 삶에서 괄호 안에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그녀는 그 얻은 무언가 때문에 혼자가 아님을 느끼게 된다. 오랜만에 나누며 사는 삶의 가치를 돌아볼 수 있었다. 깊어가는 가을, 그녀들의 새로운 시작과 함께 해 보는 건 어떨까. 이 책의 원제는 <승리의 여자들>이라고 한다. 그녀들이 세상의 빛을 향해 당당히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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