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 도시소설가, 농부과학자를 만나다
김탁환 지음 / 해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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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같은 사람을 만나는 기분은 어떨까. 나와 닮았지만 그럼에도 나 자신의 단점을 일깨우기도 하고 장점을 승화시켜 나아갈 수 있게 해 주는 사람 말이다. 아마도 든든하지 않을까.

 

참 많은 것들이 사라진다. 그리고 많은 것들이 새로이 생겨난다. 거듭되는 소멸과 생성 속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있다. 그 잊혀가는 것들 중에는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으며 그 가치가 잘 보존되어야 할 것들이 있다. 그것은 자연이자 곧 우리의 생명과 직결되는 것들이다.

 

환경오염에 따른 지구 위기 중에서 앞으로 닥칠 심각한 여기 중 하나가 바로 식량난이다. 이미 예측 시나리오는 뿌려졌고 그에 따른 대처방안을 고민하고 이들도 늘고 있다. 그럼에도 이 고민은 일부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채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심히 흘려보낸다. 소설가 김탁환 님은 이미 그러한 고민들을 끊임없이 해왔기에 그가 농부 과학자 이동현 대표를 통해 삶의 진리를 다시 보게 된 것이다. 글을 쓰는 일이나 씨를 뿌리는 일이 별반 다르지 않음을 깨달으며 계절의 순환 속에서 일어나는 반복적 행위의 가치를 찾아나간다. 그가 지키려 했던 가치와 스스로가 지키고 싶은 가치들을.

 

이 세상에 영원히 더러운 것도 없고 영원히 깨끗한 것도 없으며, 영원히 낮은 이도 없고 영원히 높은 이도 없었다. -p.115

 

'나는 농부입니다.'라며 자신 있게 자신의 묘비에 남길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농업인이라는 자긍심은 개개인의 만족감에서 우러나오기 위해선 나라에서 그만큼 장려를 해야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속에서 농업은 한켠으로 자꾸만 밀려 설자리를 잃어갔다. 개간된 땅이 엉뚱한 용도로 쓰이거나 아파트가 들어서고 과도한 농약 사용으로 땅의 오염화는 가속되고 있으며 영농 후계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소멸돼가는 농업을 살리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이가 이동현 대표다. 그가 동물을 괴롭히고 목숨을 빼앗는 실험을 계속했더라면 어쩌면 그는 성공적으로 자본주의에 안착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윤리적 문제에 부딪혀 여러 번 방향을 선회하면서 얻은 깨달음이 아름다운 것은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곡성에서 발아현미를 연구하기까지 몇 번의 고비를 넘기며 모범 농민상을 받은 농부로 거듭난다. 낯선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과정이 그의 벼의 철학과 닮아 있다.

그는 경험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된다. 비료를 듬뿍 준 벼는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해 태풍에 곧잘 쓰러졌고 그렇지 않은 벼들은 생존을 위해 뿌리를 깊고 넓게 내리기 때문에 쓰러지지 않음을 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보며 참으로 자연만한 스승은 없구나 했다. 이는 곧 아이들의 교육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입에 맞는 환경을 쏙쏙 넣어주다가는 쉽게 나자빠지는 아이로 자랄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작가는 일 년 동안 집필을 중지하고 현장으로 나간다. 가보지 않은 땅을 밟으며 자연의 체취와 사람 사는 냄새를 통해 인생 고민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맛있는 밥에서부터 찾아 나선 이 대표의 삶의 모습은 그 자체가 존경스럽다. 자연 앞에 겸손하고 세상의 흐름에 쫓기지 않는 모습과 더불어 공동체 삶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은 정말 배울 점이 많아 보인다. 그러함 속에서 작가도 자신의 글쓰기 인생을 덧씌워 고민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책은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고 쌀은 우리의 육신을 건강하게 만든다."
 

자신의 분야에 최선을 다한 두 사람은 참으로 닮았다. 품종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전수조사를 한 이 대표나 등장인물의 전부를 보여주기 위해 긴긴 장편을 쓰는 작가. 감정이입을 향한 대상을 국한시키지 않았기에 좋은 글과 좋은 발아현미가 탄생한 것처럼 말이다.

이 대표는 우직함의 관습을 부수며 쌀에 대한 희망을 지키고 있었다. 추수와 파종의 연결고리를 깨달아 더 나은 길을 열어가는 모습에서 나는 제대로 된 가치관을 지니고 있는지 살피게 된다. 쌀 한톨을 생산하는 자보다 물질문명에 잘 편승한 이들이 대우를 받는 시대에서 쌀 한톨과 글쓰기라는 고된 작업의 공통분모를 찾다보면 쌀 한톨의 무게에 마음이 겸허해짐을 느끼게 된다.

 

 

 

 

며칠 전에 가족들 앞에서 채식 선언을 했다. 그럼에도 내심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의심했었다. 허나 <비건과 나란히 걷기>속 이야기들을 곱씹으며 채식에 단단히 맘을 굳힐 수 있게 되었다. 작가님의 모습을 가끔 SNS에서 보면서 참 자연과 닮아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느꼈었는데 그만한 이유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역시 사람의 인생이 얼굴 주름에서 드러남은 추호도 틀린 말이 아니다.

 

흙에 대한 첫 기억을 떠올려보라 해서 쥐어짜보아도 내겐 그럴싸한 기억은 없고 흙바닥에서 새끼손가락이 까이도록 공기놀이한 것밖엔 떠오르지 않는다. ㅋㅋ 이 대표의 첫 기억을 보니 어릴 적부터 남달랐음이 보인다. 흙을 맛 보다니.^^

 

4장 추수 편에서 유독 시선을 끈 부분이 자식 교육에 관한 것이다. 교육은 확실히 부모의 확고한 의지가 뒷받침돼야 한다. 결국 나는 이도 저도 못하고 사교육장으로 아이들을 떠밀고 있지만 땅과 흙을 밟으며 자란 아이들이 스스로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 것이라는 의견에 너무나 동감하기에 부러움과 아쉬움이 동시에 밀려든다.

 

코로나19시대 밀집된 공간보다 교외를 선호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정말 나도 옮기고 싶다.) 적당한 거리는 그만큼 삶의 여유를 가져다준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 또한 이런 것들이다. 이 책은 우리가 놓치고 살았던 가치들을 다시 일깨워 준다. 지금처럼 힘든 시기에 삶의 뿌리를 지탱해 줄 아름다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 팍팍한 세상사가 조금 달리보일지도 모른다.

 

작가님. 기오리 사진 좀 실어주시지. ㅎㅎ 전 믿어요. 기러기와 오리의 사랑으로 탄생한 2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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