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말 - 2,000살 넘은 나무가 알려준 지혜
레이첼 서스만 지음, 김승진 옮김 / 윌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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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21세기 기후재난 시나리오를 보았다. 기온이 상승하고 산불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세상에서 나무들은 얼마나 오래 버텨낼 수 있을까. 호주의 대형 산불, 시베리아의 산불, 무분별한 개발로 뽑혀나가는 산림. 나무의 말에 등장하는 이 오래된 나무들이 한 장의 사진으로 남을까 봐 걱정부터 앞선다.

모든 생명체는 저마다의 생존방식을 지닌다. 어떻게든 자신에게 유리한 형태로 성장하고 살아간다. 이는 동물뿐 아니라 식물에게도 마찬가지다. 식물도 자신을 방어하고 산다. 분노하면 독성을 내뿜기도 한다. 영화 <해프닝>은 분노한 자연이 인류를 위협한다는 설정으로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그 영화를 본 후 바람에 속삭이는 나뭇잎이 아름답게만 들리지는 않았는데 자연의 마지막 경고음 같았달까. 모이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설정이 지금 코로나 사태와 닮아 있다.

모든 생명체는 소멸하고 다시 태어난다. 하지만 식물의 생존 유무는 정확히 가늠하긴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긴긴 수명을 자랑하는 생명체는 마법처럼 신비롭다.

무려 2000천년 이상을 살고 있는 생명체를 보며 세월의 깊이만큼 거칠고 두꺼워진 껍질과 험난한 역사를 상징하는 상처들을 보며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

나무와 우리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상처가 너무 깊지만 않다면 치유될 수 있으며 실제로 치유된다는 점이다. -p.187

미래는 과거에서 온 조각들로 만들어진다는 얘기는 곧 현재는 미래의 자원을 빌려 쓰며 살아간다는 얘기와 비슷하다. 하지만 우린 미래를 너무 당겨쓰고 있다. 마치 영원하고 무한하다고 여기면서 말이다. 당장 누군가의 생명이 끊어지는 것은 슬퍼하면서도 식물이 서서히 죽어가는 현상에 대해선 그냥 지나친다. 이젠 자연을 살뜰히 챙기며 살아야 할 텐데.



우선 생물 위치 지도를 보며 제일 오래된 나무부터 찾아보았다. 역시 시베리아 땅 위에 있었다. 환경오염으로 영구동토층이 녹고 있는 땅. 빈번한 산불로 신음하고 있는 땅. 음... 또 걱정이다.

저자는 일본에서 조몬 삼나무를 만난 뒤 이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조몬 삼나무도 미신 때문에 사람들에게 꽤나 시달려서 주위에 cctv가 있다고 한다. 쯧쯧) 다양한 종의 수명에 대한 고찰 또한 오래된 나무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을 부추기기도 했다. 오랜 생명체 앞에서 와~~~라는 감탄사 다음으로 드는 생각은 무엇일까. 아마도 저자는 그것을 알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예술의 경지 앞에 서면 누구나 겸허하고 소박한 마음이 생겨나지 않을까.


인스타를 하면 세계 곳곳 절경을 만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현실인지 가상세계인지 구분이 안될 만큼 아름다운 경치뿐 아니라 믿을 수 없는 거대 나무나 숲을 보면 지구 곳곳 어딘가 미지의 세계도 존재할 것만 같다. 제일 먼저 등장한 자이언트 세퀘이아는 인 스타 덕에 알고 있는 나무였다. 나무에 비해 사람의 형체가 너무 작아서 처음엔 그 사진을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그 거대한 나무를 보며 외국 땅은 나무 스케일도 다르구나 했던 기억이 있다. 무려 2000년 이상을 지구 깊숙이 뿌리내린 채 살고 있었다니. 나무의 거대함에서 긴 세월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어떤 나무들은 극단적인 생존 조건이었기에 더 빠른 성장 속도를 보인 나무도 있었고 잘 알아볼 수 없는 형체로 생존을 이어가고 있는 나무도 있었다.(사진을 보면서도 나무가 맞나 싶은 정도로 식별이 되지 않았다)

수많은 가지와 뿌리가 뒤엉켜 있는 판도의 사시나무 군락과 휴언 파인 군락지는 아름답다기보다는 스산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고 어린 왕자의 행성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설이 있는 바오밥 나무의 기괴한 모습에 판타지 영화의 세트장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딘가 지하세계로 통하는 문이 있지 않을까. 한번 사라지면 영원히 사라진다는 지하 삼림은 사진으로만 보아선 가늠이 잘되지 않았는데 뭔가 독한 생명의 기운이 느껴진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정치적 이유(이란)로 찾아가지 못한 곳도 있고 중간에 새로운 종의 기사를 접하기도 한다. 사진촬영을 하다 다치기도 하고 맘에 드는 사진을 얻지 못해 다시 찾기도 하는 등 저자는 최대한 생명체의 경이로움을 전하고자 했다.

어느 기사에서 생명체의 나이를 측정하는 방법이 업그레이드가 되면 더 정확한 데이터를 추출할 수 있겠지만 반면 기존의 주장들을 모두 갈아엎어야 하기 때문에 조심스럽다는 기사를 보았다. 박스 허클베리처럼 나이를 만 삼천 살에서 구천 살로 줄어드는 경우처럼 말이다. 그들의 정확한 나이가 어찌 되었든 그들의 존재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우리가 그들의 모습을 문명이라는 껍데기 뒤편으로 밀쳐낸다면 더 이상 그런 경이로운 순간을 경험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사진들을 보면서 우아한 소박함을 보았다. 나무는 그저 묵묵히 지나온 세월을 온몸으로 말하고 있다. 지구라는 행성에 터를 잡고 다른 생명체들과 유기적으로 얽혀 함께 공존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미래의 나아갈 방향을 다시 생각해야 할 때다. 2000살이 넘는 나무가 말하는 건 그런 것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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