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의 부름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77
잭 런던 지음, 임종기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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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콜 오브 와일드>를 먼저 보았다. 예고편을 보면서 개와 인간의 가슴 찡한 모험담일 거라 생각했었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땐 개가 본성을 찾아 자연의 품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로 결론을 내렸다. 물론 영화는 좀 더 부드럽고 드라마틱 하게 그리고 있다. 원작을 읽지 않았다면 난 <야성의 부름>을 그렇게 이해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인간이 가축을 길들이며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동물들의 삶은 인간들로 인해 많이 변화하게 된다. 자연의 법칙이 하나씩 틀어져가고 각자의 삶의 영역이 침범당하면서 동물들은 각자의 본성을 잃어갔다. 어찌 보면 인간은 동물과의 공존을 위해서 이기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대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은 충분히 우리의 목적을 위해 동물을 제멋대로 부려왔고 동물들의 터전을 빼앗는 것도 모자라 인간들의 욕망과 난폭함으로 그들의 목숨을 빼앗아왔다. 나는 <야성의 부름>을 읽는 동안 영화에서 느끼지 못한 인간들의 잔악한 본성 때문에 내내 마음이 아팠다. 동물들의 생존본능과 그들만의 법칙(강한 자만이 살아남는)은 충분히 순응할 수 있다. 인간에게 수많은 얼굴이 존재하듯 그 얼굴에 따라 개는 충직한 일꾼이 되기도 하고 깍듯이 복종하기도 하며 마음을 헤아리는 친구가 되기도 한다. 야성의 부름에 응답한 벅은 그런 면모를 모두 보여주며 독자들의 가슴에 울림을 전하고 있다.

 

 

 

대자연은 인간에게 있어서 투쟁의 장이자 극복해야 할 도전의 대상이었다. <야성의 부름>은 그곳이 혹독한 추위와 싸워야 하는 알래스카였기에 생존을 위한 본능이 강하게 피어날 수밖에 없는 땅이었다. 게다가 욕망의 땅이기도 했다. 노란 돌덩이(금)를 차지하기 위한 인간들의 경쟁은 매서운 추위도 잊게 할 만큼 매력적인 땅이었다. 인간은 도전의 대상이 있어야 성장한다. 그렇듯 벅이 본성을 깨뜨릴 수 있게 된 계기도 힘겨운 야생에 놓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어려움 속에서 더욱 살아나는 생존의 힘. 그 모습을 인간의 삶에 빗대어보면 별반 차이가 없다. 다만 인간은 인간 스스로의 나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타인과 다른 생명체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이 큰 문제이자 숙제다.

 

벅은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대저택의 귀염둥이로 지내다 납치를 당해 알래스카로 팔려간다. 인간의 보살핌 대신 누군가의 몽둥이가 날아오고 명령과 복종만이 강요된다.

벅에게 몽둥이는 그가 감히 반항할 수 없는 두려운 존재였다.

몽둥이의 가르침 덕분에 원시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p.20

 

이곳에서 맞이 한 생존의 법칙은 처음 보는 하얀 눈처럼 모두 생소한 것들이었다. 몽둥이와 엄니의 법칙 아래 맡은 일을 해내야 한다는 걸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우편배달을 위해 이동하는 거리는 너무 길었고 다른 개들과의 관계도 신경을 써야 했다. 차츰 규칙을 터득하고 적자생존의 법칙에 눈을 떠간다. 규율이 깨어지면 누군가의 희생이 따르고 쓰러지면 죽는다는 단순한 진리 외에 야성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알았기에 벅은 다른 개들과는 달리 똑똑하게 버텨나간다. 벅은 때를 기다릴 줄도 아는 영민함을 지녔다. 과거에 사로잡혀 우울해하지도 않았으며 하나씩 깨어나는 본능의 물결에 환희를 느낀다.

 

인간의 상상력의 산물이니만큼 동물들의 삶이 곧 인간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을 수밖에 없다. 썰매를 끄는 개들의 캐릭터에서 인간상이 보인다.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우울증이 온 친구도 있으며 자기 일만 생각하는 친구도 있는 반면 동료들과의 호흡 유지를 위해 눈치껏 발맞추는 친구도 있다. 썰매를 끄는 일은 엄청난 팀웍과 협력을 요하는 일이다. 개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만의 페이스를 조절하며 이동한다. 벅의 놀라운 점이라 하면 지도자로서의 능력이었다. 힘이 아닌 배려로 동료들을 다스릴 줄 알았다.

 

"내 평생 벅 같은 개는 처음이야!"

 

하지만 벅에게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다. 인간들의 무식한 난폭함과 어리석은 이기심 때문에 벅과 동료들은 굶주림과 채찍질에 하나둘 쓰러져간다. 그때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존 손톤이라는 자가 벅을 구하자 벅에게 새로운 삶이 주어지게 된다. 진정으로 자신을 아껴주는 인간에게 진심으로 복종하고 순종적이 된다. 이제 벅은 인간의 사랑(머묾)과 야성의 부름(떠남)이라는 두 갈래 길에 놓이게 된다.

 

벅에게 있어 과거는 아득히 먼 과거였다. 숲속 깊은 곳에서 부르는 소리에 전율이 느껴진다는 것. 이 사실이 점점 중요하게 다가왔다. 그러다 벅은 숲속에서 회색 늑대와 마주하게 된다. 그 둘의 만남 이후 벅은 완전히 야생이 깨어나게 되고 근육들은 자부심으로 똘똘 뭉치게 된다. 손톤의 죽음은 인간과의 고리가 완전히 끊어졌음을 의미한다. 갈등의 한쪽 고리가 끊어지자 야성의 부름의 소리는 더 크게 들려온다. 벅은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이 늑대를 능가하는 전설이 된다.

 

이야기 속에서는 혹독한 추위와 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가는 개도 있고 몽둥이에 굴복하지 않아 맞아죽는 개도 등장한다. 벅의 생애만 본다면 강하고 멋진 이야기지만 동물과 인간의 공존기는 다양한 관점이 있고 생각할 거리도 많다. 꼭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라는 법칙도 없으며 인내심을 가진 자 혹은 운이 좋은 자만이 살아남는다라는 진리도 들어맞지 않는다.

인생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고 어쩌면 형태만 달라졌다 뿐이지 야생 그 자체일는지도 모른다. 좀 더 나아가 연결 짓자면 그렇기에 우리는 때를 기다리고 현재를 살아낼 인내심과 때가 왔을 때 움직일 순발력, 나아가 위기를 극복할 통찰력이 필요한 것이다. 각자의 내재된 본성(숨은 능력)은 주로 위기가 닥쳤을 때 드러난다. 어쩌면 벅처럼 그 이상을 능가할 수도 있다. 내 인생의 소리에 귀를 잘 기울이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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