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아이들 1
에이브러햄 버기즈 지음, 윤정숙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1954년 에티오피아. 한국전에 군사를 보낼만큼 고마운 나라였으나 쿠데타로 공산국이 되면서 질병이 적이 아닌 가난이 적인 된 나라. 독재 정권과 부정부패에 민중의 시름이 끊이지 않는 나라. 무지로 인해 성경은 그저 한켠에 쌓여가는 종이더미인 나라.

그런 땅 위에 세워진 한 선교병원 '미싱'에서 인도인 수녀가 쌍둥이 형제(매리언과 시바)를 낳다가 죽는 일이 벌어진다. 하지만 아버지로 추정되는 미국인 의사 토머스 스톤은 아이들보다 수녀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자취를 감춘다. 그렇게 눈물 속에 태어난 아이들은 아버지의 동료 의사들 손에 길러진다. 마치 운명이었던 것처럼.

 

내 인생이 여기서 시작됐고, 그 때문에 그 일이 벌어졌다고, 그래서 이렇게 끝과 시작이 이어지게 된 거라고 말하려면 먼저 내 인생 역정을 정리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여기 있는 것이다. -p.15

 

이야기는 성장한 쌍둥이 형제 중 매리언이 미스터리로 남아있던 과거의 퍼즐 조각을 맞춰가며 전개된다. 자신들을 놓고 사라져버릴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 임신 사실을 숨길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무엇인지 말도 없이 떠난 엄마. 오래전 그 둘을 이어주었던 시간과 신을 거역하면서까지 숨길 수 없었던 감정의 순간들.

아버지의 동료였지만 썸을 타다 쌍둥이의 부모가 되어버린 헤리와 고시.

하나로 태어나(샴쌍둥이) 무사히 둘이 되었지만 서로를 다 안다고 여겼던 마음에 균열이 일고 새로운 관계 속에서 얽히고설킨 배신과 원망의 소용돌이는 그들을 오랜 시간 멀어져있게 한다. 성장기 그 둘의 운명을 흔들어놓았던 유모의 딸 제닛은 또다시 그 둘의 운명을 흔들어 놓는다. 어찌 보면 제닛은 미워할 수도 마냥 연민을 가질 수도 없는 인물이었다.

 

쿠데타로 인해 아디스를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마침 떠나고 싶기도 했지만) 의사였기에 뉴욕 땅에서 아버지를 처음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운명 앞에 삶과 죽음의 경계가 드리우자 처음 그들이 태어날 때 그들을 죽이려 했던 아버지는 그들을 다시 살려야 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책을 덮고 표지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그들이 하나였던 오래전 시간 속. 붉게 물든 석양 속을 뛰어가는 쌍둥이(매리언과 시바)와 개(쿠출루)의 모습이 짠하게 다가온다. 동화 같던 시간에 인생의 구멍이 생긴 시점이 어쩌면 이때부터가 아닐까. 늘어나는 새끼들을 거둘 수 없다는 이유로 어른들이 쿠출루의 새끼를 잔인하게 죽이고 그 충격으로 시바가 어른들에게 되묻던 그때 말이다.

누가 나나 매리언을 죽여도 잊어버릴 거예요?

오늘 누가 우리를 죽여도 내일이면 잊어버릴 거냐고요?

 

하찮은 생명이 어디 있으며 쉽게 잊힐 죽음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 뒤 시바는 침묵과 무덤덤으로 일관했고 매리언은 평온을 유지하려 애쓴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의 혼란은 그들의 앞길을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행복의 슬리퍼는 너희 존재를 인정하는 것, 너희 모습을 인정하는 것, 너희 가족을 인정하는 것, 너희 재능을 인정하는 것, 너희한테 없는 재능을 인정하는 것이야. -p.58

 

생명, 탄생, 의학, 믿음, 사랑....

2장에서는 수술 장면들이 제법 등장하고 의학과 관련된 분량이 제법 되다 보니 의학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작가의 역량이 십분 발휘된 소설이자 생명에 대한 경이와 따스한 인간미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가슴을 후벼파는 사연 하나 없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에게는 심한 결핍과 상처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이 있기에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다. 헤마의 쌍둥이를 향한 사랑은 두말할 것도 없지만 고시가 돈과 명예보다도 더 소중히 생각했던 것도 헤마를 향한 사랑이었다. 토마스 스톤이 쌍둥이를 버리고 자취를 감춘 이유도 자신의 목숨과도 같았던 수녀의 죽음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본다면 충분히 납득이 된다.

 

그렇듯 쌍둥이들이 슬픔을 이겨낸 원동력은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 때문이었다. 헤리와 고시의 한없는 사랑과 가르침이 매리언을 제자리(일상)로 불러오게 한 것이다. 매리언이 그리워하던 아디스의 땅을 다시 걷을 때의 흥분과 병원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 시바를 보았을 때의 격정들은 그들이 그곳에 존재했기에 가능한 감정들인 것이다. 결코 스스로 배우는 것은 없으며 삶의 구멍도 함께 메꾸어가는 것이다.

 

<눈물의 아이들>은 혼란한 세상 속에서 운명의 고리를 풀어가며 각자의 불행의 슬리퍼를 벗어던지고 평범하고 안온한 일상 속으로 들어가는 이야기이다. 게다가 참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의학의 위대함처럼 사람이 사람의 생명을 살려내는 기술도 아름답지만 한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열정을 하는 모습도 아름답긴 마찬가지다. 선상에서 죽어가는 토마스를 살려 낸 메리 수녀, 쌍둥이들을 선뜻 거두어들인 헤마와 고시. 가난하고 병든 자들 곁을 지키는 미싱 사람들.

그처럼 그들은 변화와 혼돈의 시간속에서 각자 나름대로 배우며 성장해간다. 등장인물의 다양한 출신 배경과 성장 배경 등을 통해 누구도 정체성을 의심받고 배척당하지 않는 포용력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전해진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신념은 운명을 뛰어넘은 사랑일 것이다.

 

인생은 신호로 가득하다. 인생의 비결은 그 신호들을 읽는 법을 아는 데 있다. -2권, p.149

 

인생에서 평범한 날들을 갖는다는 것! 이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매리언은 지나간 과거를 되뇌며 뒤늦게 깨닫는다. 배신감과 증오심으로 내던진 시간들을 다시는 돌려받을 수 없다는 것도.

시바의 빈자리를 쓰다듬으며 매리언은 자신에게 주문을 건다. 이제는 그가 진정 의미 있는 삶 속으로 걸어들어갈 것임을 알기에 참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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