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북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6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지음, 손향숙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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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사 애니 정글북을 보았는가. 난 그 영화를 보며 정글북을 다 안다고 착각했다. 실로 시각과 청각이 주는 즐거움에 감탄사를 내내 연발하며 모글리와 동물 친구들이 선사하는 정글의 감동에 흠뻑 취했었다. 그렇지만 좀 더 폭넓고 깊은 사유를 위해서는 원작을 꼭 읽어야 한다. 이제서야 책을 읽게 돼서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나름 자연과 동물의 소중함을 깊이 느끼고 있는 지금이라서 더 흥미롭고 날카롭게 읽혔다.

 

정글북은 모글리 이야기로만 꽉 채워져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모글리 외 여러 단편들이 있으며 아이들에게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모글리는 좀 더 모험심이 강하고 영웅적인 이미지인듯하다. 천진난만함까진 아니더라도(실사판에서는 인간 세상으로 가지 않고 곰 발루와 지내는 장면이 꽤 천진난만한 장면이었다) 인간과 동물의 따뜻한 공생과 우정(우린 그 아이를 사랑해, 카. -p.58) 게다가 확실한 권선징악이 좋은 메시지를 남기고 있으니까.

 

역시 동화는 어른이 되어 만나면 더 새롭다. 심지어 다르게 읽히기도 한다. 재미와 흥미 위주에서 좀 더 깊게 들어가다 보니 여러모로 다양한 시각으로 등장인물들을 보게 된다. 심지어 악당의 말로에도 동정이 일 때가 있다. 정글북은 특히 작가의 제국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여러 곳에서 불편한 점이 눈에 밟히고 종족 우월주의나 각종 편견들이 눈에 거슬린다. 원숭이를 쓸모없는 종족으로 비하하는 장면은 카스트제도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너무 앞서간 건가? ㅎ

정글의 동물들은 원숭이족과 어울려서는 안 돼. 우리는 원숭이들이 물 마시는 곳에서는 물 마시지 않고. 원숭이들이 사냥하는 곳에서는 사냥하지 않아. 그들이 죽는 곳에서는 죽지도 않지. -p.49

 

하지만 인도를 아끼는 마음도 엿보이고 동물 사랑뿐 아니라 환경이 변화하고 파괴되는 것에 대해서도 안타까워하는 모습도 보인다.

 

 

 

시어칸의 공격으로 고아가 된 모글리는 늑대들의 살가운 보살핌으로 시어칸으로부터 목숨을 구하고 그들 무리에서 성장한다. 물론 늑대 가족과 살기까지 곰 발루와 표범 바키라의 도움이 있었다. 그 둘은 특별히 모글리 선생을 자처하며 정글의 법칙을 가르치며 살뜰히 살핀다. 인간의 연약한 몸뚱이로는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에 숲과 물의 법칙과 사냥 신호에 정글 공용어까지 가르친다. 먹이를 위해서라면 사냥하시오. 하지만 재미로는 허락할 수 없소. -p.44 이는 절제와 생명에 대한 예의를 의미한다.

 

하지만 모든 늑대들이 모글리에게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모글리가 다른 동물들과는 극명한 차이(불을 다룰 줄 알고, 늑대발에서 가시를 뽑을 줄 알기에) 때문에 모글리를 두려워했고 정글에서 떠나주길 원했다. 시어칸의 꾐에 빠져 자유족의 대장 아켈라가 위험해지자 모글리는 정글을 떠나 인간사회로 들어간다. 정글의 삶이 몸에 밴 모글리는 인간의 규율과 제도가 맞지 않았고 그들의 허세와 교만은 우습기 그지없었다. 결국 시어칸 사냥 때문에 인간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어 다시 정글로 쫓겨난다.

망이 짐승과 새들 사이를 오가듯이, 나도 마을과 정글 사이를 오간다. 왜일까? -p.107

 

모글리는 당당하게 정글로 다시 돌아왔다. 보란 듯이 시어칸의 가죽을 밟고 늑대들과 정글에서의 삶을 택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아니 성인이 된 후 결혼까지 했다고 하니 그 뒷이야기가 내심 궁금해진다. 모글리의 짝은? ㅎ

용감한 마음과 공손한 혀, 그게 있으면 정글을 헤치고 어디라도 갈 수 있지. -p.72

 

 

 

동물들의 삶을 최대한 사실적이고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어서 자유족의 우두머리이자 '고독한 늑대' 아켈라의 운명을 보며 시튼의 동물기도 떠올랐다.

그 뒤에 이어지는 네 편의 단편들은 좀 더 교훈적이기도 하고 영웅적이기도 했다. <하얀 물개>편은 백인 우월주의(제가 최초의 하얀 물개예요. 게다가 검은 물개와 하얀 물개를 통틀어, 새로운 섬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유일한 물개죠.-p.128)가 엿보이기는 했으나 인간의 무분별한 동물 사냥을 비판하고 있기도 하다.

 

위대한 전투 이야기라며 운을 떼며 시작하는 <리키티키타비>편은 정말 용맹한 녀석이 등장한다. 몽구스는 주로 코브라를 잡기 위해 가정에서 기른다고 하는데 이 조그만 녀석이 정말로 뱀 사냥꾼인지 확인하고자 찾아보았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뱀을 집어삼키는 영상에 놀라기도 했지만 천적 앞에서 죽은 척 연기를 하는 모습이 으찌나 귀여운지 배꼽 빠지게 웃기도 했다. 참으로 이야기와 잘 맞아떨어지는 용맹하고 영리한 동물인 것 같다. <코끼리들의 투마이>편에서 진정한 코끼리 몰이꾼이 되고자 했던 한 소년의 이야기로 한여름 밤의 꿈처럼 신비롭고 몽환적이게 펼쳐진다. 코끼리를 신성시하는 그들만의 문화도 엿볼 수 있다. <여왕 폐하의 신하들>편에서는 전쟁에서 죄 없이 희생되는 동물들의 모습이 그려져서 가슴 아프기도 했지만 어찌 보면 전쟁의 무모함을 말하는듯하다가도 제국주의가 언뜻 엿보이기도 했다.

 

역시 모글리만이 다가 아니었다. 동물들의 세계에서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세계. 그곳엔 인간 사회가 본받고 깨쳐나가야 할 지혜들이 한가득이다. 이것이야말로 원작의 묘미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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