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봄 헤세 4계 시리즈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마인드큐브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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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5월초치곤 기온이 제법 높아 초여름 날씨를 방불케했다. 오늘도 오후 두시 넘어 강쥐와 산책을 다녀온 뒤 벌써 이렇게 땀이 나면 어쩌냐고 투덜댔다. 이러다간 여름이 바로 시작될 것만 같아 읽다만 <헤르만 헤세, 봄>편을 마저 읽었다. 원래는 봄이 시작되는 시점에 읽으려고 계획했건만 봄이 끝나갈 시점에 부랴부랴 책장을 덮는구나. 아직 봄꽃도 다 피지 않았건만, 아직 새잎이 쪼끄맣게 달린 녀석들도 많고만 벌써 뜨거워지면 우쩌냐고.

 

자연을 바라보기 시작한 사람은 거리를 걸어가면서도 단 일 분도 허비하지 않고 소중한 것들을 바라볼 수 있다.- p. 140

 

걷기가 좋아진 이유는 자연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타면 시원한 바람을 가르는 느낌은 좋지만 자세히 보고픈 풍경을 지나쳐야 해서 요즘은 거의 걷는다. 매년 돌아오는 계절이지만 매 순간 느낌이 다르다. 이번 봄은 코로나19때문에 특히 그랬다.

온 세상이 질병에 무너져가도 봄의 생명은 다시 일어선다. 아마 긴긴 겨울 동안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면 심리적으로 더 고달팠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봄의 기운을 타고 공기가 기지개를 켰기에 우리도 조금은 견뎌낼 수 있지 않았을까.

 

 

 

 

헤세는 봄의 생명력과 푸르름에 대해 뛰어난 관찰력을 지녔다. 물론 천성적으로, 환경적으로 그는 자연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지만 모든 생명체의 순환과 순리를 경이롭게 바라보고 대한다. 나는 이제서야 보이는 것들이 헤세는 일찍부터 관찰하고 온몸으로 느낀 것이다.

 

내가 보지 못했는데도 기적이 이루어져 있고 숲들은 우거져 멀리 산 정상에서 부른다.

-p.63, <유년 시절 가운데> 중에서, 1903년

 

 

 

 

 

책 속에는 그가 쓴 글에서 봄에 관련된 글들만 모여있다. 시, 그림, 소설, 에세이, 편지 속에 비친 봄은 생동감 있고 아름답지만 때론 나이 많은 이들에게는 우울한 계절이라고 말한다. 3,4,5월의 점진적인 변화를 청춘에 빗대어 표현한 짧은 시도 인상적이고 전쟁의 아픔과 허무함을 강조한 문장들도 그 시절의 아픔으로 다가왔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느끼는 봄은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이 스며있다.

 

헤세는 어느 시기에 봄의 모습들이 어떻게 시시각각 변화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풍경이 어때야 아름다운지도 잘 알았다.

오월 초순의 지금과 나중에 또 다시 늦가을이 되면 남쪽 산악 지역의 풍경은 가장 아름다운 날들이 된다. -p.70

그것은 그가 그린 그림을 보면 쉽게 다가온다. 이런 풍경이라면 실제로 보았을 때 훨씬 아름다울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봄이 되면 정원은 분주해진다. 이는 물론 정원을 소유한 자들만이 절대적으로 공감할 이야기이다. 게으른 자의 정원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봄을 맞이하지 못한다. 얼마 전에 읽은 <매우 초록>의 저자도 봄을 맞이하기 위해 겨울의 분주함을 강조했고 나도 정원 있는 집에서 살아본 적도 있기에 헤세의 의도를 알겠다. 정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곳에 삶의 또 다른 깨달음이 숨어 있다.

자연의 선량함에 나의 정성을 곁들이면 새로운 창조자로서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게다가 자연의 가혹한 생태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며 배우기도 한다. 식물의 순환 속에서 때론 참여하고 때론 배제되더라도 말이다.

이는 곧 우리네 삶의 방식으로 이어진다. 사계절을 맞이하고 준비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가짐도 그래야 한다.

 

우리 조상들은 무엇 때문에 시간에 쫓기곤 했던 것일까? -p.135 난 이 구절에서 흠칫했다. 1899년이나 지금이나 세대가 느끼는 것은 똑같구나. 그 시절에도 여가를 즐길 수 없을 만큼 먹고사는 일에 바빴나 보다. 더군다나 그의 눈에도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하나둘 사라져가는 옛 모습이 안타깝게 그려진다.

그들은 자신들과 같은 무리의 사람들과 마지막 남은 침대를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고 그들의 자동차가 내뿜는 먼지 속에서 기침하면서 눈을 깜박거려야 할 그곳에 가 있을 것이다. -p.100

 

매년 봄이 너무 짧다고 투덜대지만 봄이 지나는 과정에 조금만 세심함을 기울이면 땅과 초록빛의 변화가 눈에 잡힐 것이고 바람의 결이 다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겨우내 볼품없어 보이던 마른 가지에서 어김없이 새 순이 돋아나는 걸 보면 생명력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헤세는 봄을 절망에서 깨어남으로 보았고 꽃을 한 해의 기쁨이라고 했다. 의식적으로 체험한 기억은 유년시절의 향기로 남기도 한다. 봄의 걸음에 내 마음의 걸음을 싣고 헤세와 함께하는 여유를 부릴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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