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된 기억의 세계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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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기억을 저장할 수 있는 시간 단위가 10분이라면 책은 없어지는 건가? 우습지만 이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엘리스 죽이기> 시리즈는 딸아이가 유독 좋아했다. 난 아직 읽어보진 못했지만 작가의 신작이라면 두 손들고 환영할 것 같았기에 이번엔 내가 먼저 읽어 보았다. 소설에 던져진 화두 '기억이 10분마다 사라진다면?'은 분명 아이들에게 수많은 가설과 다양한 이야기를 뽑아볼 수 있다. 이야기의 끝에 다다르면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측면과 마주하게 되는데 그런 부분도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어 유익할 것 같았다.

 

요즘은 게시판에 글을 작성할 때 자동 임지 저장 기능이 있다. 몇 분마다 할 건지 선택할 수 있어 혹시나 컴퓨터가 뻗더라도 작성 중이던 글을 살려낼 수 있다. 이런 편리한 기능이 있기에 인간은 단기기억을 살려내느라 머리를 쥐어짜낼 필요가 없어졌다. 대신 인간은 그런 단기기억들을 잘 모아 장기기억으로 저장하는 능력을 지녔다. 그것을 추억이라 부른다.

어느 날 여고생 리노는 방금 전 일어난 일에 대한 기억이 없음을 눈치챈다. 심지어 자신이 적은 메모조차도 머릿속에서 날아가 버린 상태다. 마치 10분 간격으로 포맷이 되고 있다고 할까. 이는 자신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똑같이 일어난다. 뉴스 앵커는 원고를 읽다 식은땀을 흘리고 119구급 대원은 우왕좌왕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원자력발전소 같은 고위험군에 속한 사람들이다. 자칫 잘못하면 끔찍한 결말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요! 이 노트는 생명 다음으로 중요! 진짜라고! -p.56

 

이는 분명 엄청난 재앙이다. 인간에게 지력이 사라진다는 건 퇴화와 소멸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하지만 가설은 여기서 막을 내리지 않는다. 리노가 메모를 하고 원자력 발전소 직원들이 직감으로 위기를 넘겼듯 인간은 생존을 위한 지력을 다시 쥐어짜낸다. 기억이 사라진 차리. 그 틈을 메우는 역할은 마음(직감)뿐일까.

 

 

 

2부에서는 대망각 이후의 삶이 과연 어떠한 양상을 띄게 될까에 대한 다양한 예시가 등장한다. 인간은 단기기억의 소멸로 기억을 외부에 저장할 메모리칩을 개발하여 생존을 이어간다. 심지어 기억을 보관하기 위해 온갖 곳에 메모를 붙여 놓기도 하는데 과연 기억과 메모에 의존한 삶을 진정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망각의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이후의 삶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설령 기존의 가치관에 위배되더라도 역사 속에서 가치관도 진화하고 발전해왔듯이 삶의 방식은 바뀌기 마련이다. 특히 대망각시대 이후의 아이들은 이전 세대와는 다른 시간을 저장한다. 장기기억이 존재하지 않으니 단기기억에 의한 메모리 기억으로 살아갈 뿐이다.

 

옴니버스 식으로 펼쳐지는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상상의 세계를 떠다녀 보았다. 메모리 회사의 실수로 쌍둥이에게 똑같은 기억이 삽입된다는 설정이나 교통사고로 딸의 메모리를 삽입한 아빠의 이야기나 거액의 돈에 자신의 메모리를 대리시험으로 빌려준 남자의 이야기는 기억이란 저장매체와 마음이 하나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기억이 마음일까? -p.157

 

개인에게 기억이 마음대로 바뀐다면 삶의 기준점이 사라진다. 이야기 속에서는 마음까지 분리하는 게 가능하다는 설정이지만 마음을 분리하는 게 가능할 것 같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육체는 단지 기억을 위한 소모품에 불과해지자 육체를 뺏는 이들도 생겨난다. 이는 인간의 삶이 아니다. 저장 장치를 단 기계일 뿐.

 

그렇다면 저장매체가 없이 살아가는 게 가능할까. 문명이 손길이 닿지 않은 지역, 그들이 문명을 피해왔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그 공동체 무리에 도착한 나나는 메모리 없이는 살 수 없음을 말한다. 장기기억을 지니지 않은 사람들(생존에 필요한 축척된 생존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실수를 바로잡을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른다. 윤리적 문제와 부딪힘을 알고 또 누군가는 반문하지만 나나는 외부 장치를 써야 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과거뿐 아니라 미래도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계속 같은 일을 되풀이했어. 문명이 저지른 잘못을 또 다른 문명의 힘으로 억지로 수정하지. 그 결과 또 다른 잘못이 일어나고 이런 일을 되풀이해봤자 소용없는 일이야. 우리는 그 연쇄를 끊겠다고 결심한 거야. 안 그런가? -p.233

 

결국 인류는 인형처럼 누군가의 기억을 이어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기억뿐 아니라 그 사람의 가치관과 사상까지도 옮겨오게 된다고 설정하고 있다. 그것을 영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당에게 메모리를 삽입해놓고 영혼을 불러온다는 설정이 코믹하긴 했다.

하지만 새로운 가치관은 다시 형성된다. 그래야지만 인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기에.

 

이야기가 끝으로 갈수록 김영하의 <작별>과 비스름해져 가는듯하다. 결국 몸뚱이는 없고 목소리만 남은 세상(폐기되지 않은 메모리). 그걸 영혼이라 부르기는 좀 우스운 감도 없잖아 있지만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세계가 전혀 낯선 결말은 아니다. 기억을 저장한 홀로그램이든 로봇이든, 그 상황이 현실이든 가상이든, 중요한 건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있어 무엇이 중요할지 생각해볼 수 있겠다. 인간은 지력 있는 동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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