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초록 - 어쩌면 나의 40대에 대한 이야기
노석미 지음 / 난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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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지만 봄을 만끽하지 못하고 이따 보니 유독 표지에 혹하게 되는 책들이 있다. 이 책도 그러하다. 문학동네 신간 코너는 위험하다. 있는 책이나 열심히 봐야지 했었는데 또 들였다. 오래간만에 그림도 보며 방콕의 답답함을 씻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변명을 덧붙이면서.

 

저자는 홍대 회화과 출신으로 이 책 이전에도 몇 권의 책을 출간한 이력이 있으며 고양이 그림을 많이 그려서 고양이 작가로도 알려져 있다고 한다. 글을 보면 작가의 인생 코드가 보이겠지만 우선 그림, 글, 자연, 전원생활, 고양이... 등등 작가의 인생 코드가 나와 잘 맞는 것 같아 반가웠다. 저자는 자신만의 라이프를 일찍 찾았다. 땅을 찾아 집(개집을 뻥 튀긴 거라고는 하지만 그것도 부럽)을 짓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전원 라이프(고양이를 키우고 잡초를 뽑고 과실나무를 심고 장작을 베는 등)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마냥 부러웠다.

 

운명처럼 자신의 터가 되어준 양평의 보금자리에서의 생활이 어디 말처럼 아름답기만은 할까. 집을 세우면서 도 오래전 땅주인이었던 할아버지의 불편한 심기를 느껴야 했고 시골 인심도 예전 같지 않은지 오래되어 텃새와 편견(결혼 안 한 나이 많은 여자의 독신라이프)에 잘 대처하는 법도 알아야 했으며 나이 많은 이웃들의 충고와 잔소리도 감내해야 한다. 한국의 불필요한 시골 인심이라면 오지랖이 아닐까. 고양이 따위를 왜 키우느냐. 잔디는 뭣하러 심느냐. 길냥이들 밥은 왜 챙기느냐. 지면 흉한데 목련은 왜 심느냐 등등 사소한 참견들에 피곤하기 마련이다. 물론 득이 되는 조언들도 있다. 나무는 심는 위치가 다 다르고 토양에 따라 생사가 갈리기에 이웃분의 조언은 고급 정보다. 그렇듯 오래오래 내 터에서 자알 지내려면 동네 분위기에 맞추며 살아야 한다.

 

나는 이제야, 강가에 서서 아까 흐른 물이 이곳에 없다는 것을 관찰하고, 이것을 자각하고 있는 이 찰나 역시 계속 다른 찰나로 교체된다는 것을 배운다. -p.62

 

 

 

 

그렇게 시작된 전원생활은 사계절과 함께 무르익어간다. 남쪽을 바라보는 집안에서 느끼는 따스한 햇살과 집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저자의 예술적 감성을 깨우기 충분해 보인다. 그 소박한 창으로 보이는 멋들어진 사계절 풍경이 정말 탐날 지경이다.

 

하지만 전원생활은 정말 부지런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저자는 집안 밖을 가꾸는 일부터 농사(소박), 애완묘와 길냥이까지 돌본다. 토마토와 마늘농사에 전문가가 되고 목화까지 도전한다. 게다가 월동준비 리스트를 보니 만만찮다. 계절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니 사계절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던 <리틀 포레스트> 영화도 떠올랐다. 계절 속 저자의 일상이 좀 더 현실적이지만 말이다.

 

전원생활하면 벌레부터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지인은 모기가 싫어 캠핑도 다니지 않는다. 전원은 모기뿐 아니라 파리, 벌, 뱀, 멧돼지 등 천적들이 활개치는 곳이다. 나는 뱀보다 지네가 더 싫었다. 실제로 보면 그 모양새가 정말 끔찍하다.ㅋ 저자는 파리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고 있는데 진짜 귀찮은 존재긴하다. 잡아도 잡아도 어디서 그렇게 들어오는 건지 파리채에 끈끈이까지 총동원했던 그 옛날이 떠오른다.

 

 

 

 

 

유독 맘을 사로잡은 것은 반려묘와의 시간들이다. 오랜 시간 그녀의 혼족라이프를 함께 한 그 친구들은 그녀에게 있어 반려묘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냥이의 눈빛들을 잘 알기에 그녀가 그린 그림 속 냥이들의 눈빛이 참 좋았다. 다섯 마리의 냥이를 하늘나라로 보낸 사연은 남 일 같지 않아 먹먹해졌다. 시간의 유한함을 생각하자 애잔함에 한 번 더 쓰다듬게 된다. 첫째냥에게 뚱뚱하다고 구박 좀 그만해야겠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의 톱니바퀴에서 나만 느슨해지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자연속에서라면 마음만은 여유를 가지고 살 수 있다. 매우 초록하면 초록으로 꽉꽉 들어찬 여름이 떠오르지만 그녀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오전과 오후의 일상이 진한 초록빛같이 싱그럽다.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고 자신만의 유니크한 일상을 살고 있는 그녀의 삶을 응원한다.

 

작가님 그림을 보니 나도 울 냥이를 한번 그려볼까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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