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3
헤르만 헤세 지음, 권혁준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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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인간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당히 속세의 때도 필요하다. 난 경험치 없는 사람들의 설교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한참 마음이 삐딱선일땐 더 그랬다. 인생 경험이 풍부한 이들의 조언이 더 와닿을 수밖에 없는 건 그들도 나와 같은 아픔과 쓰라림을 견뎌냈다는 사실에 내가 위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헤르만 헤세도 인간이 인간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고통 뒤에 느끼는 행복이 더 가치 있고 속세의 어리석음은 속세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음을 말이다.

짧게 요약하자면 한 성직자의 진정한 자아 찾기로 속세에 머물면서 인간의 온갖 욕망과 쾌락을 경험한 뒤 자아반성을 통해 자기실현을 하는 이야기다. 특히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며 집을 떠나왔던 순간을 자신의 아들의 행동을 보며 떠올리게 된다.

너 같은 자식 낳아서 부모 맘 한번 느껴봐라는 말과 어쩜 그리 일맥상통하는지.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부분은 지극히 현실적인 깨달음이다. 아버지 역시 지금 자신이 아들 떄문에 겪고 있는 것과 똑같은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니었을까? -p.153

싯다르타는 카스트제도의 제일 꼭대기층 계급의 삶을 충분히 누리고 있었다. 그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인물이자 장차 브라만의 수장이 될 재목이었다. 하지만 그는 점점 심각한 고뇌에 빠지고 자아에 대한 불만족감은 점차 불만의 싹으로 자라나기 시작한다. 즉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원인과 결과를 맘속 깊이 신뢰하지 못한다. 세상만사에 대한 모든 이치를 배움으로만 터득할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아무리 목욕재계를 해 본들 아무리 명상을 해 본들 그의 삶 자체가 너무나 평온해서 개운하지도 불안이 해소되지 않았다. 즉 씻을 영혼도 긴장의 삶도 그는 가져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한때 보았던 사문의 무리를 떠올리며 자신도 그와 같은 수행이 필요함을 인지한다. 싯다르타는 아버지의 걱정을 뒤로하고 의지대로 밀고 나간다. 싯다르타를 따르던 친구 고빈다도 그를 따른다.

 

 

 

 

싯다르타는 우선 비우기로 한다. 그리고 직접 고통을 참아내며 호흡을 조절한다. 위대한 사문의 가르침에 따라 도를 닦는다. 하지만 그는 부족함을 느낀다. 비천한 자들 즉 인간의 삶 속에서 그들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 마침 부처 고타마에 관한 소문을 들은 두 친구는 다시 길을 떠나 고타마의 아래에 머물지만 싯다르타가 처음 느꼈던 고행의 틈은 계속해서 그의 수행을 방해한다. 그는 다시 떠나기로 한다. 브라만의 싯다르타가 아닌 한 개인의 싯다르타가 되어서.

정말이지 세상 그 어떤 것도 나의 자아만큼, 내가 살아 있다는 이 수수께끼만큼, 내가 다른 모든 사람과 구별되는 남다른 존재라는 수수께끼, 내가 싯다르타라는 이 수수께끼만큼 나를 그토록 상념에 빠지게 한 것은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싯다르타에 대해 이 세상 어떤 것보다도 모르고 있다니! - p.51

자기 자신조차도 모르는 자가 어떻게 인간을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싯다르타는 그 점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고뇌에 찰 때마다 꿈을 꾼다. 꿈은 그를 속세와 가깝게도 하고 멀게도 한다. 꿈을 통해 깨달음의 힌트를 얻기도 한다.

 

나는 사색할 줄 압니다. 나는 기다릴 줄 압니다. 나는 단식할 줄 압니다. -p.73

 

어떠한 불신도 없이 바라본 세상은 아름다웠고 그는 그 속의 일부가 되고자 한다. 강을 건너 도착한 도시에서 그는 새로운 감정들을 경험한다. 대신 그가 늘 하던 사색과 기다림과 단식(욕망)은 최대한 활용하면서. 하지만 아름다운 여인과의 사랑(욕정과 쾌락), 부의 축적(소유와 탐욕)이 늘 그를 따라다니자 그는 점점 세속에 물들어간다.

우리는 세상을 알아갈수록 불안을 떠안고 살며 삶의 즐거움을 잃어간다. 싯다르타도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돈의 노예가 되고 돈 앞에 악랄해진다. 영혼의 타락은 삶의 죽음과도 같았다. 그의 얼굴은 그가 살아온 삶을 고스란히 본뜨고 있었고 그는 그런 스스로의 얼굴을 보며 환멸을 느끼고 다시 떠난다.

 

 

 

 

 

어떠한 목표도 없이 타인의 삶만 쫓다 보면 자신의 본연의 삶의 의미를 잃을 수도 있다. 만족(욕망)의 끝은 없다. 싯다르타는 한없이 부를 축척하고 사랑의 유희를 즐겼음에도 다시 허망함을 느꼈다. 죽음으로써 삶을 놓아버리려 했으나 그제서야 깨닫는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고행에서 느꼈던 틈(경험)의 일부였단걸.

자신을 잘 아는 것과 영리함은 별개다. 영리하지만 나뭇잎 같은 존재도 있다. 고타마처럼 하늘에 떠 있는 별 같은 존재로 살아가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싯다르타는 고타마를 떠올리며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강을 건넌다.

그는 강가에서 고빈다를 만나 인생의 덧없음에 대해 고백하자 삶이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보이게 된다.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은 인생의 첫 시작점으로 그를 데리고 간다.

실수와 실패를 통해 한걸음 나아간다는 진리를 몸소 깨달은 것이다. 어리석었던 과거의 모습도 결국 나임을 자각해야 하고 다시 자신의 방향을 찾아 나아가야 한다. 그가 자신의 과거에 환멸을 느끼고 죽어버렸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다.

강물 앞에서 자신을 내던지려 했지만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깨달음을 찾자 싯다르타는 강에 머무르기로 한다.

그곳에서 강의 가르침에 따라 살고 있는 뱃사공을 그의 마지막 삶의 스승으로 삼는다.

강물은 흐르고 또 흐르고 끊임없이 흘러가지만 언제나 그곳에 존재하며 매 순간 같은 강물이면서도 새로운 강물이라는 것이다! 아, 과연 누가 이것을 파악하고, 이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p.121

비수데바(뱃사공)는 싯다르타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그것은 그가 가진 훌륭한 미덕임을 싯다르타는 깨닫는다. 게다가 비수데바는 자신이 아닌 강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자연에서 삶의 이치를 깨달아야 함을 말하고 있다. 세속에서의 찌든 삶의 해독제 역할은 자연이다. 이 부분에서는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포스터가 떠올랐다.

자연과 더불어 자연이 극복하고 자연이 내어주는 것을 잘 받아들이며 자연의 일부가 되어가는 삶. 그것이 바로 그가 찾고자 한 배움이었다. 강물이 흐르는 모습 속에서 현재가 주는 귀함을 깨닫는다.

하지만 인생사가 물 흐르듯 차분히 흘러가지만은 않는 법. 그에게 아들의 등장은 다시 한번 그를 인생의 고뇌에 빠뜨린다. 그는 뱃사공이 되어 배 안에서 무수한 사람들의 모습을 마주한다. 유치하고 어리석다고 여긴 그들의 삶 속에서 삶의 가치를 다시 보게 된다. 강물의 소리에서 그리움과 외로움, 고통의 소리를 듣게 된다. 이제야 귀 기울여 듣는 법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p.157

그는 배 위에서 고빈다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는 그가 여지껏 살아온 삶이 떠나온 이유였음을 말한다. 지혜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그것이 진리임을 전한다. 지식은 전할 수 있어도, 지혜는 전할 수 없다네. -p.164

싯다르타를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한 강물은 <작은 것들의 신>에서도 깨끗하고 신성한 존재로 언급된다. 강은 세속의 때를 씻어 내주고 지친 인간에게 위안을 준다. 하지만 강의 오염으로 강은 더 이상 인간에게 그런 의미를 부여하지 못함도 떠올랐다. 생명의 순환이 오염(인간의 이기심)으로 막힌다면 끔찍한 결말을 초래하게 될 것이기에.

싯다르타는 종교적 색채를 떠나 한 인간의 내면의 성장을 보여준다. 모든 것은 헛되고 지나친 욕망에서 기인한다. 싯다르타가 중시했던 사색, 기다림, 단식은 이 같은 인간의 욕망을 절제하게 해 주는 행위들이다. 직접 보고 듣고 깨닫는 과정을 통해 현재 내 모습에서 필요한 덕목이 무엇일까 고심해볼 수 있겠다. 지금 나에겐 단식이 필요하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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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youkwon 2020-04-23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자세하면서도 정갈한 책 리뷰 감사드려요~~~~

건빵과 별사탕 2020-04-23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