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 글쓰기로 한계를 극복한 여성 25명의 삶과 철학
장영은 지음 / 민음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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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경제 서적에서 이런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자식에게 물려줄 유산으로 돈(부동산이나 토지)과 교육 중 훗날 어떤 것이 더 큰 자산 가치가 될까 하는 설문이었다. 당장 생각해 보면 빌딩 하나 물려주면 돈이 돈을 벌 수도 있단 생각이 들겠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교육이야말로 더 넓고 더 나은 경제시장을 키울 수 있기에 가치가 더 크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그만큼 교육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교육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찾아내고 향상시킨다. 결과적으로 교육은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내쳐졌던 약자들에게 세상의 빛이 되어 성장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나 과거 여성의 삶은 교육에서 많이 비껴나 있었다. 여성을 옭아매던 제도는 여성의 삶을 사소하고 무가치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여성들은 차별의 그늘에서 머물지 않았다. 그들은 남성들 틈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쓰고 싸우고 살아남았다. 그들 중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조차 없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책은 늘 곁에 두었다. 책은 치유이자 삶의 원동력이었다. 그들은 태생이 작가였듯 쓰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책은 글을 쓰며 세상과 싸워나간 여성작가 25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목차가 참 인상적이다. 글을 쓰는 여자는...이라는 명제에 걸맞은 그들의 삶이 무척 인상 깊게 다가왔다.

 

글을 쓰는 여자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글을 쓰는 여자는 결국 승리한다.

글을 쓰는 여자는 빛난다.

 

그들은 글을 쓰기 위해 거주지를 옮겨 다니기도 했고 부정부패에 맞서다 위험을 감수하기도 했으며 비난과 무시를 견뎌내기 위해 더욱 쓰는 일에 매달렸다.

 

 

 

 

 

 

남성우월주의는 글을 쓰는 여성을 조롱하고 멸시했다. 여성의 사회진출은 여성 혐오와 차별의 공기를 뚫어야만 일어설 수 있었다. 똑똑한 여자=피곤한 여자라는 생각의 밑바탕에는 두려움이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고전도 여자가 읽으면 나쁜 생각으로 둔갑하고, 문학은 여자의 일이 될 수 없다고도 했으며, 사회활동에 뛰어들면 창녀 취급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남자형제들에게 밀리는 경우도 허다했지만 같은 여성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시대의 아이콘이 된 긴스버그는 여성이 여성을 존중해야 된다는 말로 여성운동에 일침을 가했다.

 

신화를 다시 재해석한 볼프는 세상이 어지러울 때마다 희생되었던 여성의 삶을 재조명했다. 1500년대는 소빙하기 시대로 혹독한 추위가 온 세상을 얼려버렸고 페스트로 유럽 인구 절반 이 사라졌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희생양을 필요로 했고 마녀사냥이 자행되었다. 메데이아를 재해석함으로써 그녀는 세상에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당연히 글을 쓰겠다는 일념과 돈은 별개였다.

차별과 편견으로부터 오로지 스스로 혼자 일어서고 온갖 시련 속에서 삶을 지켜온 이들의 모습은 존경 그 이상이다. 영화 <조용한 열정>을 보고 난 뒤 느꼈던 감정이 딱 그랬었다. "여자로 일주일만 살아보라."고 맞받아치던 그녀의 심정이 얼마나 부조리한 세상으로 들끓었을까.

불행한 가정환경에도 글쓰기가 전부였던 뒤라스와 박경리. 그들의 삶은 액운의 연속이었지만 억압과 차별을 견디며 살기 위해 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대부분 문학의 힘을 믿었다. 펜을 든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은 콜레트는 자신의 생애를 소설로 남겼고, 유방암을 극복하고 인권 운동가로 활동한 수전 손택은 문학은 자유의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여권이라 했으며, 나딘 고디머는 작품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고, 헤르타 뮐러는 독재 정권에 대항하는 최적의 방법으로 문학을 선택했다.

 

작년에 읽은 <숨그네>와 <빌러비드>는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이었다. 올해 들어 읽은 <솔로몬의 선택>과 <시녀 이야기> 또한 강렬한 울림을 남겼다. 헤르타 뮐러, 토니 모리슨, 마거릿 애트우드는 글로써 아픈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반문하며 치유의 메세지를 남겼다.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은 글이자 문학이다. 시대의 흐름을 보면 여성작가들이 인정받고 주목받는 기간이 점점 단축됨을 알 수 있지만 지금도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지금 내가 글을 읽고 내 생각에 당당해질 수 있기까지 세상의 벽을 글로 뚫어 온 여성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글을 쓰는 여자는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읽고 싶은 책 리스트가 또 늘었다. 소개된 작품들 중 대표 작품만이라도 꼭 읽어야겠다. 그들의 삶을 기억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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