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들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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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모습들은 그 시대를 반영하며 흘러간다. 반대로 말하자면 여성의 모습을 통해 사회적 상황과 변화를 유추할 수도 있다. 그만큼 여성은 남성과는 달리 섬세하고 민감하고 예민하며 감성적이고 이성적이다. 어쩌면 남성들은 이러한 사실을 태곳적부터 알고 있었기에 종교와 사상으로 억눌렀던 것은 아닐까.

 

과거 역사에서 여성의 출산 즉 생산능력을 더 중시하던 때가 있었다. 한차례 큰 전쟁을 치르고 나면 급격히 인구가 감소한다. 그럴 때면 아주 은밀히 출산장려를 독려하며 여성의 사회진출을 막는 전략을 폈다고 한다. 이는 전체주의 사상을 주입시키는 과정에서도 있었다.

 

전작 <시녀 이야기>는 워낙 화재성을 몰고 왔던 작품이기에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대충의 줄거리를 알고 있는 이들이 많다. 더군다나 충격적인 소재와 tv 매체의 절묘한 조합, 화려한 붉은 컬러가 주는 영상미 때문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그런 이유로 독자들은 결말에 대한 궁금증이 극에 달했고 많은 이들이 질문을 쏟아냈다고 한다. 그래서 마거릿 애트우드는 뭐, 거의 다 여러분의 질문 덕이다!라며 후속작 증인들의 공을 독자들에게 돌리고 있다.

 

길리어드는 철저한 전체주의 사회를 표방하고 있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기형아 출산율이 늘어나자 어느 날 갑자기 여성들은 자신들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다. 남성들은 여자들의 이기적인 선택에 의해 줄어드는 출생률과 과도한 방종 및 과도한 허기로 인해 절제가 없어진 사회에서 절제를 위해 여자들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애초에 여자들에게 평등을 약속한 것 자체가 잔인한 짓이었어요. -p.256

 

우선 전편의 내용을 알면서도 내내 불쾌하고 화가 나는 감정을 다스리기가 힘들었다. 작가는 어떻게 성과 권력을 하나로 묶을 생각을 했으며 이렇게 잔인한 설정을 구상한 것일까. 더 이상 여자들에게는 그들을 나타내고 드러 낼 이름도, 문자도, 자유도 없다. 여자는 그저 정상적인 아이를 생산할 수 있는 자궁만 있으면 된다. 구멍의 역할은 들고나는 것이다. 여자는 그 역할만 충실히 하면 된다. 아~~ 정말 소름 끼치고 불쾌하기 짝이 없다. 원죄! 즉 태어날 때부터 여자인 몸뚱이는 남자의 욕정을 취하게 하기에 처음부터 온실 속 화초 같은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반항적인 여자는 간음하는 음부가 될 뿐이다. 그저 한 떨기 꽃이 되어 최고의 신붓감으로 정상아를 순산할 수 있기만 하면 된다. 사회에서 남녀의 역할은 정확히 구분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전편과는 달리 증언들에서는 길리어드 체재가 붕괴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좀 더 희망을 안고 보았다. 붉은색이 아닌 안정감을 주는 녹색 컬러의 표지를 펼쳐보니 두 여인이 보인다. 모자를 쓴 여인과 머리를 질끈 동여 맨 두 여인. 띠지를 들춰내야만 볼 수 있는 소녀들의 내면까지도. 그녀들은 길리어드를 붕괴시킬 중추적 역할을 수행한다.

 

 

 

 

 

<증언들>은 세 명의 각기 다른 여성의 녹취록과 수기로 이루어져 있다. 여성들의 삶 전반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제일 윗 계급인 '아주머니'의 리디아 아주머니, 부모를 한순간에 잃은 캐나다 소녀 데이지, 이 책의 표지 모델이자 길리어드의 소녀 아그네스.

 

그들은 각자의 공간에서 듣고 보고 경험한 자신들의 삶의 과정을 증언하고 있다. 그들의 증언은 길리어드의 시작점부터 다시 올라간다. 리디아 아주머니가 어떻게 아주머니 계급이 되어 그 자리에까지 올랐는지의 과정을 보며 엘리트 집단이라도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훈련과정을 통해 얼마든지 괴물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게 된다. 하지만 여성은 남성보다 덜 본능적이고 전투적이다. 그녀는 인간 본성의 밑바닥과 최상위 모든 것들을 맛보았다. 길리어드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려면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고 사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자아를 찾는 일 따위가 무의미하다는 걸 알지만 도저히 떨쳐버릴 수는 없다.

 

나는 어디에나 있고 아무 데도 없다. - p.49

 

 

결국 리디아 아주머니는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마치 모든 여성들에게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마음으로 길리어드의 눈을 속이고 또 속이며 더 철저하고 똑똑하게 속이는 작업에 착수한다. 그것이 단 1퍼센트의 가능성일지라도! 희망을 걸어본다.

 

 

 

 

 

길리어드에서 여성은 아주머니, 시녀, 소녀, 아내들로 위치가 나뉘며 그들이 입는 옷 색깔로 구분 짓는다. 녹색 옷은 결혼을 앞둔 소녀의 복장으로 아그네스도 곧 녹색 옷을 입을 것이다. 대부분 철저한 세뇌교육 탓에 결혼을 당연시 받아들이지만 아그네스는 출생의 비밀과 급우의 자살 소동 등으로 혼란에 빠진다. 무엇보다 성인 여성의 몸이 할 수 있는 역할의 가치에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 피하거나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체념할 때쯤 리디아 아주머니가 찾아온다.

 

반길리어드 시위에 참가하며 목소리를 높였던 데이지는 갑작스러운 부모님의 피살과 출생의 비밀이 한꺼번에 찾아온다. 길리어드 안팎을 잇고 있는 끈이 자신임을 안 순간 더 이상의 선택지가 없음을 깨닫는다. 엄마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과 엄마가 못다 한 임무에 대한 연장선에 서서 메이데이 요원들의 지시에 따라 진주 소녀(선교사업 임무를 지닌) 들과 접촉 후 길리어드로 숨어들게 된다.

 

 

 

 

 

사상과 종교가 변질되어 인간을 타락시키거나 인간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교묘하게 다뤄지기도 한다. 길리어드에서 하느님과 성경 말씀은 여자들의 옭아매기에 최적의 시스템이었다. '아주머니'같은 충직한 성직자들이 필요하고 모든 공은 하느님을 향한다. 운명에 순응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열두 조각으로 잘린 첩'과 같은 성경 말씀으로 공포심을 조장한다. 그렇게 지상에 세운 하느님이라는 전체주의는 보이지 않는 '눈'의 철저한 감시를 받게 된다. 하지만 리디아 아주머니는 알고 있었다. 자신만이 그 견고한 전체주의를 흔들 수 있는 적임자임을.

 

철저히 길리어드의 체제에 길들여진 여자들은 순종적 삶에 익숙해지지만 그 속에서도 질투와 시기로 서로를 경계한다. 누가 더 높은 계급에게 간택 받는지, 누가 더 보란 듯이 정상아를 생산하는지, 누가 더 길리어드에 복종하고 충성하는 지로 말이다. 음모와 살인이 조용히 일어나서 죽은 이들의 영혼을 소리 없이 데려간다. 저드 사령관의 성적 취향 때문에 조용히 죽어나가는 아내들을 보면서 버려지는 영혼들이 불쌍했다.

 

리디아 아주머니는 이 모든 사건사고들을 보며 심경의 변화를 느꼈을 것이다. 길리어드 이전의 그녀의 직업은 가정법원 판사였다. 여성들의 성 착취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기에 베카와 아그네스를 아르두아 홀로 데려온 것이다. 계획대로 데이지까지 아르두아 홀에 오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움직인다. 비밀 파일들은 하나씩 열리고 긴장과 두려움은 배가 된다. 제아무리 완벽한 계획이라도 타이밍은 한 번뿐이다. 이제부터 모든 속임수와 친해져야 한다. 장벽에 내걸리거나 총알받이가 되는 두려움보다 더 무서운 건, 이 모든 것들이 묻힌 채 지속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마치 꽁꽁 숨은 출생의 비밀들처럼.

 

전편에서 길리어드가 저지르는 만행 때문에 누적된 심적 스트레가 어느 정도 풀린다. 그 중심인물이 철면피 리디아 아주머니였다는 사실에 연민도 생긴다. 그녀는 안면 근육이 저릴 만큼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분노의 통증에 속은 타들어갔으리라. 석상은 본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우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위해 헌신한 인물들을 위해 세워지는 것이다. 한 사람의 올바른 판단이 더할 나위 없이 귀하게 여겨지는 이야기였다. 더 이상의 디스토피아는 나오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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