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 - 나태주 시집
나태주 지음 / 열림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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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낯익었다. 지난 가을 내 휴대폰 배경화면을 꽉 메우고 있던 그림이었다. 지난 가을 전시회 때 오아물 루(Oamul Lu)의 작품을 처음 만났었다. 그때 많은 관람객이 그의 그림 앞에서 오래 머무르는 모습을 보며 다들 느끼는 게 비슷하구나 했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작가의 자유로운 관찰과 감성을 들여다보며 낭만을 걷는다라는 것이 이런 것임을 느꼈었다. 그랬기에 표지만으로도 이 시집을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냥 줍는 것이다

 

길거리나 사람들 사이에

버려진 채 빛나는

마음의 보석들

 

책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시는 입으로 전해져왔기에 시는 읽고 쓰는 능력보다 훨씬 앞서는 것이다. 그래서 문학보다 시는 우리의 감성을 깨우는데 더 필요한 것이다. 요즘처럼 시를 글로만 만나는 시대에 많은 이들이 점점 그 감흥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도 있다. 나조차도 시집을 몇 권씩 사들이지만 정작 외우고 있는 시가 거의 없으니.(안 외워진다는 핑계를 대긴 하지만 ㅎ)

 

시보다 문학을 더 들여다보아서 시를 접할 기회가 잘 없었지만 나를 풀꽃 앞으로 끌어당겼던 그의 유명한 시 때문에 50주년 기념 시집은 읽고 싶었다. 요즘 출간되는 시를 몇 편 읽으며 시가 어렵게 느껴지는 순간도 더러 있었다. 허나 나태주의 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자연 속에서, 우리의 일상에서 건져 올린 말들은 따뜻하고 말랑하다. 시인의 시선이 가닿는 곳에는 시인의 살뜰한 돌봄이 느껴진다.

 

 

 

 

 

총 214편의 시가 실려있다. 1부는 신작 시 100편, 2부는 독자들이 사랑하는 애송 시(대표 시) 49편, 3부는 나태주 시인이 사랑하는 시 65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간결한 시들이 많아서 그만큼 더 공감할 수 있었다. 읽다 보면 일상의 내 심정을 대신 누가 말해주는 느낌이랄까. 세상을 향해 불편했던 심정과 나만 생각했던 이기적인 마음이 조금씩 풀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작가의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에 내 마음도 선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2020년대 키워드가 외로움이라고 한다. 군중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이든, 고립된 외로움이든 현대인들에게 외로움은 위험하다. 그래서였을까. 시인은 '너와 함께라면'이라고 먼저 운을 뗀다. 이제는 진짜 사람을 만나 가슴이 벅찬 하루를 즐겨야 한다는 사실을 시인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예전에 어느 예능 프로에서 순례길에 오른 70대 노인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인생은 정말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았었다.

그때 정말 별생각 없이 보고 있다가 울컥함이 밀려왔었다. <살아줘서 고맙습니다>를 읽으며 그때의 감정을 또 느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라는 말에서 전해오는 진심은 세상에 대한 관점이 어때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풍경

 

이 그림에서

당신을 빼낸다면

그것이 내 최악의 인생입니다.

 

 

네가 살아있어 고맙고, 내가 살아있어 고맙고, 네가 곁에 있어 더 고마운. 좋다고 하니 좋고, 좋아서 좋은. 조그만 이야기, 가벼운 이야기, 우리들의 이야기, 서로의 이야기만을 나누기에도 모자란 시간임을. 훗날 나라는 사람이 너에게도 살아갈 이유가 되어 있길.

이처럼 시인의 시는 살아있는 자들이 살아남은 자들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듯하다.

 

전시회 때 담아 온 오아물 루의 그림들을 다시 꺼내보며 내가 그 풍경이 돼 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강쥐와 산책을 나갔다. (그의 일러스트에는 반려견이 항상 등장한다.) 인생이 '고행'이 아닌 '여행'이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내 일상의 발걸음에 올려놓고서.

 

 

바람 부는 날

 

너는 내가 보고 싶지도 않니?

구름 위에 적는다

 

나는 너무 네가 보고 싶단다!

바람 위에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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