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겨울 헤세 4계 시리즈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마인드큐브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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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이 소중한 계절이다. 특히 요즘의 겨울은.

빛마저 미세먼지가 집어삼킨 풍경을 보고 있자니 겨울의 청아한 메마름을 느낄 수가 없다.

늙은 겨울날은 비웃듯이 눈을 찌뿌리며

빛을 좀 더 아낀다. - 잿빛 겨울날, 중에서

 

헤세의 계절 시리즈 중 가을을 먼저 읽었었다. 그 맛에 반해 사계절을 모두 준비해놓고 계절별로 찾아 읽기로 맘먹고 2020년 첫 시작을 헤세의 겨울로 열었다. 이 책은 헤세의 수많은 작품들 중 겨울과 관련된 내용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그의 평탄하지 못했던 삶은 그의 글들의 자양분이 되어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게 해 주었다. 그는 그 어떤 작가보다 자연을 사랑했고 동서양의 조화를 간절히 원했으며 우리의 삶에 대한 해답을 자연에서 찾으려 했다. 그가 그린 그림을 보고 있으면 복잡해진 마음이 가라앉는다. 한편으로는 붓을 들고 싶어지기도 한다. 수채화 물감을 흩뿌려 놓기만 해도 겨울과 지금의 내 심정을 담을 수 있을 것만 같다.

 

헤세의 겨울은 전쟁을 관통한 울음과도 같다. 눈이 마른 핏빛을 덮는다. 얼어버린 대지와 굳어버린 잿빛 공기 속의 측은함에 겨울은 제법 쓸쓸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봄의 기운은 제아무리 전쟁 중이라도 희망을 느끼게 한다. 얼음이 녹는 소리에서 즐거운 기운을, 가느다란 햇볕이 졸고 있는 대지를 깨우는 소리에도 귀가 기울여질 수밖에 없음을 체감한다. 그의 말대로 "모든 죽음의 보상은 새로운 탄생"임을 공감하게 된다.

 

난로와의 대화는 색다른 접근이었다. 난로 자신은 단순한 기념물이라고 말한다. 기능적 측면으로 만 본다면 난로는 단순히 열을 내고 타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어디 인간에겐 그것뿐이랴.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길 좋아하는 유일한 존재가 인간이기에 우리는 난로 하나에서도 위대한 추억거리들을 쏟아낼 수 있는 것이다.

 

헤세가 해마다 맞이한 성탄절 풍경도 느낄 수 있다. 유년시절을 빠져나온 뒤의 성탄절은 전쟁의 희생자에 대한 안타까움과 인간적 가치를 당부하는 마음으로 더 채워져 있다. 물론 유년시절의 그리움도 빼놓지 않고 있다. 성탄절 선물로 받은 나비표본을 보며 그는 황홀함에 빠져든다. 다섯 쪽에 이르는 글들을 읽으며 아픈 그에게 죽은 나비의 표본이 영원한 생명의 위안이었음을 어림짐작할 뿐이지만.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한때 바이올린이나 책, 장난감, 스케이트가 지녔던 광채와 매력 같은 것은 더 이상 없다. 좋은 담배가 담긴 상자 세 개가 있었는데 그것은 위로가 되었고, 포도주와 코냑도 조금 있어서 그것으로 나는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p. 107

 

그의 젊은 시절 고뇌가 지금 내겐 고마운 것들이다.

네가 젊었던 때가 마지막으로 언제였나 하는 의문이.-p40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가 내 정체성에 대한 해답으로 돌아왔다. 모든 순간이 나였음을. 겨울은 정말로 사색을 통해 내적 성장을 이루기에 충만한 계절이다. 아직 눈다운 눈이 내리지 않고 있다. 눈 쌓인 도심의 풍경을 바라보는 일들이 전부일 테지만 겨울 짐을 나눠지고 있는 나무와 대지가 보고 싶어진다.

 

그의 글 중 늑대라는 글이 참 인상적이었다. 혹한의 추위에 굶주린 늑대들이 민가로 내려왔다 죽임을 당하는 장면인데 늑대의 인생이 이렇게도 가여울 수가. 반대의 입장에 서면 불쌍하지 않은 것들이 없다.

그의 깨지고 망가진 몸뚱이를 끌고 그들은 장크트임머 마을로 내려갔다. 사람들은 웃고 떠들고, 술과 커피를 마 시면서 즐거워했다. 그들은 노래도 하고, 욕을 퍼붓기도 했다. 눈 내린 삼림이나 찬란한 고원을 바라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샤세랄 산 위에 떠오른 달의 희미한 달빛이 그들이 쏘아 날아가던 총탄과 수정 같은 눈 위에 부딪쳐서, 그리고 맞아 죽은 늑대의 망가진 눈에 부딪쳐서 부서지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늑대, 중에서

 

겨울은 축척과 내적 성장으로 또 다른 나를 예비하는 계절이라는 추천사를 지인들에게 전하며

먹을거리로 축척했다가는 내장비만으로 힘들 수 있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ㅋㅋ

아무튼 헤세의 겨울로 인해 올 한 해도 나의 내면을 충만하게 살찌워가고 있는듯하다.

 

봄이 시작되면 헤세의 봄을 펼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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