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다시 보기를 권함 - 페터 볼레벤이 전하는, 나무의 언어로 자연을 이해하는 법
페터 볼레벤 지음, 강영옥 옮김 / 더숲 / 2019년 12월
평점 :
품절


 

 

나무가 세상을 사는 법은 자신에게 가장 이상적인 삶을 찾는 것이다. -p.131

 

사람의 삶이라는 게 제멋대로 움직이는 동물의 삶 같지만, 실은 한자리에 꽂혀 한자리에서 늙어가는 식물의 삶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제 수명 다한 식물을 뽑아내다 보면 흙 위에서 어떤 꽃을 피웠고 어떻게 시들었든 한결같이 넓고 깊은 흙을 움켜쥐고 있다. - [참 괜찮은 눈이 온다] 중에서

얼마 전에 읽은 책의 한 구절로 식물의 생태가 인간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그와 비슷하게 이 책의 저자도 같은 견해를 보인다. 나무의 삶도 인간의 삶과 참으로 닮은 구석이 많다고.

 

그래서 궁금했다. 요즘은 나무를 그냥 보는 것이 아닌 나무의 속 사정이 궁금하다. 얘는 왜 이리 표면이 거친지, 얘는 왜 이리 꼬였는지, 얘는 왜 이리 움푹 팬 곳이 많은 건지, 얘는 왜 아직도 잎이 떨어뜨리지 못 한채 말라가는 건지, 얘는 왜 위 가지에 이파리가 하나도 없는 건지, 예는 왜 표피가 두껍고 거친지, 얘는 왜 이리도 지나치게 잔가지를 많이 달고 있는건지, 태풍 때 꺾이고 부러진 아이들은 언제쯤 회복할는지..... 

 

 

 

더숲에서 출간되는 자연 관련 책을 일전에 두어 권 보았었지만 이 책은 정말 내가 찾던 책이다.

나도 나무가 정말 좋다. 어딜 가나 나무에 시선이 꽂혀있다. 지인들과 나선 가을 나들이에도 나는 혼자서 나무만 보았다. 오죽하면 지인들 왈, 넌 오늘 작정하고 나무 보러 왔구나. (지인들은 먹방투어가 목적이었다.ㅋ)

나무는 똑같은 모습이 없다. 우리네 삶도 비슷한 경험은 있지만 똑같은 경험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보이는 만큼만 보고 보고자 하는 만큼만 알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더 보려고 해야 한다. 그냥 주변에 있어서, 우리에게 좋은 공기를 주고, 목재를 내주고, 그늘을 내주어서 그냥 고마워만 할 존재가 아니라 이제는 나무의 생태를 지키고 보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무가 자기 의사 표현 능력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기에 나무를 관찰하는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학자들은 나무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애써왔기에 그 결과를 토대로 우리는 주변 나무를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목차를 보면 나무가 어떻게 성장하는지, 줄기와 가지가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나무껍질과 잎의 역할, 나무의 나이와 질병 그리고 죽음까지 세세하게 다루고 있다. 나무의 특성에 언급되는 나무들에 대한 정보도 도움이 된다.

 

나무도 사람처럼 다양한 성질을 지니고 다양한 성격을 드러낸다. 품종과 주변 환경에 따라 나무가 표출하는 모습이 신기할 따름이다. 대체적으로 신중한 나무는 조급함을 낯설어 하지만 빨리 성장하고 죽는 나무도 있다. 그런 나무들의 수명이 대개 100년뿐이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대게 나무는 다들 오래 견디고 장수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자작나무나 사시나무가 생명력이 짧을 줄이야.

 

 

 

나무는 땅속 네트워크로 긴밀하게 협력하기도 하지만 땅 위에서는 경쟁하기도 한다. 수관의 형태만 보아도 나무의 서열을 가늠할 수 있고 빛이 드는 위치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기도 한다. 나무도 소심한 나무가 있고 행동이 엉성한 나무도 있다. 어떤 나무는 잎이 빨리 떨어지고 어떤 나무는 주렁주렁 달고 있는 채로 말라가는지에 대한 부분을 읽고 나면 이해가 된다. 물론 저자는 여러 가지 환경적 요인이 있겠지만 인간은 절대 알 수 없는 부분!이라고 못을 박는다.

 

나무의 상처는 나무가 감내해 온 시간의 고통이다. 나무도 그렇게 과거를 기억한다. 실제로 나무는 목질의 갈라짐을 느낄 수 있어서 아파한다. -p.71 그리고 환경에 따라 변화한다. 제 자리에서 꼼짝 못 하기는 하나 빛이 부족할 경우 불안한 잔가지를 뽑아낸다. 그만큼 빛을 흡수하기 위해 발악하는 것이다. 나무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후손 번식에 집착하고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그렇게 에너지를 쏟고 나면 다음 해에 꽃을 피우지 않기도 한다. 그러므로 나무는 휴지기에 들어가기도 한다.

 

나무도 화상을 입는다고 한다. 뜨겁게 내리쬐는 한여름. 그늘이 되어주는 나무에게 고맙기도 했지만 쟤들은 괜찮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한번 수피가 터진 나무는 평생 시달린다고 하니 세세하고 조심스러운 관리가 필요하겠다. 나무가 암에 걸린다는 사실도 새로웠는데 99퍼센트 균류의 침입으로 나무의 삶이 위협받는다고 한다. 그 외에도 인간의 잘못으로 나무에게 해가 되는 경우도 많다. 환경오염은 물론이거니와 겨울철 도로에 뿌리는 염화칼슘도 나무에게는 독이 된다. 반면 딱따구리나 연어에 관한 이야기는 생태계가 참으로 놀랍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이처럼 다양한 나무의 생태뿐 아니라 숲 생태계의 비밀을 들여다본 듯 흥미롭고 유익하다.

 

지금 나무는 동면에 들어갔다. 겨울은 나무의 영혼을 보는 계절이라고 한다. 나무는 가을에 세포를 생산할 준비를 마치고 겨울잠을 잔다. -p.67 비록 나뭇잎을 털어내어 볼품없긴 하지만 그 나름대로 운치가 느껴진다. 눈이라도 내리면 더더욱.

 

인간은 오랜 세월 숲을 이용하고 나무와 함께 했다. 안타까운 건 원시림이 언제까지 우리 곁에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환경학자들은 이미 지구환경은 회생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그만큼 나무가 건강하게 서식할 공간이 줄어든다는 얘기다. 게다 외래종과 토착종들 간의 불균형도 문제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빨리 인지하고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더 이상 아름다운 숲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자연 속에서 함께 오래오래 공생하고 싶다면 나무들의 사연에도 귀를 기울여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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