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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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이야기

오래전 이야기를 거의 끄집어 내지 않고 지냈다. 딱히 추억이라고 할만한 것도 없어 보였고 굳이 옛날이야기를 꺼내고 싶지도 않았다. 현재를 살아내기에 바빴고 미래는 늘 불안했다. 게다가 과거는 전혀 나에게 위안이 될만한 것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책은 과거도 충분히 위안이 될 수 있음을 말해주었다. 자신에게 좀 더 솔직해지면 지금의 내 모습도 충분히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녀가 꺼내놓은 53가지의 이야기를 앞에 두고 과거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나는 무엇으로 나를 채워왔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사람으로 남아야 할까.

 

가난

그녀의 어린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가난의 형태는 엇비슷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내 입으로 가난했다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니면 가난을 부정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의 글 곳곳에 드러난 가난의 흔적과 나의 어린 시절은 어딘가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빚쟁이를 피해 숨어있다거나 여섯 식구가 발 디딜 틈 없이 한방에서 뒹굴진 않았지만 잦은 이사와 셋방, 단칸방, 다락방 등의 단어 속에서 내가 머물렀던 자리를 떠올렸다. 기억하려 하면 할수록 더 희미해지지만 잊으려고 해도 잊히지 않는 장면들도 더러 있다. 외로웠고 창피했고 두려웠던 순간들이 조용하고 감추고 소심한 어른으로 성장하게 했다. 그래서 이십 대는 덜 여문 채 방황했고 결혼 후의 삼십 대는 다시 살아보고자 했다. 그리고 빨리 사십 대가 되고 싶었다. 사십 대가 된 지금 나를 다시 살게 해 준 것은 책이었다.

 

어린 시절을 넉넉지 않은 형편으로 죄다 사촌 언니 것을 물려받았다. 책도 그중 하나였다. 내 차례로 돌아온 책들은 대체적으로 상태가 좋지 못했다. 안 그래도 너덜거리던 책은 보고 또 보고 나면 표지가 떨어져 나가기 일쑤였다. 신데렐라, 백설공주, 장화와 홍련, 소공녀, 피노키오 같은 책들이 그러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도 반딱반딱한 새 책이 생겼다. 분명 바가지 귀인 엄마가 책 장사의 꼬임에 넘어가서 들인 책일 것인데 다름 아닌 백과사전이었다. 스무 권 남짓한 컬러 백과사전은 그야말로 신기한 내용투성이였다. 그런데 그 비싸고 좋은 책을 나는 학교 벽신문과 숙제한답시고 죄다 오려 놓았으니. 어느 날 엄마가 너덜너덜해진 책을 보며 버럭 하던 모습만 희미하게 남아있다.

 

저자는 지지리도 못난 가난 때문에 자신이 정말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였으면 했다. 어느 날 돈 많은 부모가 짜잔! 하고 나타나 자신을 데려가는 동화 같은 일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그처럼 그녀에게 책은 꿈이고 판타지였으며 현실을 피해 숨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못나도 울 엄마]라는 동화를 기점으로 현실을 자각하고 말았지만 그녀의 엄마가 호기로 지른 [세계명작전집]은 진정 책의 맛을 알게 된 터닝포인트가 된다. 우습지만 만약 울 엄마가 그때 백과사전이 아닌 세계명작이나 위인전을 샀었다면 나는 또 얼마나 달라져 있었을까.

 

하지만 내게도 터닝포인트가 된 순간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 책을 말하지만 내겐 글을 쓰기 시작한 순간부터였다. 어느 날 사무실 홍보 글을 올리기 위해 지역 맘 카페에 들어갔다가 서평 모집 글을 보게 되었다. (난 이런 시스템이 있는 것도 처음 알았다) 무심히 응원합니다라는 댓글을 달았다가 한번 참여해보시라는 운영자의 댓글에 마음이 움직인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꾸준히 책을 읽고 쓰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운영자분 덕에 성취감이란 것도 맛보았고 문학을 통해 내적 성장도 해오고 있다. 내겐 보이지 않는 은인인 셈이다.

 

저자는 작가로서의 고민과 신념도 솔직하고 가감 없이 드러낸다. 문예지 심사를 보면서 한편도 허투루 보지 않았던 이유를 말할 때는 작가가 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피 땀 눈물까지 어루만져 주는 것만 같아 따스했다. 보잘것없는 글이라도 주옥같은 문장을 만나게 된다는 믿음은 글쓴이들에 대한 작은 배려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는 길이 상이라는 타이틀에 국한되어 있는 곳에서 성공이 아닌 성취를 기약하라는 저자의 한 마디가 거추장스러운 위로가 아님을 잘 안다.

삶이 고달플 때 희한하게 글이 잘 써진다는 저자의 말을 들으니 김영하 단편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무엇에 홀린 듯 미친 듯이 타이핑을 한 후 인생작을 쓰게 되는 남자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마치 내가 아닌 다른 어떤 영적인 힘으로 글이 너무나 잘 써지는 순간을 만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뭐 그것마저도 작가의 내공이자 숨은 능력이겠지만.

 

 

 

그녀의 오래된 골목을 지나 세 번째 골목에 이르렀을 때 나는 비로소 지금의 내 자리가 보였다. 아이는 다시 나를 성장하게 한다. 특히 아이와 텃밭을 가꾸며 배운 삶의 교훈도 뼈 때리지만 식물을 키우는 것과 자식 교육을 빗댄 부분은 작가와의 닮은 구석을 찾아낸 것만 같아서 좋아졌다. 텃밭을 가꾸고 식물을 길러본 잠깐의 경험이 모든 순간을 대변할 수 없겠지만 전혀 해보지 않은 자보다 조금이라도 해 보았기에 그것마저도 귀한 것임을 나도 안다.

아이를 키우며 부딪히는 고민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아이와 스마트폰과의 보이지 않는 전쟁은 이집 저집 너 나 할 것 없는 이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을 조금 바꿔보려 한다. 어떻게든 규제만 하려고 했던 마음을 조금 달리해보아야겠다. 주어진 환경을 주도적으로 인식하고 판단할 수 있게 아이들을 좀 더 믿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디지털 세대이지 않은가.

아이에게 뭐가 되고 싶어? 보다 뭐가 하고 싶어?라고 물어야 덜 답답하다. 요즘은 꿈보다 현실이다. 당장 아이의 꿈보다 밥벌이가 되는 일에 더 신경을 써 주어야 정답인 것만 같다. 그런데 조금 부끄럽고 미안해진다. 나도 이루지 못한 꿈이었고 지금 꾸는 꿈도 가능할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도 꿈이 많았다고 회상한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왜 특출나게 잘 하는 것 없이 문어발식으로 적당히 잘하면 뭘 모르는 어린 시절에는 대단한 착각도 하는 법이니까. 노래 하나는 곧잘 했기에 자연스럽게 가수가 되는 줄 알았고 그림도 곧잘 그렸기에 디자이너가 되고자 했다. 하지만 노력 없는 오만! 그것이 내 인생의 첫 실패였다. 저자처럼 꾸었던 꿈도 삶의 전부라고 여기면서 삶을 견뎌보았더라면, 꼭 그것이 내 신분증이 되지 못해도 품어두기만이라도 할 것을 싶은 생각도 든다.

정작 나는 그래놓고 아이들에게는 꿈에 대해 자꾸만 묻고 또 묻는다. 한심했던 이십 대를 내 아이가 밟게 될까 염려되는 맘보다 무시하는 태도로 물었다는 자각에 심하게 부끄러워진다. 자꾸만 묻지만 말자. 꿈이란 성공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고 그 꿈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는 사실을 아이와 함께 고민해야겠다.

 

 

 

 

 

산문의 매력은 진솔함이다.

'개천에 살았던 적이 있다'보다 '나는 한 번도 엄마를 사랑하지 않았다'라는 저자의 고백이 더 당황스러웠던 것은 나는 그런 고백을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집이 주는 안락함을 포기한지도 오래니 상금 때문에 시상식을 알리지 않은 이유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부모를 이해하는 데는 부모가 살아온 시간만큼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저자와 반대로 아빠를 한 번도 사랑한 적 없던 나는 엄마와 한 지붕 아래서 지내는 동안 아빠에 대한 분노가 조금 녹긴 했다. 그렇게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보내버리고 나자 화해와 용서는 미제로 남아버렸지만 그때 나는 정말로 부모님을 몰랐다. 부모라도 온전히 그들을 이해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들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려고 노력은 해야겠다.

 

우리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누군가를 위해 고민하고 있다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첫마디는 '나는 너를 모른다'여야 할 것이다. -p.46

 

네 번째 골목으로 들어서서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는 법을 고민했다. 사회의 매몰참에 구겨진 마음이 요구르트 아줌마의 쪽지 한 장에 펴지는 순간 그 온도가 얼마나 따뜻했을까. 소외와 편견에 상처받은 이들의 이야기는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들어 올려 주었고, 크리스마스 때마다 듣고 부르던 '울면 안 돼'라는 노랫말을 왜 한 번도 부정한 적 없었나를 다시 생각했다. 울면 선물을 안 주는 것이 아니라 실컷 울고 난 이들에게 선물을 건넬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니까.

 

눈 내리는 소리가 마치 어느 시구절처럼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로 들린다고 말하는 저자의 글을 보며 나의 삶의 좌우명도 I'm fine인데!라고 중얼거렸다. 괜찮으려고 애쓰는 시간이 아닌, 정말 괜찮은 순간들이 나의 중심을 잡아주기를 바라며 한 번 더 중얼거려본다.

I'm fine.^^

 

마음을 낮추면 세상 모든 만물은, 그 안에 깃든 마음은 다 괜찮아질 수 있다. 나는 우선 그것만으로도 고맙다. -p.60

 

그녀가 살던 골목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똑같은 칸들이 켜켜이 쌓인 아파트가 서 있다. 누구나 익숙한 것에 멀어지고 그리고 낯선 길 위에서 다시 익숙하여 애쓰며 살아간다. 이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것들에서 외로움을 온전히 떨쳐내기란 힘들 것이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나도 오래전 살던 집을 찾아 골목을 헤매는 꿈을 꾸기도 한다. 그렇게 헤매다 깨고 나면 희한한 안도감이 젖기도 한다. 여기가 세상의 종착역인 것처럼.

 

누군가의 참 괜찮은 추억이 나의 케케묵고 해묵은 기억에 스며들었다. 그것은 또 다른 치유였다. 내가 살아온 자리도 돌아보면 나쁘지 않았다고 말하는 작가의 말을 곱씹으며 나도 그렇다고 믿으며 살아야겠다. 그렇게 나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해 준 그녀의 하루도 늘 괜찮았으면. 그리고 그 골목 어딘가에서 또 다른 삶의 결을 만들어가고 있는 많은 이들의 겨울에도 올해는 참 괜찮은 눈이 내렸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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