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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내 마음을 충전합니다 - 이근아 그림 충전 에세이
이근아 지음 / 명진서가 / 2019년 9월
평점 :
품절

저자의 글을 읽고 있자니 육아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그때가 떠오른다. 책의 의도와는 달리 그림보다 글을 읽으며 더 공감하는 이들이 많지 않을까 하는 쪽으로 기우는 건 누구나 그녀처럼 비슷한 시기를 지나오기 때문이다. 시댁과의 불협화음, 경력단절, 독박 육아라는 삼중고에 시달리면 감정은 쉴 새 없이 널뛰고 우울감에 사로잡힌다. 이미 지난 이들도 현재진행형인 이들도 아마 충분히 공감할만한 문장들이다.
저자는 그림을 전공하였다. 그러나 그녀 역시 출산과 육아로 인해 불안증에 시달린다.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조차 그릴 수 없었고 그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지냈다. 부정적인 생각과 짜증, 그리고 불안감을 떠안고서 말이다. 글을 읽다 보면 이분도 진짜 힘들었나 보네. 젖까지 말리고 떠날 생각을 한 걸 보면 하게 된다. 하지만 계속 그러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걸 붓을 내려놓자 알게 된다. 대신 그림을 보았다. 그리고 아마도 한참을 멍 때리며 바라보았을 그림 한 장 한 장에 마음의 위안을 얻게 된다.
그렇다면 그림으로 내면을 충전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우선 그림은 사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일상의 부피감을 전한다. 내 맘대로의 자유로운 해석과 느낌으로 공감을 얻을 수 있다. 나도 예전에는 그림에는 문외한이었다. 스트레스는 주로 음악이나 영화로 풀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들 그림 동화책을 넘기다가 한 장의 그림에 위안을 얻었다. 난 그때 정말로 혼자만의 휴식이 절실했다. 그래서인지 두더지가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모습에 정말 빠져든 것이다. 오래전 저장해두었던 그림을 다시 찾았다. 지금 보아도 너무나 포근하네.~~ 그 뒤 점점 더 그림동화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반짝였던 순간의 기억 때문에 요즘은 짬을 내어 그림 구경을 다닌다. 그림 서적도 틈나는 대로 보고 있는데 이 책에 소개된 그림들은 다른 책들과 중복되지 않은 그림들이 실려 있어 신선했다. 명작을 이해함에 있어 작가나 그 시대까지 알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저자의 간략한 설명만으로도 충분히 그림을 이해할 수 있다.
목차를 보면 다양한 테마로 감정을 치유하려 한다. 휴식이 필요할 때, 나를 일으키고자 할 때, 안정감을 느끼고 싶을 때같이 그 순간을 달래기에 좋을 그림들을 소개하고 있다. 물론 모든 이들의 감정이 같을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는 감흥이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저자는 그림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대중에게 드러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못나고 창피함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자는 동일시하며 저자가 가면을 벗듯이 우리도 가면을 벗어던질 수 있다. 나아가 관계의 접점도 만나게 된다. 아이의 공부를 봐주다 돌대가리라고 했다가 화해하기까지의 과정을 보며 어쩜 내 모습과 이리도 닮았을까 하면서 웃었다.
잠자는 애나벨이라는 그림은 꼭 자신을 보는 것만 같다. 피곤에 곯아떨어진 모습에 가만히 등을 쓰다듬어 주고 싶다. 70대에 재능을 발견한 모지스의 그림은 그 의미 덕에 삶의 기운을 얻게 된다. 붉은 벽이라는 그림은 외부 세계로부터의 안정감을 느끼게 해 준다. 벽 색상이 회색이었다면 느낌은 또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여행 에세이는 당장 떠나지 못하는 아쉬움과 부러움이 동반된다. 온전히 힐링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림 에세이는 언제든지 위안을 얻을 수 있다.
감정의 응어리로 체기가 올라올 때, 구겨진 마음을 펴고 싶을 때, 한없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 들 때, 세상이 나만 배제한 기분이 들 때 그림이나 그림 에세이로 기분전환을 해 보는 건 어떨는지. 아니면 나처럼 그림동화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 보면 어느새 제멋대로 흩어진 감정의 조각들이 하나하나 제 자리를 찾아가는 걸 느낄 것이다. 명화든 현대 작품이든 주위의 수많은 그림 중에 나와 궁합이 맞는 작품도 만나게 될 것이다. 부디 흐트러지고 망가진 마음을 방치하지 말기를.
그리고 저자와 문학동네 작가상을 받은 홍희정님이 친구사이라니. 얼마전에 [시간있으면 나 좀 좋아해줘] 라는 책을 문학동네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 책도 읽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