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생이 꼭 읽어야 할 한국단편소설 45
김동인 외 지음, 오대교.조정회 외 엮음 / 생각뿔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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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내게 국어는 자신 없는 과목 중 하나였다. 객관식 앞에서 갈팡질팡하다 늘 오답을 체크하기 일쑤였고 하나의 작품을 뜯어보는 것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굳이 작품을 이리 해부해서 시험이라는 걸 봐야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뭐 지금 생각하면 그때 좀 열심히 해둘 걸이라는 후회도 있지만 아마 지금 우리 아이들도 그때의 내 맘과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학창시절은 교과서와 문제집에 파묻힌 채 끝이 났고 그 좋은 문학 작품 제대로 감상할 겨를이 없이 지났다. 그래서인지 지금 이 책에 실린 단편들도 내겐 많이 낯선 작품들이다. 1900년 초기 작품들은 시대적 배경마저도 낯설어 잘 읽히지 않는 작품들도 더러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문장을 여러 번 읽어야 했다. 하지만 단편들을 보니 38선 이전의 시대와 일제시대, 보릿고개 등 우리 민족의 아픈 과거도 느껴볼 수 있어 뜻깊었다.

 

난 국문학은 잘 보지 않았다. 안 그래도 찌든 현실을 책 속에서 또 마주하기가 싫었고 그래서 정서가 다른 외국 소설을 더 찾아 읽었다. 하지만 좋은 책은 어떻게든 내게 오게 되어 있는 것 같다. 요즘 한창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또 요즘 일본과의 사이가 안 좋아진 점도 한몫해서 유명한 일본 작가의 책들도 접어두고 있다. 이런 시기에 한국문학을 더 많이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는데 읽다 보니 정말 좋은 책들이 너무 많았다.

 

이 책도 한국단편이라는 제목 때문에 끌린 책이다. 내가 단편을 거의 읽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요즘 게임에 점점 빠져들고 있는 중1 큰아이 때문이기도 했다. 어떻게든 이 책에 실린 단편 45개만은 읽혀야겠다는 각오를 다졌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요즘 국어가 어렵다는 말을 심심찮게 하던 차였는데 누구보다 내가 그 마음을 잘 알고 있으니 찬찬히 일주일에 한편씩 읽으며 문학책을 읽는 요령을 터득하면 좋을 것 같았다.

 

 

 

 

 

언급했듯이 한국단편은 나도 많이 보지 못한 작품들이 많았다. 하지만 22명의 작가들의 이름은 다행히 낯선 이들이 많지는 않다. 6~7페이지에 한국 현대 작가 프로필이 있는데 작가들의 특징을 해시태그로 달아놓은 점도 인상 깊었다. 예를 들어 [봄봄]의 김유정 작가에게는 #블랙유머의대가 #요절한다작왕 이라든가 내가 좋아하는 박완서 작가에게는 #여성작가들의버팀목 이라는 태그를 달아놓으니 더욱 기억에 남았다.

 

책을 후루룩 넘겨보니 기대 이상이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어도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 무언가 답답함이 있었는데 요건 나의 답답함이 풀리는 듯했다. 수능 만점 선생님이 짚어주는 문장 해석과 작품에 대한 해설이 글의 이해를 돕는다. 그리고 단편을 정리하는 페이지에서는 작가와 작품 배경 및 작품의 구조를 간단하게 짚어주고 있다. 이 정도만 읽어두어도 아이들이 책을 읽고 금방 잊어버리는 경우는 덜 할 것 같았다.

작품의 마지막은 내신을 키우기 위한 샘플 문제가 수록이 되어 있는데 늘 자신 없어하던 문제 앞에서 조금씩 달라짐을 느꼈다. 예전에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같은 답들이 수두룩했기 때문이다.

 

 

 

 

책을 받자마자 큰아이에게 맨 앞 단편 두 개를 읽어보라고 했다. 먼저 읽고 난 후 내가 읽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조금 난감하기도 했다. 문학작품으로서는 별문제가 없지만 중학교 1학년의 시선으로는 김동인 작가의 [감자]나 [배따라기]는 정서의 거리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몸을 파는 아내와 동생과 아내 사이를 의심하는 형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내가 자신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목차를 무시하고 제목을 보며 읽고 싶은 단편을 먼저 보기로 하였다. 이효석 작품을 먼저 선택했는데 이유는 작가의 이름과 동생의 이름(ㄱ만 빼면 똑같다)이 비슷하기 때문이란다.ㅋ 하지만 생각만큼 단편을 소화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직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은 책과 그리 친하지도 않지만 문장 습득력이 느린 편이라 하나의 문장을 오래 읽어야 했다. 단어 능력도 또래에 비해 약한데 더구나 단편들 속에는 더더욱 낯선 단어 천국이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며 퉁퉁거리기도 했는데 확실히 어렵게 느껴진다. 문장 문장을 다시 설명을 해 주어야 했는데 낯선 낱말은 해설을 달아놓았음에도 사투리는 영 어려워했다. 예를 들면 [돈]에서 초반 문장을 읽고서는 돼지의 교배 장면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시대의 낯섦이 문장에서 덜컥 걸려버렸다. 읽는 동안 학창시절 국어 선생님이 문장마다 토를 달며 상황을 설명해 주시던 기억이 살며시 떠오르기도 했다.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철학과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도,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도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학창시절에는 피부로 와닿지 않았지만 연륜이 쌓일수록 지식의 필요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문학작품을 그냥 느끼는 것도 좋지만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는 문학에서 인생이 보이고 때론 해답도 보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시대는 달라졌어도 그때 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건 비슷하다고나 할까. 감정들이 별반 차이가 없다는 말에 동의한다.

 

[배때라기]처럼 의심이 불러온 참극이나 [모래톱 이야기]에서처럼 역사 속 사회 부조리, [돈]에서의 인생의 허무함, [유예]나 [종탑 아래에서]에서 느낀 전쟁의 비극, [B 사감과 러브레터]에서의 인간의 이중성, [날개]에서 돋보이는 주인공의 심리묘사 등은 단편이기에 더 진한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국어를 못한 이유가 책을 많이 안 본 탓도 있지만 깊이 생각을 한적이 별로 없는것 같다. 책이라는 건 갑자기 좋아지는 게 아니다. 한 권씩 한 권씩 꼬리물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책과 친해져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신문만 보아도 세상 물정이 밝아질 수 있듯 인간사에 밝아지려면 책을 늘 가까이 해야 한다. 여전히 작품을 읽고 작가의 의도와 작품 속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은 서툴지만 작가가 공들인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어 보며 그 시절을 느껴보는 것도 좋겠다. 아이와 일주일에 한편씩 단편을 읽으며 국어 실력 향상에 열의를 쏟아보아야겠다.

 

단편을 읽다가 [모래톱 이야기]에서 건우 할아버지가 건우 담임 선생님에게 섬 이야기를 써달라며 부탁하는 장면이 있다. 난 그의 말에 피식하고 웃고 말았다. 문장 아래 해설을 굳이 읽지 않아도 무슨 말인지 감이 오는데 나도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현실을 담고 있는 문학을 자주 읽어야겠다.

 

"남은 보릿고개를 못 냉기서 솔가지에 모가지들을 매다는 판인데, 낙동강 물이 파아랗니 푸르니 어쩌니... 하는 것들 말임더."

해설: 현실과 동떨어진 글쓰기를 말해. 힘겹게 실제 삶의 모습은 외면한 채 쓰는 글들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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