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대왕
김설아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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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글들은 쉽게 읽히는 반면 어떠한 글들은 정말 그 의미가 모호해서 영 찜찜한 글들이 있다. 여러 가지 반찬이 한데 뒤섞여 아는 맛인데 뭐라 꼬집어 말하기 애매한 맛 같은 느낌이랄까. 김설아님의 글은 처음이다. 요즘 젊은 작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져서 젊은 작가분인 줄 알았다. 현실과 상상의 애매모호한 경계에 놓인 등장인물들에 집중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그녀가 처음 등단한 작품은 [무지갯빛 비누 거품]이라고 한다. 아마 이 책을 읽은 독자들 중 제일 난해하다고 느낀 작품이 아닐까 한다. 나도 몇 번을 읽어내려갔지만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십 대들의 반항? 십 대들의 똘끼? 아니면 십 대들의 희망사항? 암튼 십 대들은 학교와 학업의 억압으로부터 에너지를 분출하고자 한다. 분홍 구두를 미친 듯이 갈망하는 소녀처럼 학교 밖 세상에서만큼은 미친 듯이 욕망을 분출하고자 한다. 그 순간만큼은 무지갯빛으로 빛나겠지만 쾌락이야말로 한순간에 터져버리는 비누거품과 같다. 그러나 매 순간을 춤추는 것. 그것은 살아있다는 증거다.

너는 어떻게 하루 종일 이런 것을 속에 품고 살 수가 있었니? p.75

 

욕망은 한낱 거품과도 같음을 보여주는 단편들도 있다.  [청년 방호식의 기름진 반생]과 [모든 것은 빛난다]에서 보여준 욕망들은 나뿐 아니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욕망들이다. 남들보다 잘 나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인스턴트 음식에 길들여있던 그가 몸이 건강해지는 음식에 눈을 뜨게 된다는 설정과 다이아에 눈이 멀어 있던 여자가 다이아를 잃어버리고 난 뒤에야 현실에 눈을 뜨게 된다는 설정 자체는 뻔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깨달음은 오히려 이런 단순함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청년 방호식의 기름진 반생]에서 그는 한 여자로 인해 진정한 자신의 입맛을 찾게 된다. 잘나고 싶다는 욕망이 타인과 나누고 싶은 욕망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모든 것은 빛난다]에서 다이아의 빛에 집착하던 여자는 욕망의 불씨가 꺼지자 어느 날 눈앞의 반짝임을 보게 된다. 물건이 아닌 햇살과 시간과 현재가 만들어 낸 빛을.

이 현재라는 시간의 빛.

기다림과 희망을 버렸을 때 볼 수 있다던 영원. p.65

 

[외계에서 온 병아리]는 인간의 욕구가 충족된 후와 그러한 욕망이 상실되었을 때의 상황을 직설적으로 그리고 있다. 욕망을 쫓아 사는 인간들의 내면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다. 그런 순간에 병아리가 나타나 위로의 말을 건넨다. 당신을 이해한다는 말 한마디에 병아리에게 빠져드는 인간들은 '병아리형 외톨이'로 전락한다. 욕구가 충족되자 아무도 필요치 않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병아리가 죽자 세상은 혼란이 오게 된다. 욕구를 대체할 또 다른 무언가를 찾기 위해 인간들은 타인에게 해를 가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욕망을 채우기 위한 인간들의 끝없는 소유욕에 삶이 허망해 보일 정도다.

욕망이란 타자에 의한 타자를 위한 것으로 이를 통해 사회가 성립된다고, 하지만 욕구만 남은 동물적인 인간은 더 이상 타인이 필요 없게 된다. p.33

 

[우리 반 좀비]와 [이달의 친절 사원]은 체재에 격하게 반항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 반 좀비]에서는 바른 생활의 표본이자 게다 지적이기까지 했던 진구가 소풍날 죽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상스럽고 음탕한 좀비가 되어 학교를 휘젓고 다닌다. 학교와 사회가 바라는 바른 형인 간으로 살던 진구의 내면은 좀비가 되어 제멋대로 표출된다. 좀비같이 학교 집 학교 집을 왔다 갔다 하는 아이들의 삶이 안타까운 건지, 좀비가 되어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있는 진구스를 부러워해야 하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달의 친절 사원]에서는 매출과 실적이 우선시되는 사회에서 기계처럼 취급받는 노동자의 분노를 보여주고 있다.

레스토랑에서 경력자인 주인공은 충분한 시간과 노력과 정성이 들어먹히지 않는 사회에서 배려와 예의를 지키려다 폭발하게 된다. 싸가지 신입사원이 촉발제가 되긴 하였지만 제일 통쾌했다. 15분 안에 조리가 끝나야 하는 음식점에서 타인의 노력과 수고 따위 안중에도 없다. 직원들끼리 그런 사고가 있었는데도 별일 없이 돌아간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감정 없는 신입처럼 너무나 삭막하다.

 

표제작 [고양이 대왕]을 읽고 나니 좀 복잡해진다. 아버지는 회사 갱생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점점 고양이로 변해간다. 결국 해고를 당하게 된다. '갱생 프로그램이 실패했다. 야성에 눈을 뜨고 말았다.' p.106라는 말만 남긴 채.

회사의 입맛대로 더 이상 부릴 수 없는 자들과 체재에 순응하지 못하는 자들을 내친다는 의미인가? 가족을 불러놓고 권력을 제멋대로 휘두르는 회장님의 행태에 분노가 인다.

그렇게 완전히 고양이가 되어버린 아버지를 보며 고양이가 되기 전과 후 그의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회사와 가족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아버지를 홀가분하게 봐주어야 하나. 아니면 회사에서 버림받고 가족에게도 버림받은 불쌍한 가장의 뒷모습으로 보아야 할까. 그나저나 인간들 세상에서 고양이로 살아가기가 만만찮아서인지 고양이 말고 다른 것으로 변신하는 내용이라면 어땠을까 싶다.

 

[일곱 쟁반의 미스터리]에서는 다른 단편들과 달리 쓸쓸함을 느꼈다. 자식을 남겨두고 어디론가 가버린 엄마와 그런 엄마의 흔적을 찾고자 하는 아들의 이야기. 손자가 엄마에 대해 묻자 할아버지는 원망스러운 듯 딸을 마녀라고 칭한다. 죽기 직전에는 외계인이라는 헛소리까지 더한다. 어느 날 티브이에서 일곱 쟁반을 머리에 이고 가던 여인의 뒷모습을 본 뒤 그 흔적을 쫓아보지만 아무도 그런 여자를 보지 못했다는 말만 할 뿐이다.

“우주로 가는 거야. 그동안 이것들 때문에 지구에서 벗어날 수 없었어. 지구의 중력에서.” p.198

 

이처럼 사회의 억압으로부터 다른 존재가 되어서라도 자신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보며 지금 당장의 가치에 집중하게 된다.

내가 살아 있는 이유, 또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서 다시 한번 떠올릴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가끔 우리 냥이들에게 역할 좀 바꿔보자고 말할 때가 있다. 그래도 고양이로 변신하는 거보다는 [이달의 친절사원]처럼 열받을 땐 쌍욕을 날리면서 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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