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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 ㅣ 안전가옥 오리지널 1
조예은 지음 / 안전가옥 / 2019년 6월
평점 :

분명 미스터리 공포물인데 쓸쓸하다. 젤리의 저주에 모든 것이 녹아내렸다. 그리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애처로운 모정을, 영원한 사랑을, 몹쓸 욕망을, 헛된 믿음을.
가물가물한 기억만을 간직한 젤리만 남아 과거의 흔적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늘 그렇듯 외롭고 쓸쓸한 소문은 다시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 묻힌다. 그래서일까 도시의 활기는 어쩐지 거짓으로 만들어진 허상 같다.
놀이공원은 즐거운 추억이 한가득 남는 곳이다. 이곳에서만큼은 꿈과 사랑이 넘치기를 바라기에 이름도 oo 랜드, oo 월드, oo 파크 등으로 짓는다. 도심 속 꿈의 세상, 그런데 이런 곳에서 경악할만한 일이 벌어진다.
여기 사람들에게 젤리를 공짜로 나누어주는 한 남자가 있다. 그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의 어두운 이면을 들여다본다. 공원이 생기기 이전부터 살았던 고양이의 털이 곤두선 걸로 봐선 분명 좋은 사람은 아니다.
이 젤리를 먹으면 영원히 떨어지지 않는다는 젤리 장수의 말은 언뜻 들으면 달콤하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공포스럽다. 정말 붙어서 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공원을 찾은 엄마와 딸, 연인, 악을 숭배하는 여인 등 그들은 자의든 타의든 젤리를 먹게 되고 끈적끈적한 분홍색 젤리로 변해간다. 마치 그들의 가볍고 무거운 욕망들이 흐물거려 녹아내리는 듯하다.
그렇게 영원히 함께 하게 될 운명들. 뉴서울파크는 온통 분홍색 젤리로 뒤덮인다.

이야기는 뉴서울파크를 찾았다가 변을 당한 인물들의 사연이 고리처럼 연결되어 있다. 유지는 싸움이 늘 일상인 부모와 놀이 파크를 왔지만 계속되는 부부의 말다툼에 짜증이 폭발할 지경이다. 그런데 젤리장수가 유지에게 부모님 얘기를 하며 젤리를 건넨다. 이 젤리를 먹으면 절대 영원히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에 받아들었지만 어쩐 일인지 부모님의 보이지 않는다. 미아보호소를 찾았지만 부모님은 오시지 않고 대신 그곳에서 만난 주아라는 아이 곁에 있어준다. 엄마를 잃었다 찾은 주아에게 절대 엄마와 떨어지지 말기를 바라는 의미로 주아와 엄마의 음료에 젤리를 넣게 된다.
남자친구에게 다른 여자가 있지만 헤어지고 싶지 않은 여자와 여자가 부담스러워 헤어지려는 남자가 있다. 그래서 언젠가 말한 놀이공원 데이트를 이별의 장소로 택한 남자는 놀이공원에서 이별을 통보한다. 그런 여자는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어떤 형체를 보게 되고 그것이 젤리임을 알게 된다. 그 뒤 여자는 남자의 입속으로 젤리를 쳐구겨 넣는다.
시어머니의 결벽증이 옮겨붙은 여자는 현재 청소업체 대표다. 그녀는 시집살이의 분노가 악을 낳았다. 그녀의 조용한 분노는 어떤 특정 악의 집단을 숭배하기에 이르고 자신과 논쟁을 벌이던 남자를 살인하게 된다. 하지만 그 남자가 쓴 글에서 뉴서울파크를 보자 서두른다. 이미 달콤한 향내가 진동하던 그곳에서 젤리로 변해버린 형체를 보자 손을 뻗는다.
그렇게 하나둘 젤리로 변해버린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그곳은 말끔히 지워졌지만 괴담만이 남았다. 한낮 북적거리는 사람들이 빠져나간 놀이공원의 적막하고 쓸쓸한 기운은 사람들의 허망한 욕망 같다. 놀이공원에서 탈을 쓰고 일하던 사준만 보아도 돈에 대한 집착이 공포스럽게 변해간다. 불신과 오해가 결국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부른다. 아마도 제일 안타까운 인물이 아니었을까.
오래전 그곳을 지킨 고양이는 모든 것을 보았다. 그리고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이 불러온 결과와 인간들이 늘어놓는 허황된 거짓까지도.
그래서 으스스한 분위기를 이어가지만 쓸쓸하다고 느낀 건 아마도 고양이 때문인듯하다. 꿈냥이로 불리지만 꿈 따위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인간의 손길이 따뜻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안다. 단지 고양이는 더 이상 외롭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이름 없는 젤리라도 곁에 두고 싶어 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하지만 유지는 영원히 함께 하는 길을 택한다. 그것마저도 슬펐다.
안전가옥은 이번 국제 도서전에서 알게 된 출판사다. 즐기는 장르는 아니었지만 도서전에서의 기억 때문에 읽게 되었다. 흐물거리는 분홍 젤리가 인간을 집어삼킨다는 설정이 참 신선했다. 젤리를 옆에 두면 무서운 꿈이라도 꿀 것만 같은 더위지만 달콤한 과일젤리가 먹고 싶어진다. 이색적인 공포를 맛보고 싶은 이들이라면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