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하드커버 에디션)
존 그린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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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안녕 헤이즐이란 영화를 먼저 보았었다. 아! OST(All Of The Stars-Ed Sheeran)를 먼저 접하고 영화를 찾아보았다는 게 맞겠다. 포스터만 보고서는 시한부 얘기인가 보네. 진부한 건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먼저 든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영화는 정말 좋았고 당장 책과 OST 앨범(수록곡이 음원사이트에서 저작권 땜에 재생이 안되어서)을 구매했었다. 다행히 영화와 원작이 거의 비슷했고 오히려 영화가 더 오래 기억에 남았었다.

 

며칠 전 남편이 이 영화를 보고 있었다. 케이블에서 방영 중인 것 보고 있었는데 곁에 앉아 보았다. 좋은 영화는 다시 봐도 질리지 않듯 좋은 책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리커버로 다시 출간되어 재독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는데 헤이즐과 어거스터스가 나누는 대화에 괜찮은 말들이 많아서 이기도 하다. 읽는 내내 영상과 OST가 머릿속에서 재생되니 혼자서 멀티플레이어가 된 느낌이었다.

 

산소탱크를 늘 지니고 다녀야 살 수 있는 십 대 소녀 헤이즐. 이야기는 그녀의 시점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녀는 암 판정을 받고 힘겹게 사투를 벌이다 지금은 휴전기 상태다. 학교도 쉴 수밖에 없고 바깥세상과도 단절-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싫다보니-하고 지금은 우울증이 온 상태-이건 어디까지나 엄마의 생각-다. 딸을 위해 상시 대기 중-엄마는 목욕도 맘 편히 못한다-인 부모님은 그런 딸의 불안정한 심리상태가 걱정이다. 그래서 암 환우의 모임에 보낸다. 그런 모임 자체가 꺼림직한 헤이즐이었지만 - 나 같아도 나가기 싫은 듯 -엄마를 위해 나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잘생긴 한 남자애를 만나게 된다.

 

한쪽 다리를 절단하고도 미소와 위트를 발산하고, 죽음에 반항하듯 담배를 입에 물고만 있는 것에 집착-집착이라고 한 건 이 담배 때문에 막판에 사단이 벌어진다-하고, 사람들로부터 잊히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죽어서 별이 될 것만 같은 맑은 영혼을 가진 독특한 십 대 소년 어거스터스. 친구 따라 간 모임에서 먼저 죽은 전 여친과 너무나 닮은 헤이즐을 본 순간 눈을 떼지 못한다. 잊히는 게 두렵다는 자신의 말에 세상이 끝나면 그딴 건 무의미하다는 화끈한 조언에 헤이즐에게 끌리게 된다.

 

헤이즐은 암에 대해, 그런 수류탄 같은 자신을 감당해내고 있는 부모님에 대해, 그리고 [장엄한 고뇌]라는 책의 결말에 대한 생각이 일상이었지만 이젠 어거스터스에 대한 분량이 늘어났다. 좋아하는 책을 교환하며 마음을 주고받던 두 사람은 장엄한 고뇌의 결말을 위한 여행을 추진하기에 이른다. 비록 여행의 목적은 이루지 못하였지만 자신을 위해 마지막 인생을 내어 준 어거스터스로 인해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게 된다.

 

그에게 조금도 화가 나지 않았고, 그저 이제는 금방이라도 나 자신이 폭발할 테니 다른 사람을 구하겠다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지 이해할 수 있고, 수류탄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 227

 

 

 

 

죽음이 두렵지 않은 이들이 어디 있을까. 그리고 다른 이들보다 너무나 짧은 생을 살다 가야 하는 이들의 억울함은 또 어떻고. 이 이야기는 단지 시한부 인생을 견디고 있는 이들의 고통과 슬픔을 느끼고 그들에게 연민을 갖자는 내용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헤이즐이 [장엄한 고뇌]에 결말에 집착한 건 언제 끝나버릴지 모를 자신의 인생과 닮아 보여서였다. 그리고 다른 캐릭터들의 결말까지도 궁금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부모님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을 떠난 뒤 자신의 흔적을 끌어안고 추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하는 걱정으로 그네 세트까지 없애버렸으니 말이다.

 

어거스터스는 자신의 죽음이 무의미해질까 두려워한다. 나도 어렸을 땐 내가 굉장히 특별한 사람이라고 여겼었다. 그런 생각이 사춘기를 거치면서 깨지긴 했지만 어거스터스처럼 갑작스럽게 죽음이 가까이 다가온다면 특별한 삶에 대한 미련이 내내 남을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헤이즐보다 어거스터스가 더 공감이 된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참아내며 9를 꼭 쥐고 있는 것은 다음을 위해서였다고 말하는 헤이즐보다 "난 내가 싫어. 난 내가 싫어"를 외치며 무너져가는 어거스터스가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도 우린 죽음의 부작용보다 삶의 부작용을 겪으며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라는 말처럼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단지 운명이 그런 것일 뿐.

헤이즐의 친구가 이 신발을 신느니 죽을....이라며 무심결에 내뱉는 말이나 어거스터스의 전 여친이 죽음 앞에 내내 신경질을 부리던 행동들처럼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도, 죽음을 바라만 봐야 하는 이들도, 모두 서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무언가 인생의 해답을 지녔으리라고 여겼던 [장엄한 고뇌]의 작가도 한낱 서툰 인간이었을 뿐임을 알게 된다.

 

슬픔이 사람을 바꾸는 게 아니야, 헤이즐. 사람의 본모습을 드러내 주는 거지. -p.298

 

짧은 시간 헤이즐에게 영원을 주고 간 어거스터스가 빛과 같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거스터스의 죽음 뒤 그의 SNS에 친구들이 남긴 메세지는 어찌 되었든 남겨진 이들이 최소한 가질 수 있는 예의를 다한 것뿐이다. 그럼에도 꼬투리를 잡고 있는 헤이즐의 모습에 짠함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는 말을 남긴 어거스터스의 말처럼 죽음이 임박해도 현실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이 진정한 영웅임을 말하고 있는듯하다. 그렇게 누군가의 가슴에 별이 되고 또 그 누군가는 빛으로 남았다. 어거스터스가 헤이즐에게 그랬던 것처럼. 운명의 잘못으로 만나 영원이 되어준 그들의 사랑에 가슴이 촉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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