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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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는 태국 여행 중이다.

하지만 휴대전화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하지만 기대하던 답변 대신 그에게 날아온 건 부고와 불합격.

 

참으로 인생은 사람의 마음만큼 알 수 없다.

 

- 정우야.

- 엄마, 저기 서봐. 엄마, 여기 보고.

 

저마다 순간을 기억하는 방식은 다르다. 순간을 기억하기 위한 찰나의 멈춤은 그날의 감정까지 담아내기도 한다. 다만 순간은 순간일 뿐이고 상황은 원치 않는 방향으로 꺾이기도 한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풍경 속을 살아야 할 때 그 속에서 느끼는 감정들이 대체적으로 밝지 않다면 그날의 순간들마저 부정하고 싶어질는지도 모른다.

 

정우는 그렇게 자신을 불러 세우던 엄마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지만 그 목소리 안에 깃든 다정함보다 불안한 미래에 대한 외침으로 느껴왔다. 그것은 다른 집 사람이 되어버린 아버지에 대한 원망에 기인한다. 정우의 아버지는 '우리 집'을 떠나 '다른 집' 사람이 된다. '다른 집'과 '우리 집'을 걸친 채 우리 집에 대한 의무감과 미안함을 양육비와 기념일로 대신했다. 그럴 때마다 정우는 한 장의 사진처럼 그렇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저장했다.

정우는 엄마보다 자신까지 버린 아버지에 대해 '한겨울. 방 한쪽에 잘 개어놓은 이불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반듯하고 무겁고 답답한 사람이라고. 이왕 붙인 꼬리표에 하나 더 붙이자면 뻔뻔하기까지 하다. 아버지는 사과 대신 돈 얘길 꺼내들며 정우의 분노를 키운다. 지금의 아내가 암이라고.

 

그럴 땐 정말 내가 내 과거를 '먹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p.173

그는 일 년 전 먹어버린 과거 때문에 체기가 올라오는 중이다. 시간강사 시절 곽 교수의 죄를 대신 뒤집어써주고 돌아온 건 임용 탈락. 자신이 철저히 이용당했음을 뒤늦게 알았을 때 그는 후회와 함께 분노를 삼켰을 것이다. 그럭저럭 괜찮은 강사에 평범한 삶을 살며 자신의 이름 석 자에 흠될 일은 하지 않고 살았던 그였으니까. 아니 좀 더 유심히 보면 그도 반듯한 사람이고자 했다. 아버지처럼이 아닌 정말로 반듯하게. 그래서 심지어 돈 얘길 꺼내는 아버지 앞에서조차도 나답지 않게라는 말을 덧붙인다. 정말 그는 아버지와는 달랐을까.

 

부고와 불합격 = 더블 볼트

 

아버지 문제는 자신과는 상관없이 일어난 일이지만 곽 교수와의 일은 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일어난 일이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변명을 하더라도. 그렇다면 볼트 정도로 끝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잘못된 선택에서 자신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날의 일을 뒤집는다고 해도 자신에게 올 타격도 만만찮을 것이다.

차라리 더블 볼트로 끝나서 다행이라고 삼진 아웃이 아닌 게 어디냐는 연민으로 자신을 다독일 수도다. 하지만 그가 울분을 삼키며 공짜를 바란 적이 없다고는 했지만 그는 홍삼을 사들고 가지 않았나. 누구나 희생 뒤에는 대가를 바란다. 어쩌면 그 모습이 희생하고 대가를 바란 아버지를 닮아 창피함도 느끼지 않았을까.

 

 

 

 

풍경의 쓸모라는 말을 여러 번 되뇌었다. 나의 삶 속에서도 모든 풍경이 쓸모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꼭 그때의 풍경이 없었다고 해도 지금의 풍경이 더 나았으리라는 확신도 없다. 단지 조금의 불편하고 때론 구질구질한 기분이 든다는 것 외엔.

 

반면 정우가 느낀 풍경의 쓸모를 생각해 보았다. 그가 왕복 다섯 시간이 넘는 풍경 속에서 느꼈을 불안감과 어색함이 곽 교수의 차 안에서는 그럭저럭 견딜만한 풍경이라고 했지만 그 견딜만한 풍경에서조차 설자리가 없음을 알았을 때 그가 느낀 건 상실감과 분노였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가 느낀 어색한 풍경은 바깥 풍경이 아닌 곽 교수였다. 어차피 자신의 풍경의 붙박이였던 아버지를 떼어내듯 곽 교수도 그러한 인간일 뿐이다. 결국 지가 좋아하지 않은 정우를 내친 곽 교수가 내던진 말은 말장난에 불과했던 것임을 필사 뒤에 알았다. 굳이 좋아하지 않는 인간하고 어울릴 필요가 있을까 하고 소심하게 중얼거려본다.

 

 

 

 

김애란을 처음 만난 건 [비행운]이었다. 그 당시 나의 심적 상황이 좋지 않아 처량 맞고 우울하다는 느낌 외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다음 만날 글이 청소년문학 [칼자국]이었는데 그때 처음 김애란의 글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냥 삶의 무게를 잘 분배해서인지 쓸데 있는 생각들을 할 수 있다는 점. 순간과 찰나를 잡아내어 소외된 감정까지 끌어올려 준다는 점. 빛과 어둠, 행복과 불행은 하나의 순간에도 공존함을 문학이 말해주고 있어 좋았다. 하지만 상징적 의미가 많아서 단편이라도 쉽지 않다는 점은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강렬한 태양 아래서 느낀 서늘한 긴장감, 어머니의 찰나의 순간에 들어온 부고 문자와 같은 순간의 낯섦에 말을 아끼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생각보다 이러한 풍경을 자주 놓인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여름날은 한겨울의 냉랭함과 같을 수도 있고, 아름다워 보이는 스노볼 속 겨울 풍경이라도 감각적 이질감을 들게도 한다.

다만 우리가 바라는 건 진정 나를 나답게 해 줄 풍경일 것이다. 정우도, 나도 누군가의 풍경 속에 붙박이가 아닌 잘 어우러지는 풍경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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