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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까만 단발머리
리아킴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어느새 이렇게 훌쩍 시간만 지나버린 것인지. 요즘은 그렇게 열정이 많은 이들이 부럽다. 오로지 한 가지에 빠져 수많은 시행착오를 지나온 이들을 보면 늘 겁이 많았던 나 자신이 한심해 보일 때도 있다. 그들의 열정은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일까.
얼마 전 우연찮게 리아킴이 출연한 예능 프로를 본적 있다. 깍듯한 단발머리에 강해 보이는 이미지의 여성이 낯설어 채널을 돌리려는데 남편이 알은체를 했다. 유튜브로 유명해진 사람이고 춤꾼이라고.
나도 잘 추진 못해도 춤을 좋아한다. 춤이라는 게 뭐 별건가 했지만 배울수록 재밌고 매력이 있다. 요즘은 줌바댄스를 하고 있는데 몸이 음악에 절로 움직이는 강사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다. 그리고 뭔지 모를 에너지가 솟구치기도 한다.

그녀의 과거사는 예능을 통해 먼저 보아서인지 내용이 중복되는 부분이 많았다. 초등시절 빡빡한 학원 스케줄을 소화하던 착한 딸이 춤의 매력에 빠지게 되자 그로 인해 엄마와의 사이도 벌어진다. 첫째 딸의 방황을 못마땅해하던 엄마와는 달리 아빠는 묵묵히 딸을 응원했다. 아빠의 지원이 없었다면 정말 가족과는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나도 부모로서의 역할에 어깨가 무거워진다.
그녀의 열정은 재능 그 이상이었다. 춤에 대해선 누구보다 잘 할 수 있었고 누구보다 열심히였기에 그녀는 각종 대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낸다. 그러나 당시 춤에 대한 편견과 댄스 강사에 대한 인지도가 너무나 열악했기에 몇 번이고 현실에서 좌절감을 맛본다. 젊은 나이에 맛보아야 하는 씁쓸한 현실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노력만큼 따라주지 않을 때 느끼는 패배감을 덤덤히 말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시점에서 진로를 변경하니까 말이다.

그녀는 회상한다. 그녀를 저 바닥으로 내동댕이친 건 자기 자신의 오만함이었음을.
세계대회 1등, 유명 가수의 댄서 등 내로라하는 프로필에서 자꾸만 뒤처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결국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동료의 입을 통해 깨달은 것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뿐 아니라 무엇보다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과 춤에 대한 진지함을 잃지 않았기에 그녀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독한 충고를 아끼지 않았던 이,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자고 제안한 이, 그녀와 함께 춤을 춘 이들이 없었다면 그녀의 방황은 더 오래가지 않았을까.
빨리 망한 게 득이 되었다고 말하는 리아킴.
우리는 그녀가 단지 타고난 재능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온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단발이 그 사실을 보여주듯이 무언가 좌절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과거의 자신을 과감히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k pop의 위상이 커지고 덩달아 안무가들의 위치도 커져서 다행이다. 댄서라는 직업을 당당히 말할 수 있고 그리고 그 직업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시대가 되어 다행이다. 그녀의 아카데미에는 멀리 외국에서 온 이들이 많다고 한다. 춤이라는 공통어가 세계인의 마음을 하나로 이어주고 있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정말 잘 추는 이들도 널렸고 리아킴만큼의 열정을 지닌 이들도 많다. 위기는 기회와 함께 한다는 말을 그녀의 지나온 길을 보며 또 알게 되었다. 그래, 단지 잘 추지 못하는 사람은 있겠지만 이 세상에 춤을 못 추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의 성공기에 귀를 쫑긋할 것이 아니라 지나온 과정을 들여다보며 그 열정에 마음을 실어본다면 분명 내일은 조금 다른 하루가 되지 않을까. 내 아이들도 이런 열정의 꽃이 피는 날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