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따위 레시피라니 - 줄리언 반스의 부엌 사색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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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가 부엌에 관한 에세이를 내놓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이건 뭐 대반전이다.

우선 나는 요리와 별로 친하지 않다. 맛 집을 찾아다니는 성격도 아니고 더군다나 요리는 힘들고 귀찮아한다. 장을 보고 준비하고 먹고 치우는 과정에서 요리의 즐거움은 이미 달아난다. 난 왜 이리 요리가 재미없는 걸까.

그렇지만 그의 책이었기에 보고 싶었고 게다가 제목에서 울리는 퉁퉁거림이 꼭 내 맘 같기도 했다.

 

지금은 요리하는 남자가 흔하지만 그가 자라날 당시는 그렇지 않았다. 더군다나 요리라는 걸 배운 적 없는 20대가 할 수 있는 요리는 한계가 있었으니 재미가 있을 리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30대부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요리의 대상이 나에서 아내로 옮겨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책상에서 조리대로 넘어와 온갖 재료와 조리법으로 씨름하는 그의 모습이 잘 그려지지는 않지만 그의 책을 떠올린다면 분명 꼼꼼하고 진지했을 것 같다.

 

왜냐! 그가 제대로 된 요리를 위해 사 모은 요리책이 내가 가진 책(고작 열권 남짓)의 열 배나 되기 때문이다. 난 요리책의 가짓수가 그렇게 많을 수 있다는 사실도 놀랐다.

 

 

 

이 책이 요리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나 찬사를 늘어놓았다면 그냥 그저 그런 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요리에 과학이니 예술이니를 논하기 전에 레시피의 아이러니에 부딪히고 만 것이다. 그는 요리도 레시피대로만 하면 완벽하리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요리에 앞서 요리도구, 재료의 상태 등에 정확한 기준이나 표준이 없기 때문에 애매한 것 투성이다. 이는 아마 초보들이 가장 많이 어려워하고 난감해하는 부분일 것이다. 레시피를 보며 구시렁대다 결국 레시피대로 하지 못하고 무언가 허전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던 날 보는 것 같아 무척 공감했다.

 

 

뭐 레시피랄 것도 없지만 제과제빵이 힘든 나에겐 마트에서 간편하게 할 수 있는 머핀이나 스콘 믹서를 주로 애용한다. 하지만 그 간단한 과정도 할 때마다 상태나 맛이 다르다. 정확히 계량을 했는데도 어떨 땐 빵이 너무 기름진듯하고 또 어떨 땐 푸석거려 그냥 제과점에서 사 먹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려버릴 때도 있다. 그러나 가격이 저렴해서 또 사 오게 되는데 오늘은 계량하기 귀찮아 대량 감으로 후다닥 구워냈는데 여태껏 구웠던 빵보다 훨씬 제대로 된 맛이 나왔다. 음. 뭐지? 요리란 대체 뭘까. 할 때마다 달라지는 것? 새롭긴 하겠다.ㅋ

 

 

요리를 시작하고 가장 먼저 배우게 되는 교훈은, 요리 책이 아무리 솔깃해 보여도 어떤 요리들은 반드시 음식점에서 먹어야 제일 맛있다는 사실이다. -p.74

 

요리는 그렇듯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자신만의 레시피를 찾아가게 된다. 가장 내 입맛에 맞게, 내 식대로 하기 수월하게 말이다. 레시피대로 하다 서툰 솜씨에 주방이 폭탄 맞은 것처럼 되어도, 내가 만든 것이 책의 사진과 다르다고 실망할 필요 없다. 또한 정통 레시피를 그대로 따를 필요도 없다. 재료 손질이 어려우면 다 돼있는 걸 구매해도 되니까. 시간도 단축되고 스트레스도 덜 받으니 일석이조 아니겠는가.

 

게다가 제아무리 레시피대로 해도 안 되는 것들도 있다. 최근 딸아이가 탕후루(명자나무 또는 산사나무 열매를 꼬치에 꿰어, 물엿을 묻혀 굳힌 중국 과자)를 세 번이나 만들다 실패하고 결국 차이나타운에서 사 먹은 일이 있었다. 부작용도 생겼다. 실패한 걸 먹어치우느라 그때 이후로 난 딸기에 시럽을 바르지 않으면 맛이 없는 듯한 느낌이다.

 

 

 

반스가 아내를 위해 요리했듯 요리는 함께 할 누군가가 있어야 더 즐거운 법이다. 나도 얼마 전 라디오 사연에서 들은 일화에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자신은 요리를 그리 썩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만드는 걸 좋아해서 사람들을 가끔 초대하는데 친구들이 자신이 만든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고 말하는 분을 보며 요리의 궁극적인 목적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내가 만든 음식을 누군가가 맛있게 먹으며 즐거워한다는 것이 참뜻깊은 일임을 말이다. 한두 가지 시킨 음식이면 또 어떠하리. 디저트라도 내가 만든 것이라면 훌륭한 파티가 되지 않을까.

 

뭐니 뭐니 해도 내용 중 가장 공감했던 것은 요리도 학교 교과목으로 지정해서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데 있다. 생존 교육에 요리는 반드시 필요한 과목이 되어야 한다는데는 진심 찬성이다. 그래서 난 아이들이 뭘 만든다고 부엌을 난장판을 해 놓더라도 응원한다. 라면을 좋아하는 큰 놈은 벌써 자기식대로 끓여 먹는 법을 익혔고 둘째는 김치볶음밥은 만들어 대령 한 적도 있다. 레시피를 보며 곧잘 따라 하는 걸 보면서 반스나 나의 투덜거림이 나이 든 사람의 투정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딸아이의 요청으로 모종을 사 왔다. 베란다 앞쪽에 긴 화분이 네 개나 자리 잡고 있는데 상추, 고추, 토마토, 가지를 심었는데 토마토가 열리면 스파게티를 만드는데 넣어 보아야겠다. 요리의 즐거움이란 게 별건가. 이런 소소한데서부터 찾아나가면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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