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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봐
니콜라스 스파크스 지음, 이진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내가 노트북을 본 지가 언제였던가. 암튼 노트북의 작가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스릴러임에도 불구하고 보게 되었다.(난 스릴러를 별로 즐기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소설의 주인공들은 영화 노트북의 남녀 주인공의 얼굴이 자꾸만 오버랩되기도 했다.
소설은 여느 로맨스물처럼 선남선녀가 등장하고 그들의 첫 만남도 평범하지 않다. 각자 트라우마를 지닌 두 사람이 다시 만났을 때 서로를 더욱 가깝게 해 준 건 솔직함이었다. 그렇게 몇 번의 데이트를 하며 뜨겁게 불타오른 그들에게 불길한 사건이 하나둘 터지게 되고 그때부터 긴장감이 고조된다. 마치 콜린의 화가 언제 터질지 몰라 긴장하는 애번처럼.
그는 목적이 있어서 이곳에 왔고, 그의 목적에는 이름이 있었다.
그 이름은 바로 복수였다. -p.11
누군가가 한 여자를 바라보고 있다. 이미 그녀가 누구인지 알고 있고 그녀를 둘러싼 모든 환경을 꿰뚫고 있다. 심지어 그녀 가족의 역사까지도.
시작은 이렇게 누군가가 한 여자를 보며 복수의 이를 갈고 있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이 자가 과연 누구인지, 무슨 연유로 복수를 하려는 것인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다. 그의 시선이 세레나와 마리아 두 자매를 향해 있다는 것뿐이다.
그가 스토킹을 하는 데 있어 세레나의 SNS는 너무나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다. 너무나 가벼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공개하는 것에 좀 더 신중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콜린은 불우한 청소년기를 지나 여러 번의 폭력 사건을 일으켰다. 그는 분노조절장애를 겪고 있으며 아슬아슬하게 감옥행을 피해 집행유예 기간 중이다. 부모마저도 두려움을 느끼는 상황에 그가 일으킨 수십 건의 사고만 본다면 그러한 이유의 근원을 떠나 성향이 과연 바뀔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운 좋게도 좋은 친구를 두게 되고 새로운 인생계획도 세운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과의 싸움을 하며 무던한 노력을 기울인다. 자칫 한 번의 화를 참지 못한다면 인생이 어느 방향으로 꼬일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이전 회사에서 맡은 사건이 잘못되어 스토커에게 시달리다 결국 이 직후 가족이 사는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 그러나 새로운 회사에서 상사의 성추행을 감지하자 늘 긴장상태에 놓이게 된다.
두 사람의 만남은 마리아가 곤경에 처하고 콜린이 도와주는 우연으로 시작되지만 두 번째 만남은 마리아의 동생 세레나의 계획으로 이루어진다. 그렇게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게 된 두 사람은 어느새 과거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더 가까워진다. 그리고 콜린은 점점 마리아에게 빠져들게 된다. 그러나 어느 날 마리아에게 배달된 꽃다발과 카드에 적힌 메시지로 인해 상황은 심각하게 흐른다. 마리아 주변을 맴도는 스토커로 인해 마리아뿐 아니라 콜린도 여지껏 버텨온 흥분의 아드레날린이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내가 널 보는 것처럼 너도 나를 봐.”
스토커의 행적이 두드러지고 윤곽이 드러날수록 콜린의 분노와 마리아의 공황장애는 잦아진다. 연인의 안전을 지켜내기 위해 끓어넘치는 분노를 조절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콜린은 여러 번의 위험한 상황을 지나면서 자신의 분노를 조절하는 법을 터득해갔고 정말 분노해야 하는 시점에 용기를 낸다. 그는 마리아를 지켜내기 위해 범인이 뿌려놓은 사건의 정황을 직접 짜 맞추며 머리를 굴린다. 마리아는 처음 분노가 폭발한 콜린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꼈지만 서서히 강한 믿음이 생겨나게 된다. 콜린의 곁을 지키고 있는 친구들처럼.
누구나 행복한 순간엔 다 좋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람의 본성은 위기의 순간에 알 수 있다. 그래서 마리아가 처음 위기의 순간 콜린에게 느꼈던 두려움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콜린이 부단히 자신과 싸워나갈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이었다. 사랑이 모든 위험한 상황을 제어할 수는 없겠지만 용기를 갖게 해 준다. 마리아에게 콜린이, 콜린에게 친구들이, 마리아에게 가족들이, 누구 하나 다칠 수 있는 상황에도 소중한 일상의 행복을 깨버리려는 이들로부터 울타리를 지켜내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모습이 놀랍기까지 했다. 로맨스보다 그들을 지켜주는 소중한 사람들 때문에 더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스토커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놀라운 반전도 있다. 타인에 의해 붕괴된 가정의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절망적인 순간에 미쳐버리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고 게다가 누군가에게라도 화살을 돌리지 않고서는 버텨낼 수 없는 이들의 아픔을 감싸줄 수는 없겠지만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어찌 되었든 그들도 피해자이자 가해자니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스토킹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불안감과 두려움을 준다. 본인뿐 아니라 가족들까지 해를 당하는 기사만 보아도 얼마나 심각한 범죄인지 느낄 수 있다. 소설은 두 남녀의 로맨스보다 범인의 윤곽을 잡는데 신경이 곤두설 것이다. 하지만 위기를 이겨냄으로써 한층 더 두터워진 사랑의 에너지도 느낄 수 있을 것다.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의 무게를 함께 들고 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두려움을 극복하고 살아갈 수 있는게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