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3의 시나리오 1 - 의문의 피살자
김진명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3월
평점 :

15년 전에 소설이 다시 재출간되었어도 그리 낯설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정치는 지도자의 이름만 달라질 뿐 크게 달라 보이지 않고 게다가 강대국들의 파워는 여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나리오가 그리 허구 같지 않은 이유도 미국은 충분히 자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나라임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비단 미국뿐이겠는가만 은 역사를 돌아보았을 때 그 어떤 나라보다 미국의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태도를 보아왔었고 한반도에 꽂아논 빨대가 비단 전쟁을 염려함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김진명의 [고구려]는 보지 못했지만 한반도에 사드문제로 시끄러울 때 사드의 궁금증과 심각성을 풀어준 것이 그의 책 [사드]였다. 책과 별로 친하지 않던 남편이 먼저 읽고 나서 꼭 읽어보라고 권해준 책이기도 하고 그의 통찰력에 신뢰감이 생겼다고나 할까.
이야기는 한 소설가의 죽음으로 시작하고 있다. 죽은 소설가는 저자처럼 팩트를 다룬 소설을 쓴다. 그런데 그가 소설을 쓰다 베이징에서 피살을 당한 것이다. 친분이 있던 중국 검사로부터 사건을 듣게 된 한국의 장검사는 단순 피살 사건이 아님을 직감한다. 그리고 그가 쓰다만 원고에서 제3의 시나리오라는 단어를 발견하자 그가 단순히 취재를 위해 오가던 중 사고를 당한 것이 아님을 확신하게 된다.
사건을 취재하던 중 소설가의 죽음 뒤에 엄청난 사실이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된다. 북한을 중심으로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야기는 뒷받침해주는 여러 인물들 덕에 군더더기 없이 시원하게 흘러 금방 읽힌다. 한국으로 탈북한 천재 과학자, 북한에서 사상을 의심받아 목숨을 무릅쓰고 탈출을 감행한 중사, 전직 CSI 요원, 그리고 평범한 대학생 등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전개에 오히려 속이 후련하다. 물론 그 끝이 만족스럽지는 않더라도 조국을 생각하는 정의감 넘치는 검사와 미국의 도청 기술을 능가할 장치를 개발한 탈북 과학자뿐 아니라 평범한 두 대학생의 애국심이 더해져 오히려 감동이 밀려올 정도다.
정작 세상을 살리려는 자들은 늘 평범하고 힘없는 자들임을 보며 세상에 정의란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에 의문이 든다. 가상의 시나리오지만 정말 걱정해야 하고 직시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외부적으로는 전 세계인을 감시하고 통제하려는 도청 기술과 신무기들이고 내부적으로는 한국인들의 지나친 사대주의와 우리 편 아니면 죄다 빨갱이라는 흑백논리가 아닐까 한다.
사건을 수사하면서 점점 이 사회가 보이지 않는 자의 힘에 이끌려 돌아가고 있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더군.- p.67
한반도는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자리를 내어주는 것도 모자라 늘 옆구리가 터지는 신세였다. 한반도의 문제에 보이지 않는 힘이 미국일지도 모른다는 가정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태껏 돌아가고 있는 정세가 그렇기 때문이다. 한반도 전쟁설부터 얼마 전 결렬된 북미회담만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한반도에서 삼팔선의 저주는 언제쯤 끝이 날까.
나방을 이용한 도청 작전이 가능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내내 따라붙긴 했지만 미국의 검은 속내를 알고 나니 분통이 터진다. 한반도의 인권 따윈 무시한 채 역사를 다시 반복하려는 계획이 올바른 미국 지식인들 덕에 와해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부터 그들도 과연 똑같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러다 보니 정말 불신만 커져가고 세상이 무섭게 느껴졌다.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한국과 미국이라는 두 개의 국적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많은 젊은이들이 미국을 선택할 것이라는 가정은 참으로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베네수엘라의 비극과 떠도는 난민들을 본다면 한반도 땅에서 더 굳건해져야 할 민족의식은 대체 어디로 가고 있단 말인가.
지금도 그들은 제4, 제5의 시나리오를 짜며 어딘가에서 속삭이고 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세계정세에 눈을 뜨기 위해서는 많이 보아야 한다. 그리고 다각도로 살펴야 한다. 이는 특정 지식인들에게만 주어진 숙제가 아니다. 사건의 진상을 찾아내는 발 빠르고 정확한 네티즌들처럼 국민들도 관심을 가지고 진실을 가려내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지금 그 시대의 남북한 정상은 없지만 지금 읽어도 손색이 없을 작품이다. 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이야기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팩트를 건져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그냥 한 권으로 출간해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굳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