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개 장발
황선미 지음 / 이마주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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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길을 걷다 보면 활짝 열린 대문을 지나 엉성하고 지저분하며 낡아 보이는 개집과 목줄에 매어진 개를 볼 수 있다. 이 소설의 풍경은 멀지 않은 과거일 수도 있고 지금 어딘가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어딘지 모르게 친근하지만 무심할 수도 있는 일상이다.

 

노인의 마당은 얼마 남지 않은 이파리들이 나뭇가지에서 겨우 숨이 붙어 있는 쓸쓸한 겨울의 풍경과 닮아 있다.

집 마당에는 어미 개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들이 뛰놀고 있다. 그리고 그런 동네의 사연들에 시시콜콜 참견이 많은 늙은 고양이도 한 마리 있다.

 

노인은 새끼들을 팔아 살림을 산다. 그래서 새끼들은 실한 씨어미만 남기고 팔린다. 노인의 어려운 살림살이에 어미 개는 늘 이별을 감당해야 한다. 마당에서 이리저리 사고 치며 뛰어다니는 강아지들 사이로 유독 어미와 형제들과는 달라 보이는 녀석이 있다. 시커멓고 털이 긴 것이 삽살개를 닮은 듯한데 어찌 되었든 털이 길어 자앙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생김새 덕에 이름도 생긴 것이다. 하지만 남들과 비슷하지 못하다는 사실은 장발을 힘들게 했다. 그래도 그 틈에서 잘 섞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던 어느 날 노부부가 집을 비운 사이 개 도둑이 들어와 어미와 형제들을 훔쳐 달아난다. 그러나 온전히 모두 잃은 것은 아니었다. 장발 자신과 도둑의 구두 한 짝은 남기게 된다. 아무리 소리쳐도 개의 말을 알아들 을 수 없는 노인에게 구두 한 짝의 사연을 알려줄 수 없어 답답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노인은 그 구두를 처마 밑에 걸어 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장발이는 새끼를 낳고 엄마가 된다. 그러나 그 기쁨의 순간도 잠시 노인은 집안 사정이 어려워 개 장수를 부른다. 하지만 장발이 개 장수를 본 순간 눈이 뒤집힐 정도로 짖지만 사연을 알 턱이 없는 노인은 끝내 새끼를 넘기려다 장발에게 물리고 만다.

 

어미와 형제를 잃고 게다가 자신의 새끼마저 잃은 장발은 식음을 전폐한다. 원망과 분노에 하루가 다르게 약해져 간다. 두 번이나 가족을 잃은 장발의 슬픔이 얼마나 클지 과연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시골에서 동물은 정을 나누기 보다 가축의 의미에 더 가깝다. 장발은 노인을 원망하고 적대시하는 것도 모자라 집 밖으로 떠돌기도 한다. 그러나 노인은 자신을 공격하기는 했어도 유독 다른 개들에게서 느낄 수 없는 무언가를 장발에게서 느끼게 된다.

 

너처럼 고집 센 녀석은 처음이다.

자식 놈 속 썩일 때 같구나! 도무지 길이 안 들어. 말을 들어 먹지 않으니 마음을 놓을 수가 있어야지. -p.119

 

다행히 장발은 두 번째 새끼를 낳고 활기를 찾는다. 새끼 한 마리가 곁에 있어 더 기운이 났다. 그러나 노인의 기력은 점차 약해지고 두 마리를 다 키울 수 없게 되자 노인은 장발을 팔려고 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개 장수와 맞닥뜨린 장발이 기를 쓰고 짖어대자 개 장수는 장발을 포기하고 새끼를 데려간다.

 

이야기는 시종일관 우울하고 슬프다. 노부부의 퍽퍽하고 쓸쓸해 보이는 노년의 모습도 처량 맞고 장발의 상실감에 내내 가슴이 무겁다. 하지만 집 주위 담벼락을 어슬렁거리며 바른 말만 골라 하는 새침데기 늙은 고양이 덕에 가끔 웃기도 하고 식탁 위로 오를 인생이었으나 다시 살게 된 시누이(닭)의 등장에 빵 터지기도 했다. 그러나 새끼의 죽음으로 오해는 풀리긴 하였지만 새끼의 죽음에 너무 가슴이 미어졌다. 게다 늙은 고양이의 죽음마저도...

 

겨울의 추위가 닥칠 때마다 시련도 함께 와서일까. 장발은 내내 생각한다. 겨울이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라고.

 

슬퍼할 새도 없이 또 다른 슬픔의 무게에 마음이 무거웠지만 장발이의 마지막 가는 길에 먹먹함이 밀려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자식을 늘 기다리는 노인의 모습과 자식을 잊지 못하는 장발의 모습은 지금 노인세대의 모습만 같아 씁쓸하다. 자식들이 제 갈 길 찾아 떠나도 부모들은 늘 자식들 생각이다. 노인이 원형 계단을 만들며 마지막 기운을 내던 모습이 짠하다. 결국 장발은 원망을 거두고 노인과 함께 원형 계단을 오르며 떠난다.

 

아이들 동화지만 슬픔의 무게도 상당하고 심리를 읽어나가는 것도 쉽지 않지만 다양한 감정을 느껴볼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표지도 참 예쁘게 갈아입어 맘에 든다. 요참에 아이들에게 꼭 읽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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