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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교토의 오래된 가게 이야기 - 세월을 이기고 수백 년간 사랑받는 노포의 비밀
무라야마 도시오 지음, 이자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평점 :
품절

한자리에 머물러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기호도 바뀌고 새로운 아이템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가게의 간판이 수시로 바뀌어가도 바쁜 사람들은 그것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 세태 속에서도 세대에 세대를 이어가며 가업을 이어간다는 일은 요즘 같은 시대에 귀한 일이다.
이 책은 교토의 오래된 가게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창업의 기쁨도 잠시, 다시 간판을 내려야만 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경영서는 아니다. 독자들은 교토의 오래된 가게를 보며 아날로그 감성을 떠올리기도 하고 그들의 신념이 녹아내린 그곳을 언젠가는 찾아보고자 하는 여행의 설레임을 가져볼 수 있길 바라며 기획했다.
교토는 전통문화의 중심지답게 역사가 깊고 유적지가 많은 곳이다. 그래서 선뜻 친해지기가 쉽지 않은 도시라며 여행 시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전하고 있다. 비록 역 규모와 경제발전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지만 우리의 경주와 비교해 보는 것도 여행의 묘미임을 빼놓지 않았다.
도시를 여행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상점가와 거리다. 역사가 숨 쉬는 오래된 가게는 그윽한 향내를 지닌다. 그래서 한곳에서 살아남으며 세월의 풍파를 받아낸 오래된 가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생겼다. 그곳을 찾게 될 날이 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통을 만나는 일은 설렌다. 게다가 십 년 넘게 하고 있는 일에 권태기가 슬슬 오던 차에 그들의 사연에 깃든 노력과 열정을 보며 위안을 얻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곳에 소개된 10개의 노포(수백 년에 걸쳐 영업을 계속해 온 기업)에는 사료와 인터뷰, 관련 기록을 바탕으로 소개하고 있다.
교토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기까지 7대째 이어져오고 있는 고등어 초밥집인 "이즈우"는 주인장의 신념이 확고하다. 손님이 늘었다고 해서 무리하게 확장하지 않는 것, 사계절이 다른 고등어의 소금기를 한결같이 조절하는 것, 한정된 식자재로 최선의 음식을 조리함으로써 고객과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점이 오래도록 운영할 수 있었던 이유인 것 같았다. 장사를 하면서 힘든 순간을 잊을 수 있는 것도 고객 보람된 순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사람이 일생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순간에 먹고 싶은 음식이 자신의 음식이라면 얼마나 벅찰까.
누구에게나 대중목욕탕에 얽힌 추억 하나쯤 간직하고 있듯 일본도 대중목욕탕 문화가 인기였다. 어린 시절 때를 밀면 요구르트를 사준다던 엄마의 꼬드김도 떠오르고 끝나고 나오면 불어오던 바람의 감촉도 잊을 수 없다. 3대째 이어오고 있는 목욕탕 니시키유는 과일상을 하다 그 시절 대중탕만 한 돈벌이가 없다고 여겨 목욕탕 사업을 시작했다. 게다가 니시키마의 좋은 물은 목욕탕 사업을 하기에 좋았다.
장사꾼들의 하루의 피로를 목욕이 대신할 만큼 목욕탕의 수도 많던 시절을 지나 가정 내 욕조가 생기면서 사양산업으로 돌아서긴 했지만 시대의 흐름을 원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목욕탕 내에서의 이벤트다. 다른 곳과는 달리 삼대째 이어져오고 있는 니시키유를 보며 좀 더 오래 그곳에 있길 바라본다.
술의 인기는 어딜 가나 빠질 수 없다. 술에 인생을 달래보려는 이들은 어느 시대건 많았다. 전쟁을 거쳐 문명개화의 물결이 더해지면서 좋은 술을 찾는 이들도 많아졌다. 전통이란 '혁신을 반복하면서 양성된다'라는 신념으로 시작한 마쓰이 주조회사가 대를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양조장이 화학공장 같은 양조실로 변모하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비록 전통주의 소비가 줄고 있긴 하지만 다양한 노력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마쓰이씨의 노력에 전통주에 대한 추억이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불교 건축물은 그만큼 시련이 많다. 난으로 인해 불타고 불교 탄압으로 무너지고 게다 목재를 옮기는 도중에 일어난 눈사태로 안타까운 목숨도 잃는 등 그 기틀을 잡기까지 험난한 세월을 지난다. 1970년대 절정기를 지나 지금의 관광객들로 붐비기까지 그곳을 찾는 이들이 편안하게 머물다 가길 희망하는 도나미 츠메쇼의구로다의 마지막 인터뷰가 기억에 남았다.
여기에서의 즐거움이라면 매일 손님이 바뀌니까 매일매일 새로운 사람과 만날 수 있는 거겠죠. -p.167
일본은 근대화 이후로 커피산업도 급성장한 곳이다. 당연히 시대와 함께한 카페가 빠질 수 없다. 프랑수아 찻집은 근대 일본의 사상과 문화를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전쟁이 패전으로 치닫자 적국의 언어 금지령이 떨어져 잠시 이름을 바뀔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었으며 운동하는 학생들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등 세월의 풍파를 함께 한다. 그냥 어머니의 입맛을 맞추다가 탄생하게 된 카페의 오리지널 스텐더드 이야기도 재밌는 일화였다. 그 시절 카페는 단순히 차를 팔던 곳이 아니었다. 그 시절 어려운 학생들을 도와주며 따뜻한 마음까지 팔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었다.
약 500년 전 창업한 미나토야 사탕가게의 대표 사탕에 얽힌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오래된 만큼 추억을 생각하며 다시 찾는 이들과 그 맛이 궁금해 찾는 이들이 있기에 평일 장사가 시원찮아도 문을 열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대를 잇는 고충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
1910년에 창업한 도장가게를 보니 작년에 티비에서 본 인사동 도장가게가 떠올랐다. 진열장에 전시된 다양한 도장의 재료를 보니 주인이 직접 도장에 필요한 좋은 석재를 찾아다니고 가공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다행히 동양의 도장 문화를 소중하게 바라보는 외국인 관광객들이나 자기만의 도장을 찾는 고객들 덕에 꾸준히 매출이 늘고 있다고 했는데 이곳 일본도 학교에서 쓰는 평가 도장이나 새해 연하장에 쓰이는 도장의 인기가 높다고 한다.
우리도 경주 곳곳, 그리고 오래된 도시 곳곳에 이런 오래된 가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지켜나가고 있는 전통의 가치를 우리도 놓치지 말아야 하겠다. 낡음으로써 더 아름다워 보이는 그러한 공간에서 좀 더시간을 늦추고 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