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틱 세계사 - 교양으로 읽는 1만 년 성의 역사
난젠 & 피카드 지음, 남기철 옮김 / 오브제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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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기 때를 돌아보니 나도 성(性)에 대해 참으로 무지한 채 성장했다. 그것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는 것 자체가 불순한 일처럼 여겨졌었고 섹스라는 행위에 대해서도 잘 몰랐었다. 오죽하면 대학교 때 포르노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는데 그런 나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던 선배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처럼 폐쇄적인 성문화를 가진 세대를 지나왔으니 여전히 섹스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오래전 인류의 성문화에 어떤 희한한 스토리들이 있을지 궁금해진다. 지금과는 얼마나 달랐을까.

 

수메르인들은 분명 관음증 증세가 심했다.- p.4

지금은 몰카라는 심각한 범죄로 인해 관음증 하면 부정적 느낌이 더 많지만 오래전 여성의 신체는 행운을 부르기도 했으며 여성에게 섹스를 더 권하던 시대도 있었다. 그만큼 성문화는 지금보다 훨씬 자연스러웠고 오픈되어 있었다. 그들이 부끄러움이 없어서도 아니고 수치심을 느끼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단지 섹스가 일상이었을 뿐이었다. 세기를 거쳐 오는 동안 섹스는 종교와 도덕적 규범에 제약을 받긴 했지만 섹스에 대한 욕망과 호기심은 끊임없이 이어져오고 있다. 근친상간이나 동성애도 크게 문제 되지 않던 시절도 있었다. 그것은 단지 종족보존을 위해서나 군대를 강화하기 위해서 와 같은 이유 때문이기도 했고 로마처럼 온갖 섹스의 형태를 허용한 나라도 있었다.

 

 

 

 

이 책은 지난 수 세기 동안의 성문화를 다루고 있다. 독자의 연령대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낯 뜨거울 수도 있으며 나 같은 독자에게는 역사 속 이야기이자 서프라이즈에 나올법한 이야기로 여겨질 수도 있다. 저자도 서두에 언급하고 있듯이 분명 빠져 있는 이야기들이 더 많아 보인다. 100개의 챕터를 통해 그 시대의 성문화를 온전히 다 이해할 수 없다. 또한 중세 시대 정조대가 실은 모조품이었다는 사실처럼 사료를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안 된다는 점도 시사하고 있다.

성은 그 자체의 에로티시즘 문화라기보다는 주로 억압되고 착취되어온 역사가 더 많을 것이다.

 

인류와 함께 시작된 섹스가 어떠한 의미를 지니며 변화해 왔는지 신석기 시대부터 중세를 거쳐 전쟁과 냉전시대를 지나 미국 대통령 스캔들까지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서술하고 있다. 여성의 신체를 바라보는 관점, 동성애, 그룹섹스, 최초의 최음제, 최초의 포르노 서적, 오르가즘, 발기부전, 섹스 용품, 음담패설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았다.

 

 

 

오래전의 성문화는 지금보다는 훨씬 자연스럽고 개방적이었으나 모든 이들에게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동성애에 있어 개방적이었던 켈트족이 다른 종족들에게 야만스럽다는 소리를 들은 이유는 신분을 막론하고 무분별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었으며 중국도 동성애가 흔했으나 유럽인들과 교류를 하면서 차츰 혐오증이 퍼져나갔다고 한다. 그만큼 인간의 생각은 수시로 다른 이들의 영향을 받으며 변해갔음을 보여준다.

 

로마는 풍요로웠던 만큼 성문화도 자유로웠다. 예전에 본 다큐에서 로마 곳곳에 남근 형상의 구조물이 많음을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 이유에 대한 해석이 희미하던 차 책에서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남성의 성적 능력을 중시하고 긍정적 의미로 해석했던 반면 그만큼 남성들은 발기불능에 대한 두려움이 컷을 것이다. 각종 발기부전에 대한 민간요법도 많지 않았을까. 반대로 여성이 오르가즘을 위해 클리토리스 수술을 하다 잘못되어 영원히 느끼지 못하게 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인도의 카스트제도하면 엄격하고 불합리한 제도로 여겨지는데 반해 성에 대해선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 점은 의외였다. 섹스 교본 안에 무려 729개의 다양한 기술이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교본이었을까. 1712년에 쓰인 오나니아라는 책은 최초의 마스터베이션 책으로 책이 쓰인 동기는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쓰였다고는 하나 결국 잘못된 사실을 오래도록 방치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성 정체성에 대한 혼란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비록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이들의 사연도 있지만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동성애 처형에도 불구하고 프리드리히 2세는 끝까지 동성애를 즐긴 인물이기도 하다. 섹스가 인생의 전부인 이들도 있다. 무려 132명과 인생을 즐긴 카사노바의 화려한 경력에 입이 벌어졌는데 걔 중에 수녀도 있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그러나 그런 카사노바도 페미니스트였다고 말하고 있는데 과연 여성을 존중했을까.

남성이 아닌 여성의 남성편력도 소개되고 있는데 예카테리나 2세의 바람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60세가 넘은 나이에 22살 남자라니....

 

인류도 종족 번식의 기본욕구 외에 피임법에 대한 고심도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천연고무 발명에 헌신한 찰스 굿이어 덕분에 콘돔이 대량화가 이루어졌다는 점, 여러 섹스 용품의 등장뿐 아니라 마담 보바리의 탄생 비화에 대한 이야기도 소개하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 섹스는 권력을 뒤흔들 만큼 도덕성을 중요시하게 된다. 클린턴 성 추문뿐 아니라 권력을 이용해 성을 쥐락펴락하는 추한 인간들은 그 대가를 제대로 받아야 하지 않을까.

 

섹스는 어느 시대건 재생산을 목적으로 남녀가 성기를 결합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일상생활, 자신의 이미지, 그리고 도덕성과는 상관없이 섹스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p.6

 

[그레이의 그림자]가 출간되기 전인 26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섹스에 대한 환상과 욕망은 끝이 없나 보다. 섹스는 분명 종족보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건전한 섹스는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에도 충분히 동의한다. 옳고 그름의 잣대는 성문화도 인간존중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상대를 존중하는 섹스야말로 진정한 에로티즘이 아닐까. 그레이의 그림자를 아직 보지 못했는데 한번 찾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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