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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ㅣ 아르테 미스터리 1
후지마루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평점 :

분명 처음 오는 곳인데 온 것 같고, 지금이 꼭 이전에 존재했던 순간 같고, 분명 처음 본 사람임에도 낯익은 것 같은 경험. 누구에게나 그런 일들이 있을 것이다. 마치 꿈에서 본 듯이 아니면 전생의 어디쯤인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모호한 순간 말이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나니 나도 사신 아르바이트를 한건 아닐까라는 엉뚱한 생각에 빠지고 말았다.
이 소설은 최근 일본 문학에서 라이트노벨이라고 칭하며 젊은 층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분야의 작품 중 하나다. 소설과 애니 중간의 경계쯤 되는 느낌이랄까. 주인공들은 당연히 감성 풍부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십 대들이다. 그래서 조금 유치하고 가벼워 보이지만 독특한 설정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환상의 세계와 현실 공간을 삶과 죽음이라는 코드로 매끄럽게 연결 지으며 그럴싸하게 납득시킨다. 그 누구도 모르는 죽음 너머의 세계에 두려움을 느끼기보다는 이승의 시간에 충실하자라는 취지의 교훈을 들고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다. 초반의 유치하단 생각들이 흐름에 익숙해지자 이런 시간 영역 대가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어갔다. 왜냐하면 인간 본성의 선함을 믿고 싶었기 때문에.
언제 떠날지 모를 삶이지만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이승에 미련이 남는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허나 소설 속에서는 이런 안타까운 영혼들이 한을 풀고 떠날 수 있는 시간대를 부여한다. 물론 그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도와줄 사신들과 함께 할 수 있다. 사자들에게는 미련을 짐작할 수 있는 초능력이 주어지긴 하지만 사신이 없으면 저승으로 가는 길이 쉽지 않다. 그런 미련도 욕심인 걸까. 그런 시간조차도 솔직하지 못하기에 쉬이 떠나지 못한다.

사쿠라는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지금이 힘든 친구다. 그런 그에게 동급생 하나모리는 사신 역할을 제안한다. 일명 사신 알바. 시급은 더럽게 박하고 사신알바가 끝나면 기억도 사라져버리지만 6개월의 할당 시간을 채우면 어떤 소원이든 하나를 들어준다는 말에 일단 시작하고 본다. 램프의 지니처럼 소원을 들어준다는데 그깟 짠 내 나는 시급 정도야 어떠하리.
하지만 그의 첫 알바 대상은 사쿠라의 첫사랑이었다. 아마 그녀못지않게 사쿠라에게도 그녀와 풀어낼 이야기가 남아 있었던것이었기에 이루어진 만남이 아니었을까.
그렇듯 시작부터 혼란스런 만남이었고 그 뒤로 만나는 사자들도 쉬운 상대가 아니다. 그나마 산소 같은 하나모리가 함께 해주었기에 하루 시급을 채워 나갈 수 있었지만 아동학대를 당하고 죽은 유라는 사자를 만나면서 또 다른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비록 사쿠라가 300엔의 시급에 불만을 품고 시작한 알바지만 그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인생의 가치를 배워나간다. 허영과 오만으로 포장한 삶과 거짓으로 자신을 가두어 버린 삶과 학대와 고통 속에서도 목말라있는 사랑에 대한 아이러니를 통해 인간의 다양한 이면을 보고 느끼게 된 것이다. 게다가 초반에 사쿠라는 어차피 사라질 기억이라는 이유로 시간만 때우려 한다. 그러나 점점 오히려 사라질 기억이기 때문에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점도 깨달아간다. 어차피 사라질 기억이라고 해서 대충 살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더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이들을 보며 살아있는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알아가게 된다.
인간이기에 뒤늦은 후회와 깨달음이라는 인생 공식이 일상이지만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더 나은 방향으로 살아갈 수 있다. 물론 타인의 삶에 영향을 받는 아이들이라면 그들의 불행한 환경이 더욱 안타까울 수밖에 없긴하지만 말이다. 라이트노블이라고 방심하다 무거운 소재에 기분이 착잡하기도 했다. 서로가 인간의 도리만 하고 살아도 미련이 남은 채 떠나는 이들이 줄어들 텐데.
사쿠라의 6개월 알바인생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많았다. 사쿠라는 나 자신을 사랑하며 희망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사쿠라가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는 대략 짐작하고도 남겠지만 그래도 읽어보길 바란다.
그나저나 이런 아르바이트 자리가 있다면 아마도 일자리가 넘쳐나지 않을까. 세상에 미련이 남은 영혼들이 넘쳐날 테니까.~^^
"들어줘, 사쿠라. 내가 태어나고 죽은 이야기를." -p.285
이 문장이 왜 이리 가슴에 콕 박히는지...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는 건 그만큼 내 인생의 무게를 반으로 나눌 수 있기 때문에 그런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