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마쓰를 만나러 갑니다 - 나를 위로하는 일본 소도시 일본에서 한 달 살기 시리즈 1
이예은 지음 / 세나북스 / 201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당분간은 빠듯한 일정에 여행 생각은 접어두었었는데 또 여행 에세이를 펼쳐 들었다. 주말마다 숲을 찾는 것으로 만족하려 해도 김포 하늘 위를 떠다니는 비행기 소리에 떠나고 싶은 욕구는 수시로 밀려온다. 일본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거리적 이점이 있고 성수기를 피하면 저렴한 비용으로 떠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북적대는 관광지보다 소도시를 찾는 이들도 많다. 최근 일본 소도시를 소개하고 있는 책들이 제법 눈에 띄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말이다. 덕분에 나 같은 여행 초짜들에게는 폭넓은 여행 팁을 공유할 수 있어서 더욱 반갑기도 하다.

 

도시라는 병에 걸리는 것도 모자라 요즘처럼 미세먼지로 숨조차 맘껏 내쉴 수 없을 때면 자연을 보존하고 있는 한적한 지역으로의 여행이 그리워지게 된다. 저자는 남편 덕에 그렇게 바라던 소도시 여행이 가능했고 한 달 정도의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그럴 수 없는 내게 그것조차도 참 부러울 수가 없다. 그렇게 해서 저자는 일본 남서쪽 시코쿠 지방에 자리한 항구 도시인 다카마쓰로 향한다. 그곳에 머물며 가가와현의 주변을 돌아보겠다는 계획을 짠 것이다. 다카마쓰는 일 년 내내 화창한 날씨를 자랑하고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우동이 유명한 곳이라는 소개만으로도 호기심이 일었다.

 

이런 주인이라면 나 같은 '한 달짜리' 뜨내기손님을 기억하거나 섣불리 아는 척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 p.77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는 김태리다. - p.83

 

똑같은 지역을 소개하더라도 저자의 성향과 취향이 나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으면 끌림은 배가 된다. 나도 그러한데... 라는 문장을 만날 때마다 친근감을 느껴졌고 다카마쓰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직 혼자 여행을 해 본 적이 없어서인지 너무 씩씩하고 능숙한 여행담은 내겐 오히려 부담스럽다. 무엇보다 느린 걸음 따라 저자의 생각이 묻어나는 여행담이라서 더 좋았다. 마치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적당히 헤매고 아차 싶은 순간들을 이야기할 때는 나도 언젠간 혼자만의 여행을 해보리란 용기를 가져보았다.

이 책은 다카마쓰와 그 주변에 대해 저자의 감상이 더 주를 이룬다. 그래서 알찬 여행을 계획한 이들에겐 다소 미흡할 수 있겠다. 하지만 보는 것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느끼고 싶은 이들이라면 좋은 선택이 되겠다.

 

인생의 모든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쉼 없이 달려가는 사람보다

조금 더뎌도 여유 있게 걸으며 주변 이들에게 곁을 주는 사람이 좋다.

 -p.146

 

 

 

여행의 기본은 먹고 마시고 보고 걷는 일이 주를 이루듯 저자는 푸드테라피, 아트 테라피, 워킹 테라피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게다가 지역 정보와 여행 팁도 빼놓지 않고 꼼꼼하게 덧붙여 놓았기에 여행 전 참고하면 좋겠다.


낯선 장소가 주는 자극은 분명 쳇바퀴 도는 일상에 윤활유 역할을 한다. 그리고 저자처럼 한 달이라는 여유가 주어지면 좀 더 인간 냄새를 풍기는 여행이 가능하다. 소도시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을 충분히 담다 보면 결국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혼자만의 여행은 틀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발걸음을 옮기다 괜찮은 곳을 만나서 요기를 하고 낯선 카페에 앉아 차 한 잔에 자신을 내맡겨도 충분히 힐링이 된다. 간단한 별미에 깃든 옛사람들의 정성이 깃든 소박한 음식과 오기지 말에서의 자연식 밥상에 식욕이 당겼다. 물론 우동은 말할 것도 없지만 말이다.

 

 

일본의 예술 문화가 소도시 곳곳에도 잘 뿌리내리고 있는 모습은 정말 본받아야 할 모습이다. 프랑스가 문화강국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깨닫고선 자신의 그림을 전부 기증한 작가 덕에 일상의 작은 틈에서도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이들이 부러웠다. 자연만 한 작품도 없지만 최대한 자연과 잘 어우러지게 만든 미술관과 조각품들을 보며 그 취지를 잘 살려낸 것 같았다. 게다가 요즘 심심찮게 읽었던 나오키상 작품 덕에 나오키상을 만든 기쿠치 칸이란 인물을 보며 일본 문학의 발자취를 조금 들여다볼 수 있어 반갑기도 했다. 이렇듯 저자는 그들의 문화를 보며 생각의 결을 다듬어 나갔다.


자연은 시대와 화풍에 연연하지 않고, 오로지 우주의 움직임에 따라 무한한 빛깔과 모양을 자아낸다.

사람은 언어와 문화, 피부색으로 편을 가르고 선입견을 갖지만, 하늘이나 바다는 스스로 국경을 나누는 일이 없다. -p.129

 

 

오기지마 섬의 고양이들의 생김새가, 고토히라궁의 끝없는 계단과, 리쓰린 공원과 사누키만노 공원의 푸르름이 궁금해서 블로그를 뒤지다 보니 진도가 더뎠지만 머릿속에 오래 머무를 듯했다. 고토히라궁의 계단을 보니 얼마 전 산행이 떠올랐다. 약 오백 개의 계단도 죽을 것만 같았는데 1368개의 계단이라니... 저자도 중간에 돌아내려오면서 오르기 전의 마음가짐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올라야 할 이유가 있는 이들에게 중도 포기란 없을 테니까.


사누키만노 공원의 모습은 그 규모에 입이 떡 벌어진다. 규모부터 달라서인지 대자연의 정취를 흠뻑 마실 수 있을 것만 같다. 물론 여름에는 벌레도 많고 숲에서 이상한 소리나 움직임에 움찔하기도 하겠지만 그 광활함에 온 정신을 맡겨보고 싶었다.

 

 

 

저자처럼 한 달이라는 넉넉한 일정을 가지고 여유롭게 돌아다닐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대부분은 짧은 일정으로 다녀가야만 한다. 그래서 마지막 장에서는 지역별 당일코스와 일박이일 코스도 소개하고 있으니 짧은 일정으로도 다카마쓰를 즐길 수 있는 계획을 짜보는 것도 도움이 되겠다.


모든 여행지가 모든 이에게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누구는 정감 어린 경치에 한껏 빠져들겠지만 누구는 밋밋해서 볼거리가 없다고 볼멘소리를 할 수도 있다. 고토히라궁의 계단 앞에서 마음가짐을 달리 가지면 정상도 문제없어 보이듯 여행의 출발선에서 어떤 생각을 품고 떠나느냐에 따라 여행의 묘미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낯선 곳에서 얻은 깨달음은 일상을 더 살찌운다. 그래서 우리에게 여행은 꼭 필요한 것이다. 일본 소도시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면 저자의 발걸음 위에 내걸음을 옮겨보아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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