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순간
톰 말름퀴스트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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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각종 사건사고와 주위에서 일어나는 안타까운 소식들을 접할 때면 예전보다 곱절로 마음이 무겁다. 슬픔은 나이의 무게만큼 비례하는 걸까. 아니면 눈물이 곱절로 많아진 것일까.

죽어가는 이들을 지켜보거나, 갑작스레 죽음을 경험한 이들을 다룬 이야기는 많이 출간되어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느낌은 조금 색달랐다. 솔직히 슬픔에 관한 감성 에세이쯤 되지 않을까 하던 예상은 빗나가고 지나치게 사실적인 묘사에 조금 당황했다.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는 일이 조금씩 피곤함다고 느낄 때쯤 남편의 어깨에 엄청난 슬픔과 한줄기 희망이 동시에 내렸음을 알았다.

모든 순간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보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불행은 예고 없이, 느닷없이 닥쳐온다. 한순간에 그런 일상을 빼앗긴 이들이 힘겹게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우리는 잘 모른다. 다만 무척이나 힘들 것이라는 정도일 뿐이다. 하지만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아픔의 무게감을 느껴볼 수 있다.

삶이 위태로운 아내와 새 삶을 부여받은 아기. 탄생과 죽음의 경계에서 긴박하게 오가는 한 남자. 이 이야기는 그의 이야기다. 십 년 동안 함께한 아내가 사경을 헤매고 있으며 그 와중에 일찍 태어날 수밖에 없던 아기는 인큐베이터에 의지하고 있다.

몸의 균형이 점점 무너져가고 있는 아내의 병명은 백혈병. 아내도 아기도 여럿 가닥의 생명줄을 의지한 채 생과 사를 지나고 있다. 남편은 여러 의사진을 통해 들은 아내와 아기의 상태를 체크하느라 거의 녹다운되기 일보 직전이다. 편두통으로 머리가 쪼개질 듯 아파도 아내와 아기의 곁을 떠나지 않고 지킨다. 그리고 그는 매 순간을 기록한다. 그런 상황이 오면 그럴 정신이 있을까 싶지만 그는 부지런히 기록한다. 오죽하면 그런 남편을 향해 직업이 심리치료사냐며 묻는 의사도 있다. 하지만 남편은 단지 아내가 깨어났을 때 이 모든 순간을 전해주기 위해서 두 배로 차분해지려 한다. 하지만 아내는 딸아이의 이름만 남긴 채 떠나버린다.

그녀가 마스크를 벗으려고 해서 내가 제지한다. 그녀가 앓는 소리를 낸다. 카린, 왜 그래? 내가 묻는다. 아기 이름. 그녀가 말한다. 그래, 그래, 리브로 짓고 싶다는 거지?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소리친다. 리비아. 리비아?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목을 든다. 리비아. 그래 리비아로 하자. 내가 대답한다. (/ pp.14~15)

이 책은 한 남자의 시선만으로 매 순간을 전달받는 느낌이다. 그래서 우리는 남겨진 남편에게 안타까운 마음이 더 들 수밖에 없다. 지나치게 예민해 보이기도 하고 가끔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아내와 결혼식을 여태 올리지 못한 탓으로 딸과의 친부 관계를 증명해야 하는 어이없는 순간을 보면서 사회제도에 너무 무지한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또한 아내를 위한다며 장인 장모에게 마지막이 될지 모를 딸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것도 너무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카린으로 인해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떠난 아버지와는 내면의 화해를 하며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난다. 그가 남은 생에 떠난 이들과 주변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은 딸 리비아를 잘 키우는 길일 것이다. 지금의 그와 딸의 모습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평화로운 삶이 언제 부서질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지붕이 무너질까 내내 조바심을 내며 살 수도 없다. 하지만 뜻밖의 혼란에 맞닥뜨렸을 때 이성을 놓지 않고 버틸 힘을 길러야 한다. 누구도 저런 순간을 떼어놓고 살 수 없음을 인지해야 한다. 힘든 나날을 얼마나 견뎌야 봄날이 올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 한 권의 책은 내가 만약 그와 같은 상황이었다면?이라는 가정을 불러온다. 아마도 나라면 한동안 넋을 잃어버릴 것 같지만 여러 가정을 통해 조금 단단해질 수 있지 않을까. 추억을 되짚으며 위안을 삼고, 현실을 받아들이며 노력하고, 미래를 꿈꾸며 나아가야 하는 것 평범한 습관들이 소중한 것임을 되새겨야겠다.

오늘 엄마를 모시고 병원을 찾았다. 디스크가 재발하고 기관지가 많이 안 좋았던 터라 정형외과와 내과를 오가는 동안 정신이 없다 보니 의사나 간호사의 말을 놓치기 일쑤였다. 그러다 문득 나도 메모를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있는 매 순간이 아슬아슬하지만 위기를 지나면 그런 날들보다 좋은 날이 더 많다는걸, 그리고 그들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날이 있어 행복하다는 걸 느끼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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