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무덤에 묻힌 사람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마거릿 밀러 지음, 박현주 옮김 / 엘릭시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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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특정한 날을 되살려 내야 한다고 가정한다면 우린 그날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실을 알아낼 수 있을까.
이야기는 작가가 오래전 공책에 적어놓은 한 문장 짜리 착상에서 시작했다.

한 여자가 꿈속에서 공동묘지를 찾아가는데, 어떤 묘비에 자기 이름과 출생일,

그리고 사 년 전 사망일이 씌어 있는 것을 본다.
이봐, 이걸로 뭐 하나 써보지. -p.12

 

데이지는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안 이후로 삶의 생동감이 사라진다. 그래서 그녀는 습관적으로 미소를 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힐링 부인은 아내라는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감사할 일이라며 딸을 훈계한다. 그래서 그녀는 딸에게조차 차가운 미소를 짓는다.
그런 관계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두 모녀 사이는 지나치게 냉담해 보인다. 필딩 부인은 일방통행을 고수하고 자신이 꾸며놓은 무대가 망가질까 불안해한다. 전 남편을 경멸하고 딸과의 만남도 거부한다. 그런 엄마에게 지친 데이지는 오히려 되는대로 살고 있는 아버지의 빈자리가 늘 그립다.

데이지는 그들이 그녀를 사랑한다는 걸 알았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하지만 어느 쪽도 완전하진 않았다.
짐은 그녀가 이상적 아내의 개념에 맞을 때만 그녀를 사랑했다.
어머니는 자신이 투영된 모습으로서의 딸을 사랑했지만 투영된 부분에는 원본의 결점이 없어야만 했다. - p.327

데이지와 남편 그리고 데이지와 엄마, 그들의 대화에서 따스함을 읽을 수가 없다. 이상한 꿈에 정신을 쏟으려 하는 데이지를 자꾸만 다그칠 뿐이다. 꿈속의 그날이 자꾸만 걸리고 그날 이후로 자신의 어떤 세계가 무너졌음을 감지한다. 하지만 사 년 전 그날을 재구성하는 일은 뜬구름을 잡는 것만큼 어이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녀는 운 좋게 탐정을 고용하게 된다. 삼 년 전 연락이 끊어진 아빠의 보석금을 내주려 만났지만 그녀는 그를 적절히 이용한다.

도서관에서 그날의 신문을 뒤지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가 꿈속에서 본 무덤을 확인한다. 마침내 낯설지만 무언가 연관성이 있어 보이는 두 명의 이름을 만나게 된다. 보호관찰 중이었던 후아니타 가르시아라는 여자의 이름과 무덤의 주인인 카를로스 카밀라라는 남자의 이름.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결국 진실은 드러나게 되나 보다.

그녀의 흩어졌던 하루의 조각들이 맞춰질수록 궁금증을 더해간다. 그러나 데이지만 빼고 일사불란하게 소식들이 오고 간다. 엉성한 물음이 군데군데 남아있긴 하지만 시절을 감안한다면 작가는 마지막까지 심리 서스펜스를 잘 끌고 간다. 추리물에 약한 나 같은 독자는 책의 구성이나 인물 간의 관계도를 쉽게 포착하지 못해서일까 막판 한방도 흥미롭다. 그러나 뜬금없는 애정 신은 헐리웃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고 필딩이란 캐릭터도 당최 설명이 안되었다. 어쩌다 그렇게 중요한 일을 데이지는 모두 잊고 지낸 걸까. 기억을 잃을만한 충격적 사고도 등장하지 않았는데.

당시나 지금이나 여전히 사회는 차별과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거짓의 시작은 필링 부인의 위선이었지만 그것이 사회적 편견이었다고 용서받기에는 죽은 이도, 살아있는 이에게도 상처가 크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분류와 구분을 가르치던 때가 떠올랐다. 동물과 식물, 곤충과 동물, 차가운 느낌과 따뜻한 느낌, 세모와 네모, 포유류와 동물 등 수없이 다름에 대해 구분 지으며 이해시키는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자라면서 그 구분은 점점 세분화되고 구체화되며 자신의 생각이 입혀진다. 특히 그것이 혈연이나 인종 같은 관계도에서는 편견이 이해가 되기까지의 길은 너무나 멀어서 거짓과 오해로 삶이 얼룩지기도 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녀관계(데이지와 힐링 부인, 후아니타와 로사리오 부인)가 안타깝다. 딸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 딸의 삶마저 침범했다. 지나칠 정도로 남의 비위를 맞추던 친절한 데이지. 그런 그녀가 그날 죽었다. 그리고 엄마의 삶에서 빠져나오고자 한다.
그렇다면 정말로 흥미로운데, 나는 항상 그녀가 가면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거든. 그만두었다면 좋은 징조일 거야. -p.226
로사리오 부인은 그녀가 본 것을 믿었고 딸을 위해 양심의 속인다. 그 이후 점점 더 신을 의지하며 죄를 씻을 수 있길 기도한다. 딸을 사랑했지만 진심으로 이해하지 않아서 결국 속죄하지 못하고 떠난다.

가난한 이방인의 삶, 더구나 여성으로써의 삶은 억척스럽고 거칠어야 버텨낼 수 있었나 보다. 로사리오 부인의 친구인 브루스터 부인을 표현하고 있는 문장이 내겐 가장 인상깊었던 소설이었다.


부인은 작고 야윈 체구의 구두쇠 여인으로 무슨 작업을 하든 치수가 한참 큰 데님 앞치마를 입었다. 그 앞치마를 입은 채 카운터를 닦고, 파리를 잡고, 얼굴을 훔치고, 뜨거운 냄비를 다루고, 코를 풀고, 신문을 팔러 온 신문 배달 소년을 쫓아내고, 자잘한 팁을 모으고, 손을 닦았다. 앞치마는 부인의 모든 개성을 담고 있었다. 밤에 퇴근하면서 앞치마를 벗으면 신체의 주요 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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