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와 장미의 나날
모리 마리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쉬어가고 싶을 때 읽는 책들이 있다. 요즘 쏟아지는 감정 서적들 말고 과거의 시간대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들 말이다. 예전에 읽은 책 중에도 일본 작가의 책들이 몇 권 있었는데 복잡한 일상을 덮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끄트머리 어딘가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들이 하고 싶어진다. 읽으면서 고뇌의 시간과 사투를 벌이지 않아도 되고 게다가 과거의 시간 속에서 그들의 행적을 쫓는 재미도 있다.

여행과 일상뿐 아니라 늙어가는 모습마저도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문체가 주는 마력인 것 같다. 별것 아닌 일상이 별것이 되는 건 그들의 평범하지 않은 조건도 있겠지만  살아가는 모습은 별반 다를 게 없음이 보인다. 단지 무엇을 먹고, 어디를 여행하고, 어떤 사회적 위치에 있었냐보다는 그런 행위를 통해 느낀 감정들에 공감하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모리 마리라는 작가는 낯설지만 사노 요코는 조금 안다. 그런 그녀가 사랑하는 작가라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그녀의 아버지가 나쓰메 소세키와 쌍벽을 이룬 모리 오가이라는 사실에 그녀의 출신이 대단함을 말해준다. 그래서 그녀의 유년시절은 부모님의 사랑(마리는 최고야) 속에 유복하게 보냈다. 그 당시 서양문물을 온몸으로 접한 것이 그녀의 온 감각을 살려내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버지 덕에 서양 음식이 혀끝에 익숙해지고, 있는 집 자식답게 프랑스어를 배운 실력으로 프랑스에 잠시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의 언어와 문화에 흠뻑 빠져들기도 한다. 아버지가 번역한 독일 요리책 레시피 덕에 그녀의 식감은 더욱 풍부해진다.

비록 이른 결혼을 시작으로 두 번의 이혼을 거치며 가난한 살림으로 어려운 삶을 살긴 했지만 그녀는 나름의 행복을 느끼며 살았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식도락이었다. 매끼 원하는 음식을 만드는 일만큼 일상도 멋대로 만들어 가는 것임을 그녀는 일찍 깨달았다. 누군가는 외롭지 않았을까 해도 그녀의 글 속에서 그런 허전함은 찾아보기 어렵다. 솔직함과 당당함은 어린 시절 부족한 것 없이 자란 이유에서 기인하겠지만 그것은 오히려 그녀를 자유롭게 놓아주게 된다. 여자라서, 아내라는, 엄마이기때문에라는 울타리를 과감히 헐어버린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인생을 쏟는다. 물론 장편은 쓰기 힘들다고 몇 번이나 투정을 부리지만 맛있는 음식만 생각하면 기분이 절로 좋아지니 그녀는 글 쓰는 일도 그다지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다른 집안일은 그저 필요하니까 할 뿐이지만
요리를 하는 건 즐거워서 견딜 수 없다.

 

 

 

그녀는 스스로 먹보임을 자처한다. 어린 시절부터 혀로부터 기억한 요리들은 그녀를 더욱 요리의 세계에 빠져들게 했다. 또 프랑스에서 곁눈질로 배운 요리, 눈으로 글로 익힌 요리들로 그 누구보다 요리만은 자신 있음을 드러낸다. 그녀의 레시피가 낯설긴 하지만 부담스럽지 않고 담백해 보인다. 마치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장면들이 스치듯 지나자 입속에 침이 고인다. 새벽에 읽기엔 여간 고문이 아니다. 당장 아무거나 입속에 넣어야 그다음 장이 넘어갈 것 같아 나 역시 레몬티 한 잔 옆에 두었다.
그녀의 요리 중에 토마토 버터구이와 양파 버터구이가 제일 당기는 음식이었다. 요건 이번 주 캠핑을 떠나 한번 해먹을 예정이다. 토스트를 곁들여도 훌륭하겠다.

그녀는 시시콜콜 잡담도 늘어놓는다. 좋아하는 배우들, 운동선수들 얘기뿐 아니라 싫어하는 사람도 과감히 드러낸다. 솔직한 만큼 까탈스럽기도 하다. 요리도 마찬가지다. 요리를 할 때나 음식을 먹을 때도 그 정도의 차가 확실히 드러난다. 식당에서 음식이 형편없이 나오면 그 화를 참을 수가 없다.

사실 나는 어느 정도는 미치광이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반드시 내가 생각한 대로 해 요리를 내가 생각한 대로 해서 먹지 않으면 아무래도 싫다는 것인데, 그 싫은 정도가 좀 병적일 정도로 심하다. 회를 간장에 담그는 정도에 대해서도, 무 간 것이나 여뀌를 뿌리는 정도에 대해서도 까다롭다. 무 간 것은 새빨개져서는 안 된다. -p.63

그녀의 그런 솔직함이 조금 당황스러웠던 건 프랑스와 자국을 비교하며 자국의 음식과 서비스에 불만을 호소하는 장면들이다. 일본의 상인들은 상인으로서의 자부심도 없다며 딱 잘라 말할 때는 지금 일본의 이미지와는 사뭇 달라서일까, 아니면 자국민과 관광객이 느끼는 정도의 차이점이 있는 것일까 의아했다. 전 남편을 나와 남편이었던 사람으로 묘사하는 점도 남편을 그다지 자신의 인생에 넣고 싶어 하지 않는 느낌이다. 괜찮았던 식당을 소개할 때도 솔직하다. 장단점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불친절한 점원을 여전히 기억하는 걸 보면 그녀는 역시 쉬운 상대는 아니다.

이처럼 그녀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사랑보다 자신을 더 사랑한 듯 보인다. 그녀가 막상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빠져들듯이 그녀는 글을 쓰면서 자신을 연마해 나간다. 늘 어른이 되지 못한 채 머물러 있을 것만 같다던 그녀에게 사랑이란 늘 받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넘치는 자기애마저도 사랑한 듯하다. 넉넉하지 못한 생활에 침대 위에서 채소를 썰기도 하고 요리도 하지만 그것조차 즐거움이었던 그녀. 콜라를 좋아하고 커피보다는 홍차를 즐기던 그녀는 진정 삶을 즐길 줄 아는 여자였음에 틀림없다.

문체가 훌륭하거나 주옥같은 문장은 없다. 그냥 편안하게 그녀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듯 그녀의 삶 자체를 들여다보며 나름의 휴식을 취했다. 아쉬운 점이라면 여러 산문을 모아 출판하다 보니 여기저기 중복되는 문장이 더러 보인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편집이 아쉬운 부분이었다. 나는 요리를 즐기는 편은 아니다. 내게 있어 요리란 늘 가족들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도 그녀처럼 나를 위해 요리란 걸 해 보리라 다짐하며 그녀의 나날들에 화답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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