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제인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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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그들에게도 비밀은 있다. - p.394

 

자신의 실수는 관대하지만 타인의 실수는 용납 못하는 사회, 누구에게나 비밀은 존재하지만 타인의 비밀이 드러나면 위선자로 몰아세우는 사회. 물론 사건의 본질에 따라 대중의 판단은 달라지겠지만 공정해야 할 언론도 제 역할을 못할 뿐 아니라 대중의 그릇된 판단과 일방적 비난은 참으로 안타깝다.

바바, 제인은 정치 불륜 스캔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국내외를 떠들썩하게 한 여러 유사 사건들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그리고 내가 루이스(레이첼이 온라인 미팅 사이트에서 만난 세 번째 남자로 아비바에 대해 마구 떠들어댄다.)와 칠십 대 노부부(제인을 보고 아비바를 닮았다며 과거 스캔들을 끄집어 낸다)처럼 내 멋대로 판단하고 결론지은 건 아닌지 부끄럽기도 했다.

이십 대 여성인턴사원과 사십 대 남성하원의원의 스캔들이라면 꽤 오랫동안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도 남는다. 만약 의원이 정치적으로 신뢰를 받고 있는 입장이라면 도덕성에 흠집은 나겠지만 어쨌든 살아남을 수 있다. 게다가 옆에서 묵묵히 남편을 지지하는 아내가 있다면 더더욱.

시작은 아비바였다. 의욕은 넘쳤고 사랑에 대한 믿음도 과했다. 사랑도 일처럼 잘하면 되는 줄 알았다. 두려움보다는 두근거림이 좋았다. 다행히도 아비바는 엄마의 적극적 방해로 죄책감을 느끼며 조용히 끝내려 한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함께 탄 차량을 다른 차가 들이박으면서 요란하게 드러나고 만다.

유부남에게 먼저 들이댄 점만 본다면 아비바는 충분히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본질은 그게 아니다. 누가 먼저 들이댔건 둘은 똑같이 비난을 받고 수치심을 느껴야 했으며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모든 비난은 아비바에게로 꽂힌다. 그녀의 실체는 그녀가 익명으로 작성한 블로그 덕에 파헤쳐 질 대로 파헤쳐 진다. 그녀는 더 이상 아비바로 살아갈 수 없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집안에 숨어 있는 것뿐이다.

소설은 사건의 당사자와 가족 그리고 불륜남의 아내의 심경을 그리고 있다. 레이첼이 먼저 말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하여 삼십 대 아비바인 제인, 그녀의 딸 루비, 불륜남의 아내인 엠베스, 그리고 이십 대의 아비바, 이 다섯 이름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노부부의 대화에서도 잠시 언급되지만 가장 불쌍하다는 당사자의 부모와 불륜남 옆을 지켰단 이유로 냉혈한 소리를 듣는 아내의 심경은 과연 어떨지 생각한 적이 있기에 그녀들의 이야기는 흥미롭게 다가왔다.

레이첼은 필립 로스를 좋아하며 자기 관리에 최선을 다하는 교육자로 남편의 정부와도 차를 마시는 쿨한 여자다.
외동딸을 위해 불륜남의 아내 앞에서 자빠지는 쪽팔림에도 사실을 알려 막으려 했고, 해리 포터에 빠져 수영장 물 위를 둥둥 떠다니던 딸을 엎어끌어내린다.

그렇게 아비바는 집을 떠났고 제인으로 다시 태어난다. 혼자서 딸을 낳고 사업도 시작한다. 이미 대중에게 지친 제인은 수치스러워하기를 거부하며 가던 길을 가기로 한다. 대중에게 이해를 바라는 건 그 뒤다. 열심히 진심을 다해 사는 것만이 딸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니까. 그런 진심이 모건 부인 같은 지지자를 옆에 둘 수 있었다. 엄마의 과거와 아빠의 정체가 궁금했던 루비의 일탈에 조금 짜증이 일기도 했지만 십 대 사춘기의 반항이라고 생각하니 이해가 된다.

정치인의 아내라는 자리는 사랑보다 지켜야 할 것들이 더 많기 마련이다. 엠베스는 가짜 사랑을 사랑이라고 믿었으며 자신의 위치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허울뿐인 관계를 유지한다. 에밀리가 허상으로 만들어낸 앵무새는 그녀의 외로움을 대변한다. 다짜고짜 찾아온 루비를 밀어내지 않은 점도 그녀가 떠안은 외로움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정보의 홍수 속에 갇힌 개개인의 정보로 인해 주홍 글씨는 더 깊게 새겨진다. 잊힐 권리는 신기술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여기서 되새길 점이 한가지 더 있다. 내가 남긴 댓글이 누군가에게 주홍 글씨가 될 수도, 그리고 나에게 주홍 글씨로 되돌아올 수 있음을 깨닫는다면 비난에도 좀 더 신중해 지지 않을까 한다. 대중이 좀 더 현명해지고 너그러워진다면 제인 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되찾아 줄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의 아비바와 같은 여성이 조금 더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이 불려지길 바라본다.
그나저나 루비의 출생이 너무 화끈한 것 아닌가.^^

 

특별한 건, 인생에서 행복의 열쇠는
언제 입을 다물어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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