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아델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이현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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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스스로의 유약함을 알고 거기에 저항 없이 빠져 들어간다.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섹스를 먹고사는 여자. 밥은 굶어도 섹스는 끊을 수 없다. 피를 갈구하는 뱀파이어처럼 그녀에게 삶의 전부는 섹스다. 욕정을 참기 위해 그녀도 애를 써보았다. 달리고 또 달리는 것으로 일주일씩이나 참아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끓어넘치는 욕정 앞에 또 무너진다.
하고 싶어진다는 것, 그건 이미 졌다는 말이다. - p.14
님포매니악이란 단어가 생소하고 색정증이라는 증상을 잘 모른다면 이 소설은 상당히 불쾌하게 다가올 수 있다. [달콤한 노래] 작가의 데뷔작이라는 사실도 놀랍지만 소재가 상당히 파격적이긴 하다. 그래서 님포매니악에 대한 궁금증은 아델의 삶으로 답할 수 있겠다.

이런 비슷한 증상으로 배회하는 삶을 그린 영화 두어 편 본 적이 있다. 영화 [셰임]과 [님포매니악 볼륨 1], 이 두 편의 영화는 인간의 욕정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나는 님포매니악은 끝까지 보지 못했다. 영상매체가 색정증을 알리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이해시키는 데는 실패한듯하다. 화면은 너무나 자극적이었고 지저분했다. 오히려 나에게는 역효과를 낳은 셈이다.

그래서였을까. 내게 있어 소설은 그녀의 삶을 이해하기에 조금 더 나은 장르였다. 색정증 환자가 포르노 여주인공이나 창녀와 동일시될 수 없음을 알았다. 그것은 우리의 뇌중 전두엽이 문제를 일으켜 생긴 병이라고 인식하면 좀 더 나은 시각으로 소설을 읽어 내려갈 수 있다. 문란한 관계를 놓을 수 없었지만 그녀는 더 나은 모습이고 싶었다. 의사 남편과 아들 하나를 두고 기자라는 직함을 가진 삶, 타인의 부러움을 충분히 살 만큼 완벽해 보이지만 그녀의 삶은 철저히 계산된 연기일 뿐이다. 그녀의 연기[演技]는 그녀의 죄책감을 연기[煙氣]처럼 날려보낼 만큼 완벽해 보인다.
아델은 타인들의 시선을 받고 싶다는 욕망 외에 그 어떤 욕구도 가져본 적이 없다. -p.20

그런 기질이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아델에게 심각한 건 자신도 자신을 제어하지 못한단 사실이다. 이미 이성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나 자신보다 더 힘센 어떤 게 날 움직여. - p.207
점점 자극적이고 변태적인 성행위에 이끌려 상대와 장소, 상황을 가리지 않는다. 그녀에게 있어 사랑도 모성본능도 불필요한 감정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결혼이란 제도 속에 들어오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녀로 인해 남편의 꿈과 이상은 산산조각 났다.

 

만족을 모르는 인간은 주위의 모든 사람을 파괴하는 법이야. -p.276

 

그녀의 모든 정황이 다 드러나고 남편은 경악하고 치를 떤다. 하지만 예상을 엎고 남편은 그녀를 아내의 자리에 둔다. 그림자처럼. 의심과 감시가 일상이 되자 이젠 남편도 정상이 아닌듯하다. 곡기를 끊으면 죽을 수밖에 없듯이 그녀도 서서히 죽어간다.
그녀가 두려워하는 건 남자가 아니라 고독이다.
누가 됐든, 누군가의 시선을 더 이상 받지 못한다는 것, 무심한 익명이 된다는 것, 군중 속의 하찮은 돌멩이가 된다는 것이 두렵다. - p.264

이 소설은 무엇보다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라는 문장을 곱씹으며 무엇이 사랑 이야기란 말 인가라며 의문에 휩싸였다. 그냥 추잡한 자신의 욕정을 사랑한 이기적인 여자로만 여겨질 뿐이다. 정상과 정상이 아닌 범주에 성적 쾌락보다는 타인과의 관계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성적 욕구가 넘친다고 죄가 될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욕망으로 타인의 삶을 망친 건 죄다. 그녀는 욕정보다 자신을 아끼는데 애써야 했다. 이기적인 결혼 따윈 걷어치워야 했다.

그녀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거나 공감하지는 못하겠다. 다만 영화나 소설을 통해 그러한 기질을 떠안고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즉 기질의 다양성을 인정해야겠지만 솔직히 내 인생의 테두리 안으로는 들이고 싶지 않다. 그녀의 인생이 극단적 선택으로 끝나버릴 것만 같아 안타깝고 그런 그녀를 놓지 못하는 남편의 모습도 가련하다. 용서해달라고 빌었지만, 그가 다시 시작하려는 삶에 아델이 응하게 될까.

아버지의 장례식으로 다시 세상으로 나온 아델은 욕정에 이끌려 바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만난 남자와 춤을 추는 그녀. 그녀가 좋아한다는 마이클 부블레의 ‘You don't know me’ 를 찾아 듣고 있자니 아델의 지나온 인생 때문에 괜스레 눈물이 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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