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 - 김제동의 헌법 독후감
김제동 지음 / 나무의마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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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헌법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우리가 헌법의 '진짜 주인'이 됩니다.

 

 

 

원래 욱하는 성질머리를 타고난 데다 화가 나면 말이 잘 안 나오는 편이다. 불리하거나 억울한 상황에 닥쳤을 때 말문을 열지 못하거나 심지어 별일 아닌 상황에서조차 말발이 딸린다고 느낄 때면 자존감도 떨어진다.
그래서일까. 드라마나 영화에서 말로 상대를 제압하는 장면이 나오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특히 법 조항을 나열하며 한방 먹이는 순간은 멋져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드라마라는 생각뿐 실제 헌법에 대해선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 모습이 그렇게 부러웠으면 대한민국 헌법을 한번 찾아봤어야 하는 건데 헌법은 특정인들을 위한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정권이 바뀌고 나서부터 제동씨를 여기저기서 자주 볼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반가웠다. 원래 티비까지 볼 여유가 나지 않아 잘 못 보는 편인데 어디서 보았는지는 가물거리지만 제동씨가 헌법을 외우고 다닌다고 말하던 장면이 스쳐지났다. 얼마나 헌법에 대해 말하고 싶었으면 책까지 냈을까 하며 책을 들여다보았다. 바램이라면 내 모자란 말발에 기름칠도 하고 법을 든든한 내 편으로 만들어 보자는 결의도 생겨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법이라고 하면 사회 질서를 잡기 위한 규율쯤으로 여긴다. 법은 법을 다루는 직업에 종사한 이들이 논하는 것이고 우리같이 평범한 국민들이 접근하기에 말도 뜻도 난해하다. 그보다 보기도 전에 어렵다고만 여겼었다.
그러나 정작 법이라는 게 우리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만든 것이라는 생각을 깊게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헌법 12(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을 그렇게 많이 듣고도 그 주권을 제대로 누려 볼 생각을 못 한것이다.

이 책은 제동씨가 처음 헌법을 접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지금 대한민국의 법이 체계를 갖추기까지는 선조들의 노력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 덕에 나라의 주권은 국민에게 주어졌고 또 그 법의 테두리 안에서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즉 법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고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더불어 제동씨가 느낀 그 감정, 헌법을 알아갈수록 보호받는다는 그 느낌을 나도 느끼고 있었다.

 

 

저는 헌법을 처음 읽었을 때 이렇게 토닥여주는 것 같았어요.
"당신 안전해야 해."
"당신 행복할 자격이 있어."
위로받고 보호받는 느낌이었어요. -p.19

 

우선 법을 말하기 전 우리 사회에서 제일 심각한 문제는 편견과의 싸움이다. 연예인이 무슨! 여자가 무슨! 저런 직업을 가지고 무슨!이라는 수많은 편견이 제동(그 제동씨 아님 ㅎㅎ)을 건다. 제동씨도 여태껏 그러한 편견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헌법을 알고 나선 더 당당해질 이유가 생겼다고 한다. 헌법 조항을 날림과 동시에 상대를 얼음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무기이자 빽인것이다. 별을 누구나 볼 수 있듯이 헌법도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임을 재차 강조한다.

멋들어지게 게다가 있어 보이게, 몇조 몇 항까지 완벽하게 외울 수 있으면 좋겠지만 중요한 건 어떤 내용이 있느냐는 것이다. 헌법에 이러이런 조항이 있음을 새기는 일말이다. 제동씨는 법 조항들을 읽으면서 가슴에 팍팍 와닿은 느낌을 살려 입담꾼답게 해석한다. 헌법 전문가와의 만남을 덧붙여 놓음으로써 관심도를 이끌어 내고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알비 삭스와의 대화는 참으로 인상적이었는데 헌법을 그 자체로 이해하고 변화가 필요할 때는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우리 선조들이 한 것처럼 후손들을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또한 누군가가 권력을 남용하여 국민들이 위험에 빠지는 일을 없게 하기 위함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1조 1항)

 

헌법 조항을 너여 조항(12), 사랑꾼 조항(자유와 권리), 비타민 조항(존엄과 가치), 빼빼로 조항(평등), 안녕히 계세요 조항(신체의 자유) 등 재미있게 해석한 점이 눈여겨볼만한데 머릿속에도 쏙쏙 들어왔다. 더불어 청소년 필독서로 지정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어제 큰 아이와 근대사의 주축이 된 여러 혁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고문 얘기를 잠깐 했었다. 지금 네가 이렇게 편히 지낼 수 있게 된 데는 그분들의 희생 때문임을 잊어선 안된다며 강조했는데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는다(12조 2)'라는 내용이 박정희 때 생긴 거라니 지독히도 아이러니하며 가증스럽다. 제동씨는 이 조항을 음덕 조항이라 붙여놓았다. 평소 음덕이란 단어를 잘 쓰진 않지만 이 조항에는 너무나 잘 어울리는 말이다.

특이해서 울컥한 조항도 있었다.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362항)'라는 것으로 헌법에 모성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보니 더 보호받는 느낌이랄까. 제동씨도 이 조항이 사랑스러워지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하고 개인적으로 바라본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옳음과 옳음의 싸움이라는 말이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린 게 아닌 너도 옳고 나도 옳지만 더 옳은 일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자세! 이건 너무나 와닿는다. 법과 통합은 이상[理想]이 아니다. 조금만 더 신중하다면 막말과 주먹다짐으로 싸우진 않을 텐데 하며 그분들을 떠올렸다.

뭐니 뭐니 해도 제동씨 의견에 가장 공감한 건 투표 연령을 낮추자는 것이다. 정치와 경제는 생각만 해도 지루하고 낯선 분야이다. 그렇지만 아이들에게도 투표권이 주어진다면 관심분야가 확장될 수 있다. 유관순 열사도 당시 열여섯이었고 4·19혁명 때도 중고등학생들이 목소리를 높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아이들에게도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다면 자신들을 위한 교육정책이나 교육감에 대해서도 의견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성인이 되면 점점 사회와 친해져야 한다.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34조 1항)'라는 조항에 공감하기 위해서는 노동과 경제에 관한 법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예전에 읽은 [라곰] 책에서 스웨덴의 세금에 관한 국민들의 인식을 읽고 적잖은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다. 납세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긴 하지만 억울한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무상교육이나 사회 기반 시설 확충, 노인복지 등으로 내가 낸 세금이 쓰인다는 사실에 무게감을 덜어내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 시가 참 위로가 될 줄이야~^^>

 

올바른 국가는 국민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국민 개개인이 법에 무지하면 법을 아는 이들의 손에 농락당할 수밖에 없다. 제동씨가 말하는 기대사는 삶의 중요성을 느끼며 함께 잘 사는 사회를 위해 깨어 있어야겠다. 그리고 하나더 길냥이가 싫으면 밥을 주면 된다는 제동씨의 논리(?)처럼 사람들의 시선이 좀 부드러워지면 좋겠다. 진심! 길냥이에게 당당하게 밥을 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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