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겠어요, 이렇게 좋은데 - 시시한 행복이 체질이다 보니
김유래 지음 / 레드박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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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겠다. 이번엔 우붓이다.
인도 오르빌의 환상에서 겨우 빠져나왔는데 저녁 바람을 맞고 걸으니 그곳의 바람 냄새가 더 궁금해진다.
나도 울어보고 싶다. 툭하면 우는 유래씨(저자의 이름이다. 발음하기도 좋고 예쁘다)처럼 자연 앞에서 할 말을 잃은 채 가슴 가득 차오르는 감동을 맛보고 싶다.

워킹맘에게 휴식이 주어질 때는 몸이 아플 때이다. 몇 년 전에 아파서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있다. 지금에서야 말이지만 난 그때 속으로 엄청 좋아하고 있었다. 드디어 내게 주어진 나만의 일주일. 그 황금 같은 시간이 미치도록 좋았다. 실컷 보고픈 책도 보고, 산책하고, 원하던 만큼 자던 그곳. 병실은 나의 천국이었다.

그만큼 우리에게 휴식은 몸에 이상신호가 생기고서야 찾아오나 보다. 저자도 마찬가지로 더 이상 몸이 견뎌내지 못할 지경에서야 일을 그만두고 우붓으로 향했다. 삶을 견뎌내고 자신을 찾기 위한 여정의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그녀의 선택은 옳았고 아름다웠다.

여행 에세이의 장점은 그곳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고 단점은 당장 떠나지 못하는 현실이 얄미워지는 것이다.
아마도 내가 독신이었다면 당장이라는 단어가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자신이 겁 많고 길치에다가 소심하다고 말하며 우붓 여행의 첫 스타트를 끊기 어려웠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두려움을 이겨내고 일주일을 머문다. 아쉬움에 울며 그곳을 떠났지만 우붓은 그녀를 다시 불러들인다. 이번에는 언니와 한 달을 머물며 그곳의 삶 속에 빠져든다. 그리고 세 번째는 언니와 남동생과 함께 한다. 얼마나 좋았으면 그곳을 그리도 자주 찾았을까. 하는 마음에 우붓을 열심히 찾아보았다.

우붓은 발리 중부에 위치해 있으며 울창한 밀림과 평화로운 라이스 필드가 어우러진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이다. 예술인의 마을로 불리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작품들로 인해 더 많은 감흥이 느낄 수 있으며 멋진 숙소와 먹을거리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이렇게 간단히 우붓을 서술했지만 실로 우붓의 풍경 앞에서만큼은 눈을 뗄 수 없었다.

 

 

저자는 우붓의 모든 일상을 이 한 권에 담아냈다. 서툴게 시작하였지만 그 서툶 속에서 우붓의 일상을 깊숙이 들여다보게 되었고 낯섦을 미소로 화답하며 우붓에 빠져들어간다. 곳곳의 풍경 하나하나에 시선을 빼앗기다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지만 그렇게 자신의 내면을 찾아간다.

첫 스타트는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이었다. 낯선 곳에서 조금 익숙한 풍경은 두근거림을 잠재울 수 있다. 그리고 서서히~~ 천천히! 우붓의 땅 위에 자신의 발걸음을 새겨나간다. 그림 수업을 들으며 긴장의 끈을 내려놓게 되고, 명상과 요가 수업에 참여하며 친구도 사귄다. 우붓의 교통수단인 오토바이도 잠깐 빌려 타보기도 하고(결국 타고 길을 나서지는 못한다.) 진정한 하이킹의 맛도 느끼게 되고 래프팅의 스릴도 알게 된다. 심지어 폭우를 만나기도 하고 원숭이에게 머리채를 잡히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익숙지 않은 생명체다. 그나마 도마뱀 찌짝이는 익숙해졌지만 나는 바퀴벌레와 왕거미는 줄행랑치게 만드는 것들이다.

그녀는 우붓에서 살고 싶을 만큼 그곳 향기에 취한다. 최대한 자연에 가까운 주변 환경, 그리고 소박한 사람들, 저자와 비슷한 이유로 이곳을 찾은 이들의 모습에 매력을 느끼지만 그곳 사람들의 속 사정을 들여다보며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도 알게 된다. 어딜 가나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비슷한 것이고 진정 내 삶이 그들의 삶보다 더 낫다고도 할 수 없으며 각자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는 점이다.

자연이 보이기 시작하면 겸손해지게 되어 있다. 쉬는 날 뭐 하냐며 묻는 말에 새소리를 듣는다는 현지인의 대답이 초라하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가끔 브레이크를 걸고 쉬어야 한다. 저자처럼 낯선 곳으로 떠나지 못한다면 가까운 곳에서라도 자연을 느껴보자. 오늘을 위로받고 내일의 마음가짐을 달리 가져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앞전에 심리 서적을 읽었다. 그 책 말미에도 명상을 추천하고 있어서인지 우붓에서 명상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던 영국 여성이 뇌리에 남는다. 내면의 나를 스승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머리가 맑아질 것만 같다.
어쩌겠어요. 이렇게 좋은데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여행은 짜릿한 것이다. 당장 우붓은 못 가지만 여름도 지났으니 이제 다시 캠핑을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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