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걸어도 나 혼자
데라치 하루나 지음, 이소담 옮김 / 다산북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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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
유미코가 걷듯이 나도 걷고 난 후의 편안함을 안다.
작년 겨울부터 시작된 걷기는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되었다.
, 혼자 걸어야 한다. 걷고 걸어 제자리로 돌아갈 때쯤이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낀다.
그래서 유미코의 걸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소설은 두 여성의 삶과 우정을 그려나가고 있다. 저자는 여성들도 우정이 가능함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저자가 어려서부터 자주 들어왔다던 '여성에게 진정한 우정은 성립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여러 번 들어온 것 같다. 사회 통념 속에 갇힌 약자로 억압받고 무시당해온 것도 모자라 시기와 질투라는 감정은 여성에게 더 치우쳐져 있다. 그래서 이런 말도 나온 게 아닐까.

소설 속에서는 각자 다른 삶을 살다 이웃으로 만난 두 여성이 등장한다. 결혼했지만 남편이 사라져버린 유미코와 독신으로 자유분방한 연애관을 지녔으나 일하던 상사에게 스토킹을 받고 있는 카에데가 중심인물이다. 지나치게 절제하던 삶을 살던 유미코와 지나치게 쿨한 삶에 진정한 사랑마저 떠나보낸 카에데이지만 그녀들에게 공통점이라면 혼자이고 나이도 한 살 터울로 비슷하고 그리고 이제 직장이 없다는 점이다.
카에데가 먼저 살던 낡은 아파트에 유미코가 이사를 오게 되면서 둘은 서로 식탁을 공유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유미코의 카레 냄새에 이끌린 카에데는 그녀의 배고픔만큼이나 누군가가 그리웠고 낯선 이에게 문을 열지 않을 것 같던 유미코도 마음의 빈자리가 아팠기 때문이다.

언제든 갈 수 있다고 믿었다. 언제든, 어디든 갈 수 있다고 믿었다.
동시에 어디로도 갈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자만하면서 그 무엇도 될 수 없다고 두려워했다. -p.96

그렇게 엮인 두 사람은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늘 두려움에 갇혀 선뜻 나설 수 없던 삶에 이제는 움직일 이유가 생긴 것이다. 사라져버린 유미코의 남편의 생사를 확인하는 일이 우선이긴 했지만 두 사람에게는 변화가 필요한 시기였다.
여행을 떠나보면 서로를 더 깊이 볼 수 있다. 조금은 가리고 덧씌워질 수밖에 없는 SNS의 일상처럼 가려진 면들이 여행지에서만큼은 허울을 벗는다. 그러나 섬 여행의 낭만은 유미코의 남편에 얽힌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깨진다. 애초부터 성향이 달랐던 두 사람은 결국 각자의 여행이 되고 말지만 그만큼 각자에게 가져온 변화는 진정한 우정의 토대가 된다.

일본 특유의 담담함을 유지하고 있지만 일본의 사회상과 그 속에서 비치는 여성상을 엿볼 수 있다. 사회통념상 보통과 평범의 경계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그녀들의 모습은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그녀들은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그것은 둘이라서 가능했다. 삶 자체에 무엇이 정상적이고 더 나은지 따져 묻는 일은 무의미함을 알지만 사회통념과 관습이 부드러워지기까지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무엇보다 유미코의 성장기에 가슴을 쓸어내렸고 유미코와 시어머니와의 독특한 관계는 참 인상적이었다. 우정은 여기저기 존재할 수 있음을 간헐적으로 보여주는 장치 같은 느낌이랄까.

인생의 반을 살았어도 여전히 사회 가장자리를 맴돌고 있는 이들이 많다.
쉽게 누구에게 맘을 내주는 일이 서툴고 불안한 현대인지만 우리는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한 인간이다.
인간을 굳이 사회적 동물로 정의 내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겠다.

원제는 [길동무가 있어도, 나 혼자]라고 한다. [같이 걸어도 나 혼자]로 수정함으로써 쓸쓸함이 덜어진 것 같다.
같이 걸어도 혼자인 인생이지만 함께 걸을 누군가로 인해 인생도 나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지금의 나와 그녀들의 나이가 비슷해서일까. 주변인들을 돌아보게 되었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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