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기담
전건우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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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푼 꿈을 안고 모여드는 곳, 대도시!
한평 남짓한 공간에서 꿈을 꾸는 청춘들이 잠시 머물다 가는 곳쯤으로 여겨지던 곳. 물론 언급한 이미지는 예전 고시원의 모습이다. 고시원이란 공간이 공포물의 소재로도 전혀 손색이 없어진 데는 우리 사회가 그만큼 희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처럼 고시원 생활은 경험이 없다. 그러나 매체를 통해 지금 그곳으로 모여드는 이들의 모습이 확실히 달라진 건 안다. 고시생보다 이 사회와 어울리지 못한 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조용히 숨죽이며 사는 곳. 그곳을 벗어나기까지 그날을 기약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하는 곳쯤으로 여기고 있다.

원래 공포물을 잘 못 본다. 특히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고 주로 심야 독서를 즐기는 편인데 등골 오싹한 책은 체질상 오래 잡고 있지 못한다. 이 책은 꼭 읽어야 할 이유가 있었기에 맘 다잡고 펼쳤다. 그러나 역시 한 챕터를 끝내고 덮었다. 그날은 태풍 솔릭의 영향으로 지나치게 창문은 흔들리고 있었고 바람길 코너에 자리한 3층 집은 바람소리가 마치 귀신 울음처럼 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주말 낮에 다시 책을 펼쳐 들 수밖에 없었다. 원래 이야기는 음산한 분위기를 몰고 가는 초반이 무서운 법이라 뒤로 갈수록 무서움보다는 아픔이 더 느껴졌다.

이곳 고문 고시원에도 방호수로 불리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공동주거공간이지만 철저히 외롭게 살아가는 이들은 저마다 각자의 사연으로 이곳에 떠밀려 왔다.
공시생, 외국인 이주노동자, 벌써 이력서만 백 번째인 남자, 사업 실패로 이미 호적이 지워진 남자, 죽어 마땅한 이들을 죽이는 킬러 여고생 등 그들은 숨소리마저 죽인 채 서로의 동선을 달리하며 지나친다.

처음부터 고시원 터는 화가 끊이지 않았고 소문은 소문을 덧입는다. 재개발을 앞두고 건물은 거의 버려지다시피 하다보니 음산한 기운이 절정이지만 귀신보다 미래가 더 두려운 이들에겐 그곳마저도 절실한 공간이 된다.

이야기는 각 방주인들의 사연을 들려주며 엮어가고 있다. 시작은 303호에 사는 공시생 홍이 옆방 남자와 우연히 몇 마디 주고받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쯤 되니 옆방은 비어있는 방이고 그녀는 귀신과 대화를 주고받았다는 촉이 온다. 나 같으면 무서워서 다시 방문을 닫고 살았겠지만 홍은 닫힌 문들을 열어 재낀다. 왜냐하면 홍은 304호 남자가 좋아진 것이다. 그의 정체가 궁금해서 시작된 탐정놀이에 점점 오싹함이 밀려온다. 그러다 홍이 사라진다. 그녀인지 귀신인지 모를 비명소리만 고시원을 가끔 채운채.

가끔 서로의 뒷모습이나 곁눈질하던 이들이 짧게 인사말을 건네기 시작한 것도 고시원에서 유독 두드러지게 나쁜 기운을 뿜어내는 310호 남자 때문이다. 혼자였지만 함께 해야 한다는 걸 몸으로 느끼기 시작하자 그들에게 다시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다양한 요소들로 욕구 충족이 잘 되어있다. 분노를 초능력으로 해결하고, 무협소설의 고수 같은 능력자도 등장하며, 죽어 마땅한 이들을 한방에 처리하며 약자가 느끼는 삶의 무게를 덜어준다. 사는 게 기가 막히고 말로 설명되지 않는 일 투성인데 초능력 좀 넣었다고, 말을 하는 고양이를 등장시켰다고 무리수를 두었다고 여길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나 스트레스 해소방에서는 걱정이 앞섰다. 아무리 요즘이 대리사회로 가고 있다지만 분노의 대상마저 대리라니. 섬뜩하다. 돈이면 뭐든지 다되는 세상에 자신의 분노를 타인을 통해 푸는 행위는 결국 더 큰 분노를 야기한다.

환경은 사람을 지배한다. 더구나 현대사회는 더욱 그러한 양상이 짙다. 우리네 삶이 고문 고시원의 한평 공간에 갇힌 건 아닌지 살펴야 한다. 고립은 더 무서운 공포다. 공문에서 떨어져 나간 ㅇ자처럼 인생도 살다 보면 중요한 무언가가 떨어져 나가거나 빼앗길 때가 있다. 공문과 고문이 주는 전혀 다른 이미지처럼 원치 않는 인생사에 놓일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한 평짜리 공간에서 더 나아갈 준비를 하는 이들도, 제 한 몸 누일 공간이 절실한 이들에게도 각자의 공간에서 편했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3.2평의 독방도 좁다고 인권침해가 어쩌고저쩌고 떠들며 유엔 인권위원회에 보고서를 제출한다던 이가 떠올라 피식 웃고 말았다.

아직 여름이 가지 않았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공포스럽고 음산하지만 사람 냄새 묻어나는 고문 고시원의 사연에 빠져보길 추천한다. 전건우 작가의 [밤의 이야기꾼들]과 [소용돌이]도 괜찮게 읽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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