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오기 전에 - 죽음 앞에서 더 눈부셨던 한 예술가 이야기
사이먼 피츠모리스 지음, 정성민 옮김 / 흐름출판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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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관련된 자서전은 그만 보고 싶었다. 그러나 아일랜드가 좋았고 영화인이라는 그의 이력이 나를 사로잡았다. 사이먼 피츠모리스는 아일랜드의 신예 예술가였다. 누구보다 영화를 사랑했고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그를 지탱하고 있었다.

삶은 예측할 수 없다. 행복을 질투하듯 불현듯 불행이 생을 감싼다. 운명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건 얼마나 큰 고통일까. 병이 가해 오는 통증보다 사랑하는 이들을 두고 떠나야 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다.

남들과는 다른 인생의 거리. 남은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긴 사이먼에게 그는 이방인 같은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다. 그에겐 모든 순간이 마지막 같다. 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시작으로 생명의 탄생과 죽음에 대한 고민을 해보지만 무의미하다. 이제는 눈앞의 상황들에 집중해야 한다. 놓칠 수 없는 순간들. 어쩌면 마지막이 돼버릴 순간들. 언제 무너져버릴는지 모를 지금에 대한 궁금증이 대신 들어찬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지금이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혹은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은 순간을 소중하게 느끼게 한다. 그래서 그에겐 매 순간이 설렘이다.

그는 추억하고 또 추억한다. 잠깐 엇나갔던 학창시절, 현기증 나던 첫 키스, 아버지와 함께 본 영화 대부, 영화를 위해 글을 쓰기로 결심한 순간, 그를 흥분시킨 베를린, 건축 현장에서 벽돌을 놓친 그 아찔했던 순간, 그리고 아내 루스를 만난 그 짜릿한 순간까지도 아름답다. 그가 기억을 추억하듯 남겨진 이들도 그를 추억할 것이다. 그래서 그는 멋진 아빠이자 남편으로 남기로 결심한다.

 

어느 날, 내게 선택지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 일도 없이 하루하루를 그냥 보내거나
무언가 시도하며 다시 삶을 살 수 있었다. -p.201

 

 

몸은 제 기능을 잃어갔어도 영화에 대한 열망을 버리지 않는다. 병을 이겨낼 수는 없었지만 문명의 수혜자였다. 눈빛을 읽어내는 컴퓨터로 시나리오도 집필하고 영화도 제작한다. 짧은 생을 선고받았지만 그는 더 살아내고 제작 현장에서 열정을 쏟아낸다. 기적 같은 일상은 아내가 있기에 가능했다. 늘 생기 넘치던 루스는 그의 인생을 더욱 빛내주었다. 그에게 다섯 아이를 선물하였고 언제나 든든한 지원자가 되었다. 게다가 사이먼을 둘러싸고 있던 단단한 가족애는 힘들었을 루스에게도 큰 힘이었다. 세상을 나누고 있는 우리라는 울타리는 서로에게 큰 힘이 되는 존재들임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세상과 사랑에 빠졌던 남자는 2017년  4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이먼은 죽어가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얼마를 더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했다. 그는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 시기가 언제든 우리는 죽는다. 죽음을 떠올리면 삶을 바라보는 자세가 달라진다. 인간은 늘 한계에 도전한다. 병을 이겨낼 수는 없었어도 삶의 테두리 안에서 그는 삶의 한계를 극복했다.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라면 인간은 불굴의 의지로 한계를 극복하는 유일한 존재라는 것이다. 삶과 죽음. 이 두 가지 선택지에서 우리는 살아야 한다.

마치 그의 글은 사진첩을 들여다보며 추억하듯 읽힌다. 영화인 다운 문체에 독립 영화를 본 듯하다. 주저리 나열하지 않은 문장들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저려오는 통증은 인생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깨달음이다. 그래서 한 인간의 생이 아름다워 보였다.

국내에서도 그의 투병기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적이 있었다. 영상에서 만난 그의 눈빛은 정말 살고픈 열망이 강렬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이름은 에밀리]라는 장편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이 가장 뭉클했다. 아이들에게 포기하지 않는 삶을 몸소 가르치고 싶었다던 그가 정말 자랑스러웠다.
검색 중 아내 루스의 책 [어쩌면 끝이 정해진 이야기라 해도]에 대한 리뷰를 보았다. 그를 지켜내는 동안 그녀의 심경이 어땠을지 느껴볼 수 있겠다. 그녀의 이야기도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라니 사이먼의 떠났지만 그는 가족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오래도록 추억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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