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하는 여자들
리비 페이지 지음, 박성혜 옮김 / 구픽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 중 하나이기도 한 이 소설의 제목이 문득 떠오른 것은 이 소설이 상실의 시대를 극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실의 대상이 그 무엇이든 추억이 사라진다는 건 서글픈 일이다. 더구나 그것이 누군가의 삶이자 지역 전체의 특별한 공간이었다면 말이다.

 

그것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까지도
우리는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어요.-책속에서


이곳 브릭스턴의 리도(야외풀장)는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재개발 과정의 수순을 밟고 있다. 낡은 것들은 돈이 되는 사업으로 바뀌어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용히 그런 변화에 이끌려간다. 어쩌면 무심한 이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어제 지나쳤던 상점의 간판이 오늘 바뀌어도 그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무심코 지나는 것처럼.

#로즈메리
여든여섯 살의 로즈메리는 아침이면 리도에 간다. 그녀에게 수영은 일상이자 추억을 회상하고 현재를 이어주는 징검다리와도 같다. 적어도 물 위와는 달리 물속에서만큼은 주름도 잊고 소녀가 된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 동안 그녀에게 리도는 그녀 자신이었다.
그런 리도가 흙으로 덮인 다는 사실은 그녀의 삶을 뺏기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동네 도서관에서 전단지를 손수 만드는 강단을 보인다. 전단지는 지역신문사의 호기심을 촉발하며 그녀를 지역신문 일면에 장식하게 한다. 기자인 케이트는 로즈메리와의 인터뷰를 위해 리도를 찾았지만 로즈메리는 그녀에게 뜻밖의 제안을 한다. 리도에서 수영을 하면 인터뷰에 응하겠다니. 그러나 로즈메리의 엉뚱한 제안은 한 여자를 변화시키고 그녀 자신도 구한다.

시도도 해보지 않고 물러나는 이들이 많다. 혹은 번거롭고 귀찮으며 안될 거라는 생각으로 포기한다. 하지만 로즈메리는 여든여섯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시도한다. 더불어 아직 세상이 인간적 도리를 지켜 주길 간절히 바랐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추억을 공유한다. 그녀 앞에 나타난 케이트와는 기자 이상의 감정을 공유하며 우정을 쌓아간다. 로즈메리는 케이트가 너무 늦지 않기를, 그리고 잃어가고 있는 것들을 놓쳐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케이트
기자라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게 케이트는 공황발작을 겪고 있다. 불안한 성장기를 지나 정착한 런던은 그녀를 위압감으로 짓누른다.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발작에 그녀 자신도 통제 단계를 넘어선듯하다. 하지만 로즈메리의 제안은 마치 마법과 같았다. 차가운 물이 그녀의 정신을 깨우고 서먹해진 언니와의 추억 속으로 데리고 간다. 그렇게 시작된 일상을 언니와 로즈메리와 공유하기 시작하자 점점 그녀의 삶에 생기가 돌게 된다. 어떻게든 리도를 살려야 한다는 의견에 많은 이들의 동참을 끌어내며 케이트는 진심을 다해 로즈메리를 돕기 시작한다. 로즈메리와의 우정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기 시작하자 그녀에게도 로즈메리처럼 강단이 솟아난다.

소설은 리도를 되찾기 위한 것이 주목적이었지만 팔십 넘은 노인과 이십 대의 여인도 충분히 친구가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미 거리에서 "실례합니다." , "미안합니다."라는 형식적인 인사말을 주고받으며 스친 적 있던 두 여인은 이제 함께 수영하고 함께 걷고 함께 싸워나가는 사이가 된 것이다.

잃어가는 것을 되찾아가는 과정은 눈물겨운 노력이 뒤따른다. 무엇보다 너도 나도 한마음이 되어 심적 호소를 끌어내야 한다. 시위와 무력충돌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런 감정 스트레스가 별로 없다. 현실을 잊고 한결같이 편안함을 느끼며 행복감을 만끽하면 된다. 로즈메리가 자신을 그리워하듯 쏟아내는 추억들 속에서 행복을 느끼며 진정한 인간관계란 무엇인지 배워가면 된다. 늘 무언가를 잃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분명 치유를 주는 이야기였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 애착심을 가지면 내가 오래도록 추억할 수 있는 공간이 자연스럽게 생겨날 것임을 깨달았다.

오랜만에 읽은 따뜻한 이야기에 수영장 귀퉁이에 앉아 발이라도 담그고 싶어진다. 아마도 어쩌면 바쁘다고 미뤄온 수영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차가운 물에 맑아지는 정신을 느껴보고 싶어진다. 한 여름의 더위를 식힐 야외수영장이라면 더 좋겠다. 책의 띠지 귀퉁이에서 영화화 예정작이라고 쓰인 문구가 더욱 반가웠다. 2019년에 만날 로즈메리가 벌써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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