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를 떠나보내며 - 상자에 갇힌 책들에게 바치는 비가
알베르토 망겔 지음, 이종인 옮김 / 더난출판사 / 2018년 7월
평점 :
품절


 

 

 

책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책장도 빈 공간이 사라지고 있다.그렇다고 책장을 더 늘리고픈 마음은 없었는데 책들이 숨을 쉬지 못하고 빽빽이 붙어 있는 것 같아 좀 덜어내야 하나 하다가도 막상 책을 덜어내려고 하니 움직여지지 않는다.

저자 망겔은 무려 3만 5천여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었으며 그의 서재는 누구나 탐낼 만큼 목가적인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개와 함께 헛간에 붙어 있는 탑에서 책을 볼 수 있는 자유로움에 상상만으로도 내 영혼이 달달해짐을 느낀다. 그러나 삶은 뜻하지 않게 흐른다. 그는 서재를 정리하고 아르헨티나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망겔이 책을 싸고 푸는 과정에서 느꼈던 책에 대한 회고록 같다. 어린 시절을 소환하여 들려주는 책에 대한 기억들과 사춘기 시절 그의 서재를 채워 간 책들, 그리고 그가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면서 사모은 책들에 대한 추억에 책들을 떠나보내는 아쉬움이 한가득 묻어난다.
이 책의 부제인 '상자에 갇힌 책들에게 바치는 비가'라는 의미가 전혀 과한 문장이 아님을 되새기게 된다.
이쯤에서 문득 먼 훗날 나의 서재를 정리하게 되는 날이 오면 나는 어떤 추억들을 떠올리게 될까.

저자에게 있어 독서는 모든 즐거움의 원천이었고 행위에 있어 합리성을 부여한다 말할 정도로 애서가이다. "나의 개인 도서관은 나의 등딱지다."라는 문장은 그의 책 사랑을 충분히 대변한다. 그래서 칠십평생 그의 영혼을 울리고 웃게 만든 책들을 정리하며 독자에게 들려준 이야기들은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책에 관한 이야기를 쓴 책들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책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게 큰 이점이다. 게다가 아직 만나보지 못한 책에 대한 정보는 더욱 반갑다. 물론 그의 언어는 그동안의 방대한 지식이 축적된 결과물로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문장도 있지만 인생의 멘토가 들려주는 책 이야기를 차근차근 듣는 마음으로 읽어내려갔다.

서재를 들여다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망겔은 책장에는 다양한 언어로 된 책이 언어별로 정리되어 있고 특정한 주제의 책들은 별도의 공간을 가지고 있지만 의외로 베스트셀러에 오른 작품들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책은 주로 소장하는 편이고 책을 빌려주기 보다 사주는 편이라고 한다. 책에서 읽은 흔적을 발견하는 일은 또 다른  즐거움으로 함께 한 책과의 추억을 소중히 함을 느낄수 있다.
밑줄을 그은 흔적, 포스트잇이 끼워져 있거나 가끔 영수증과 말린 잎들이 발견될 때면 추억이 생각나서 충분히 나도 공감하는 점이다.
그런 서재를 정리해야 하는 시점이었다면 수많은 감정들이 오갔을 것 같다. 일부러 콘텐츠를 쥐어짜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생각들이 꼬리를 물며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의 방대한 독서량에 있겠다.

"우리는 질문하기 위하여 독서를 한다"라는 카프카의 말은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는다. 그렇게 만들어 낸 질문들로 우리는 이해의 범위를 넘어서며 성장해간다. 그리고 현재 나의 감정들을 소설 속 인물과 결부시키는 과정은 내면을 성장시킨다. 저자도 프랑스를 떠나오면서 느꼈던 우울감은 복수와 분노, 절망과 상실이라는 복합적 감정을 떠올리게 했고 사라진 책들을 떠올리며 돈키호테의 사기당한 노인을 백번 이해한다. 더불어 물건을 잘 잃어버리던 그의 할머니는 이런 말을 남긴다.

"물건을 잃어버리는 건 그리 나쁜 일이 아니야.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즐기는 게 아니라, 현재 기억할 수 있는 것을 즐기게 되니까. 우리는 상실에 익숙해져야 해." - p.108

그는 좀 더 나아가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단어들이 문장으로 재현되는 과정을 이해시킨다. 그리고 재현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꿈과 현실과의 관계를 논하다 보면 결국 창작이라는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이야기는 반복되고 재구성되며 그때마다 달라진다. 그것은 번역이라는 작업과정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이런 과정들이 여러 권의 책을 떠올려보면 충분히 납득이 간다.
말뿐 아니라 글쓰기도 경계해야 함을 말한다. 그 예로 파라오는 글쓰기에 대한 기술은 자칫 지혜의 전달이 아니라 지혜에 대한 허세로 가득 찰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이 부분은 수많은 독자들이 한 번씩 곱씹고 지나쳐야 할 부분이다.
혹시 내가 많은 양의 독서를 근거로 허세를 부리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그러나 읽지 않는 국가는 쇠락한다는 말처럼 독서는 효과적인 저항의 존재임을 알아야겠다.

우리의 책들은 다른 사람들의 체험과 지식을 헤쳐 나가는 길 안내가 되어 줄 수 있고, 불변의 과거에서 얻은 교훈,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직관을 주기 때문이다. - p.218~219

비록 서재를 정리해야 하였지만 그는 국립도서관의 관장이 되어 그 아쉬움을 달랜다. 줄 곳 살아온 공간에서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도서관이 해야 할 의무에 충실하고자 한다. 지금의 모습이 그가 청소년 시절 보르헤스를 만남으로써 가능했다고 한다면 그는 엄청난 행운아다.

"영혼의 진료실"
어쩌면 이게 도서관의 궁극적 목표일 것이다. - p.224

문득 예전에 들은 라디오 사연이 생각이 났다. 남편이 보낸 사연으로 아내가 읽지도 않는 책을 사모은 다는 것이었다.
왜 읽지도 않는 책을 사 모으냐는 물음에 아내는 그냥 책이 집에 있으면 멋있고 언젠가는 읽게 되지 않을까?라는 얘기였다. 그런 아내가 불만인 남편보다는 아내의 솔직한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어찌 되었든 소유의 욕구가 책인것은 간접적 경험의 구매라고 본다면 다행스러운것이 아닐까. 지금쯤 사연 속 아내는 책장에 진열된 책을 꺼내보고 있을까.

나도 언젠가 내가 이 서재를 정리해야 될 때가 오면 감상문 한편 정도는 남겨놓고 떠나고 싶다. 망겔처럼 심오한 철학을 논할 자신은 없지만 담담하게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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