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언어 - 나무가 들려주는 세상 이야기
귀도 미나 디 소스피로 지음 / 설렘(SEOLREM)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생명의 탄생, 그리고 성장하고 진화하는 이 모든 과정을 그 누가 설명할 수 있을까. 인류는 생명의 기원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해오고 있지만 풀 한 포기, 작은 벌레 하나에 깃든 생명의 경이로움은 늘 놀랍고 의문투성이다. 나무의 언어라는 제목을 보면서 문득 몇 년 전 둘째 아이의 참관수업에서 본 실험 내용이 떠올랐다. 요지는 긍정의 말을 해 주어야 한다는 게 주제였지만 내겐 식물에게 나타난 반응이 더 놀라웠다. 똑같은 조건의 두 화분을 놓고 좋은 말과 나쁜 말을 들려주었을 때 나쁜 말을 들은 화분이 시들어 버린 실험 말이다. 그 결과에 식물이 귀가 있나? 식물도 감정을 느끼는 걸까?라며 멈칫했던 마음은 식물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로 옮아갔었다.

인류와 함께 한 나무는 긴 생명력과 그 거대함 때문에 신적 존재가 되거나 수많은 이야기의 소재를 낳기도 했다. 또한 인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 되어 수많은 설화가 전해져오고 있고 나무에 깃든 영혼은 상상력을 덧입고 신비스러운 이야기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비록 오래전부터 거친 인간들의 손에 무참히 짓밟히고 사라져갔지만 인간에게 있어 나무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기에 그만큼 또 소중히 여긴다. 그래서 저자는 나무를 이야기하고 싶었나 보다. 무려 12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힘겹게 버티고 있는 이 지구를 위해 우리가 함께 자연과 인간의 균형에 대해 통찰하고 고심해야 한다.

바쁜 청춘이 지나고 자연을 벗 삼은 일상이 좋아지게 되자 내게 생긴 새로운 습관이 나무 관찰이다. 걸으면서 바라보는 나무는 우리네 개개인의 삶 같다. 하나도 똑같은 형태가 없다. 도심 속나무는 제 한 몸 희생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칙칙한 색감과 갈라지고 벗겨진 나뭇결, 타들어가는듯한 나뭇잎을 보고 있자면 미안해서 쓰다듬게 된다. 그러나 숲속 나무들은 맘껏 청량함과 자태를 뽐내고 있다. 땅속 습기를 잘 빨아들여 기둥이 반지르르하고 나뭇잎은 빛난다. 덕분에 피톤치드가 온몸 가득 몸을 씻어내주면 일상의 스트레스도 희석되는 듯하다. 그만큼 나무는, 숲은 인간에게 힐링이 되는 장소이다.

책의 화자도 숲속 좋은 경관에 자리 잡은 주목이다. 이 책은 그렇게 철저히 나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것이 나를 잡아끈 이유이기도 한데 그만큼 어떻게 씌었을지 궁금했다. 설화나 역사적 사건, 그리고 철학적 사고들이 덧입혀져 있지만 그것은 다시 되돌아보니 인간사에 대한 비판과 닮아 있다. 태어나고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고 적당히 타협하고 지배하고 군림하다 잃어가면서 얻게 되는 깨달음과 삶의 이치 등은 결국 인간사의 기승전결 같은 구조를 보여준다. 삶은 계속되지만 영원한 건 없다는 중요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삶을 분석하다니, 그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삶이란 사는 것이고 계속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결국 삶에서 우리는 오늘을 찾고자 하고 내일을 잃지 않으려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p.236

생명의 탄생은 여성과 가깝다. 대자연을 어머니라고 표현하는 문구가 자연스러운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주목도 여성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녀가 태어났을 때 바라본 세상은 새롭지만 두려움도 교차한다. 엄마의 곁에서 다른 생명체를 알아가고 배워간다. 하지만 엄마가 떠나고 혼자가 된 그녀는 숲속의 여왕으로써 생존을 위한 방법을 터득해 나간다. 그것은 때로는 남을 속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도 해야 하는 고달픈 일이다. 엄마처럼 삶의 순응한 채 어떠한 노력도 없이 죽어가지 않기 위해 그녀는 스스로 강인함을 깨우쳐 간 것이다.


그러나 대지에 몸을 맡기고 있는 나무에게 있어 활동 영역이 자유로운 인간은 제일 큰 적이다. 그녀의 눈에 비친 인간은 파괴적이고 사악하며 이기적이다. 그들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벼든다. 종교도 사랑도 결국 욕망을 채우기 위한 싸움으로 전락하고 그들의 싸움에 종말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 인간들이 휘두른 도끼에 쓰러져 버리는 신세가 되었지만 끝난 줄로만 알았던 삶은 긴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살아난다.  뿌리의 생명력으로 밑동에서 다시 싹을 틔워내며 성장하고 또다시 역동의 세월 속을 지난다. 세상은 변화했고 그녀 앞을 지나쳐가는 인간들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파괴를 일삼던 인간들이 그녀 주위에서 휴식과 즐거움을 누린다. 그리고 오래된 주목에게 최상의 케어를 제공하고 있다. 그녀는 결국 인간을 용서한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것은 인류가 분별력을 찾았다는 명백한 징후로 보였다.-p 231

이 책은 친절하게도 각 장에 대한 저자의 부연 설명이 뒷장에 할애되어 있다. 각 장에서 드러나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를 들여다보면 자연의 경이로움과 그 속에서 삶의 이치를 배워 갈 수 있다. 그 경이로운 자연이 자꾸만 균형을 잃어가는 요즘이 안타깝다
.
태양이 유독 뜨거운 지금, 분명 정상적인 여름은 아닌듯하다. 인간뿐 아니라 나무마저도 힘들어 보여서 그 그늘 밑에서 자리를 잡기가 살짝 미안할 정도다. 자연도 그리고 우리네 삶도 적절한 균형을 찾아가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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