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의 재림
나하이 지음, 강지톨 그림 / 좋은땅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길들여진다는 단어를 오래도록 각인시키며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어린 왕자는 그 이야기의 끝이 모호한 데다 작가의 실종으로 인해 궁금증을 자아낸다. 내게 있어 어린 왕자는 지금도 소행성 B612를 쓸고 닦으며 잘 지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이렇게 생각을 펼치면 이보다 더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탄생하겠지만 개인적으로 틀을 벗어나는 건 원치 않았다.

저자 나하이는 만화가로 활동하신 분이며 현재는 여러 동화를 기획. 집필하시는 분이라고 한다. 음악도 편곡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곡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다. 변형이 많아 원곡의 느낌을 망치는 경우라면 대중의 호응을 얻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야기라면 적잖은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곧장 책을 받자마자 목차부터 살폈다. 다행스럽게도 낯설지 않은 단어들을 보며 틀을 유지하고 있음이 느껴져 내심 다행이다 싶었다.

성인이 되기까지 누구나 한 번쯤은 어린 왕자를 접한다. 초등 교과서에도 실려있고 연령대별로 나온 다양한 동화책과 영화 등의 콘텐츠로 누구나 한 번쯤은 접할 기회를 가진다. 읽은 지가 오래되었더라도 금발의 어린 왕자의 모습이나 그의 별 소행성 B612의 풍경은 익숙한 그림이다. 또한 보아 뱀 그림이나 양 그림도 친숙하다. 그러고보니 우연찮게 지난달에 어린 왕자를 다시 읽을 기회가 있었다. 초등 6학년 교과서에 실려있어 큰 아이에게 다시 읽어 주었는데 역시나 정서적 발육이 늦은 남자아이라서 그런가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전작에서 어린 왕자는 뱀에게 물려 스르르 모래 속으로 사라지는 것으로 끝이 났었다. 이 책은 그 결말을 그대로 이어받아 왕자가 다시 부활하는 내용이다. 의식이 돌아온 모래 위에서 자신을 향한 강한 의문은 끝도 없는 우주만 같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장미 생각에 슬퍼하는 사이 고슴도치를 만나 위로를 받고 사막을 적시는 단비에 몸을 맡기며 새롭게 태어난다. 그리고 어린 왕자는 그리움과 설렘을 안고 소행성으로 돌아간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더욱 살이 붙어 재미와 잔잔한 감동을 준다. 전작 못지않은 철학적 사유도 고스란히 전하고 있는데 특히 단락의 끝맺음을 시로 마무리하고 있어 메마른 감성에 온기를 더하는듯했다. 왕자의 때묻지 않은 정서에 어른들의 마음이 정화되듯이 말이다.

두고 온 장미가 그리워 돌아갔지만 장미는 남은 두 잎을 애처롭게 달고 있다. 장미는 지난날의 미안함에 울고 왕자는 생명이 다해 가는 장미가 안타까워 눈물을 흘린다. 그 모습은 마치 사랑할 때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잃고 나서 뒤늦게 후회하는 우리들의 모습 같다. 서로가 흘리는 눈물의 의미는 다르더라도 그리움이라는 공통분모는 더 나은 인생을 사는 에너지가 된다. 그런 왕자를 위로하며 등장한 번데기는 겉모습을 중시하는 현대인을 지적하고 이기심과 끝없는 욕심으로 모든 걸 끝장내버린 바오밥나무의 행동은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주위의 충고 따위는 무시하고 앞만 보며 냅다 달린다면 후회할 기회조차 오지 못할 수도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네가 버림으로 얻음을 알았더라면
작아짐으로 커짐을 알았더라면
낮아짐으로 높아짐을 알았더라면
- 바오밥 나무 중에서

 

 

 

전작에서 왕자는 여행 중에 여섯 행성들의 주인들을 만났었다. 왕자는 친구가 필요했고 그들을 다시 찾아간다. 조금의 변화를 기대한 마음은 실망감의 연속이다. 그들은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포기했다. 정해진 틀안에 갇혀 살며 때로는 자신을 속이며 산다. 적당한 현실 안주, 대충 그려나가는 삶, 본인이 믿는 게 최상이라 여기는 어리석은 어른들을 다시 한번 꼬집는다. 어린 왕자는 그렇게 설득을 포기한다. 그러한 모습들은 돌아온 지구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반짝이는 도시의 불빛이 아름답지만 않은 이유는 그 속에서도 진실을 잃고 헤매는 이들 때문일 것이다.

술주정뱅이가 자꾸자꾸 술을 마시며 기억을 지운다.

술 열여덟 잔에 지워지는 기쁨의 기억
술 열아홉 잔에 지워지는 행복의 기억
술 열스무 잔에 지워지는 사랑의 기억
- 술주정뱅이 중에서

여우를 찾아 도착한 사막에서는 여우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다시 만난 뱀은 진실인 듯 아닌듯한 말을 남긴 채 사라진다. 뱀을 찾아다니다 우연히 다시 만난 조종사 아저씨는 타는 갈증을 해결하는 게 시급하다. 어린 왕자와 오아시스를 찾아 떠난 길에서 여러 친구들을 만나며 뱀의 행방을 묻는다. 뱀에 대한 믿음이 과연 옳은 선택인지에 대한 물음이 끊임없이 되풀이되었다. 그러고 보니 인생도 이렇듯 무언가를 계속 찾아가는 여정 같다.

왕자는 여정을 통해 인간들의 복잡 다양한 감정들을 알아간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점점 어른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것처럼 말이다. 비록 배신과 거짓에 아파했지만 왕자는 희생과 믿음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얻음으로써 미소를 짓는다.
섭섭하지만 어린 왕자가 이제 지구를 다시 찾을 이유가 없을듯하다.  어린이의 순수성을 영원히 간직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어린 왕자의 새로운 삶을 응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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