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엄마
신현림 지음 / 놀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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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인생 경로를 순서대로 밟아 나가며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었지만 때론 입버릇처럼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힘들다는 말로 나 자신을 위로했다. 아이가 돌이 되기 전 프리랜서를 하며 올빼미 생활을 주로 하던 시절. 예민한 첫째는 부쩍 새벽마다 깨서 우는 일이 잦았기에 고단한 날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잠든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두려움이 밀려든 적이 있었다. 어느새 엄마가 되어버린 내 모습은 믿기지 않는 현실 같았고 오만가지 걱정은 거친 파도처럼 밀려왔다. 매 순간 시험을 치르는 기분과 씨름하고 육아와 일에 쫓기는 삶에 나는 방향을 잃고 겉돌았다. 그래도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위해 소설, 에세이, 육아서 등 닥치는 대로 읽긴 했다. 그런데 그때 난 왜 시 한편 읽어 볼 생각을 하지 않은 걸까. 그때 시를 읽었더라면 내 삶의 온기가 빨리 내려앉지 않았을까.

진정 고아는 아니어도
저마다 고아의 삶을 사는 건 아닌 지
이것이 왜 그런지 물으면서
봄 쪽으로 자꾸만 팔이 길어지고 있다. -p.24

호흡을 가다듬고 쉬어가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뒤처지면 안 된다는 두려움과 끝없는 자기계발의 압박에 놓여 있다 보니 잠시의 쉼도 맘 편하 않다. 그러나 책 한 장, 시 한 줄 들여다볼새 없는 일상이라도 마음을 잡아끄는 문장 앞에서는 멈칫할 때가 있다. 그 멈칫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시간을 좀 더 할애한다면 책이 좋아지고 시가 일상이 될 수도 있다. 알 수 없는 미래에 걱정을 안고 살기보다는 시 한 줄에 호흡을 가다듬고 슬프면 슬픈 대로 헛된 마음도 그냥 그대로 쉬이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그러다 보면 저자가 말한 대로 자연스레 봄의 기운에 팔을 길게 뻗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나와 같은 엄마들의 인생이 보인다. 저자의 시간 속에서 우리의 일상을 찾고 또 놓쳐버린 부분은 시로 위안 삼았다. 어려운 문장을 늘어놓거나 심오한 철학이 뒤섞인 문장 같은 건 없다. 저자는 엄마의 위치와 자식을 키우며 느낀 생각들을 편안하게 써 내려갔고 덕분에 조급함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었다. 엄마이기 이전에 딸이기도 한 내 모습에서 엄마의 마음까지 다시 헤아려봄으로써 일상의 무심함에 반성했다.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시들은 그러한 상황에 절묘하게 어우러져 울컥함이 밀려오기도 했고 자연스럽게 지인들에게 퍼나르기도 했다. 좋은 글을 만나면 왜 그렇게 나눠먹고 싶은지. 다들 처한 상황은 달라도 느끼는 마음은 비슷해서 다들 한마디씩 감상평을 늘어놓기도 했다.

간이 공항처럼 세월도 잠시 쉬어가면
앞으로 나아갈 내일이 더 또렷이 보이고
뒤돌아본 시간들은 더 아름답고 아쉬울지 모른다. -p.126

좋은 시 한편에 부는 미세한 봄바람은 꽁꽁 얼어버린 일상을 녹인다. 어쩜 그리도 문장하나로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놨다하는지 시인들의 재주에 시샘이 날 정도다. 제각각의 모습과 처한 상황이 달라서 책한권이 주는 감흥도 다를테지만 별 감흥 없이 덮어버린다면 안타까울것 같다.
쉽게 화내고 돌아서면 후회하고 작은 일에도 감동받아 울고 웃는 평범한 우리는 마음을 씻어주는 문장들 앞에서 쉼표를 발휘할 수 있다.
그리고 너무 완벽에 가까우려 애쓸 필요는 없다. 아이와 발맞춰 호흡하면 된다. 그래서 최소한 아이들에게 엄마라는 이름에 그늘은 두지는 말아야 한다. 우리의 미간 주름을 당겨줄 말 한 좋은 시 한편 읽으면서 생각을 더해보면 분명 내게 마음의 여유가 찾아올 것이다. 시와 가깝게 지내며 나에게 우아함을 더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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