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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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서점, 아일랜드, 앨리스. 이 단어들이 좋았다. 그래서  그냥 읽고 싶었다. 그렇듯 책을 선택할 때 특별난 고집은 없다. 간혹 실패까진 아니더라도 실망스러운 이야기도 있지만 난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책을 볼수록 고집도 줄어드는 것 같다. 내겐 그랬다. 어떤 책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요즘은 좀 뜸을 들이게 된다. 책도 분위기를 타고 그때의 기분의 흐름에 장단을 맞춘다. 그러다 보니 폭이 넓어지고 삶의 유연함도 생겨난 것 같다.

하지만 이 섬에 있는 서점의 주인 A.J. 피크리는 문학뿐 아니라 인생이 꽤나 까탈스럽다. 물론 누구나 처음부터 그렇진 않다. 인생에서 시련과 고통은 내면의 변화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이 책도 그런 주인공의 상처가 치유되는 길은 결국 사람뿐임을 전한다. 게다가 서점이라는 공간은 애독자들에게 더욱 끌어 모은다.

마냥 책이 좋아 재미를 느꼈던 시절, 그 행복했던 시절은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끝이 났다. 그 빈자리 곳곳에 삶에 대한 원망이 가득하다. 그 까탈스러움이 으찌나 유별스러운지 그의 문학적 취향이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런 취향이라면 서점은 곧 문을 닫을 것 같다. 신간 리스트 목록을 들고 찾아온 출판사 직원 어밀리아와의 언쟁에도 눈살이 찌푸려진다. 고집불통 영감 같은 무례함을 쏘아붙이고 홀로 남겨진 시간,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취하고 잊는 것뿐이다.
그러나 다음 날 훗날을 대비해 보관해오던 희귀본 책이 사라진다. 경찰의 수사도 진전이 없자 책 따윈 잊어버리고 일상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누군가 서점에 두고 간 아기로 인해 그의 인생이 다시 한번 전환점을 맞는다.

한 여인이 아기를 맡겼다. 그녀는 서점에서 아기가 잘 성장하길 원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낭떠러지에서 세상을 향한 마지막 한걸음을 내딛었다. 문학을 사랑하는 피크리는 그 부탁을 지나칠 수가 없다. 그래서 아버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쯤 되어서야 각 단락 앞부분에 짧은 글들이 이해가 되었다. 각 단편의 제목 아래 덧붙여진 말들은 단편을 유독 좋아한 A.J.F가 딸 마야에게 전하는 말이었다. 훗날 작가가 꿈인 마야에게 피크리는 훌륭한 선생님이자 삶의 멘토였음을 증명하였다고나 할까. 나는 너무 혼자만의 독서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반성도 되고 피크리를 닮고 싶다는 소망도 생겨났다.

피크리와 어밀리아의 씁쓸한 첫 만남 속에서 논쟁이 되었던 한 권의 책은 그들을 다시이어준다. 책이 피크리의 영혼을 다시 깨워주었다.
때로는 적절한 시기가 되기 전까진 책이 우리를 찾아오지 않는 법이죠.-p.119
서로 영혼의 조각을 끼워 맞추며 사랑을 키우는 동안 책방에도 다시 활기가 돌아온다. 주변 이웃들의 삶 속에도 서점이 자리 잡고 있다. 아내의 사고와 책도난 사건으로 만나 책으로 더 가까워지게 된 경관, 처형과 작가인 남편 그리고 서점이란 공간을 선물로 받은 마야는 책을 통해 각자 인생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그들의 시간은 섬주위를 잔잔히 돌며 아픔도 슬픔도 희석시켜가는 듯하다.

서점은 올바른 종류의 사람들을 끌어당겨. 에이제이나 어밀리아 같은 좋은 사람들.
그리고 난 책 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책 얘기를 하는 게 좋아.
종이도 좋아해. 종이에 감촉, 뒷주머니에 든 책의 느낌도 좋고, 새 책에서 나는 냄새도 좋아해. -p.308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그냥 끊임없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좋아서이다. 피크리의 방대한 독서량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아는 책 제목이나 작가를 지나칠 때는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나에게 베스트였던 책도둑이 퇴짜 맞는 걸 보며 그 노인분께 영화를 권하고 싶어진다.ㅎ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지적 가치를 온전히 혼자서만 끌어안기엔 수용공간이 부족하다. 결국 독서라는 외로운 행위는 사람과의 소통으로 풀어 나가야 한다.  거기에 덧붙여 내가 가진 지적 에너지를 수용하고 이해해줄 수 있는 영혼의 반쪽을 만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말이다.

피크리의 단편 사랑에 괜찮은 단편들을 찾아보고 싶어진다. 우리의 인생도 단편과 단편의 만남이 아닐까.
작가의 말처럼 인간은 섬이 아니다. 하지만 가끔 내가 섬 같다고 느껴질 때면 내 안에 머물 서점은 어떤 곳으로 비추어질까.
극장에 카페테리아까지 갖춘 아늑한 동네 서점이 인생의 로망인데... ㅎ이 책이 앞으로 내 인생의 끄트머리에서 색다른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으면 좋겠다. 좀 더 사람들이 책과의 연을 이어나갔으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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