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의 책을 꾸준히 만나볼 수 있었던 독자로써 배크만이 참 영리한 작가라는 생각에 동의한다.
[브릿 마리 여기 있다]에서 옮긴이가 마지막 장에 베어 타운에 관해 언급했을 때만 해도 하키 이야기일 거란 생각에 그쳤었다.
손에 들려있는 가제본의 표지를 보면서도 성장소설인가 했었다. 그만큼 소설의 분위기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번 소설은 세계적 이슈로 떠오른 미투 운동과 연결고리를 짓고 있지만 더 큰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 위에 군림하고 있는 부의 계층을 타고 자연스럽게 형성된 강자와 약자, 하키로 인해 굳어진 남성우월주의 그리고 집단이기주의에 빠져 진실을 외면하는 어리석은 인간들의 모습에서 비슷한 사건들이 필름처럼 지나가서였을까, 그만큼 강렬하게 다가왔다.

베어 타운에서는 침묵과 수치심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 p.50


작은 소도시 베어 타운은 이제 하키팀 하나에 운명을 걸었다. 산업화의 피해는 고스란히 소도시들이 껴안는다. 사람들은 떠나가고 희망의 불씨가 꺼져가듯 사람들도 의욕을 잃어간다. 하지만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하키였고 그들은 이미 하키 공동체로 엮여있다. 그리고 지금 그들에겐 무엇보다 절실한 건 우승이다. 어린 선수들조차 하키가 전부인 것처럼 인생의 모든 걸 내건다. 마치 어른들이 가르치지 않아도 저절로 배워진 관습처럼.

싸움 자체는 어렵지 않다. 그걸 시작하고 멈추는 게 어려울 뿐이다.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거의 본능적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싸움을 벌일 때 까다로운 부분은 첫 방을 날리는 용기와 이기고 난 뒤에 마지막 한 방을 참는 자제력이다. -p.468

마을의 운명을 거머쥔 중요한 하키 경기를 앞두고 팀내 에이스 선수의 성폭행 스캔들이 터진다. 하지만 사건이 터지기 전 하키 내부는 시끄러운 상태였고 소도시의 특성상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연결고리도 껄끄럽다. 게다가 가해자는 지역 유지의 아들이자 촉망받는 선수다. 이쯤 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수히 보아왔던 시나리오대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현상으로 흐르다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는 상태로 전락한다. 그래서 이야기는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심기가 불편했다. 피해자를 궁지로 몰고 소음을 차단하려 한다. 결국 남는 것은 무거운 침묵뿐이다. 침묵 속에 거짓은 진실로 둔갑하기도 한다.

스포츠가 주는 찰나의 힘은 엄청난 에너지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똘똘 뭉치기라도 한 듯 진실을 외면하려 한다. 단지 그들이 살기 위해서. 가해자를 돌며 퍼져가는 오염된 공기층이 두꺼운 장막을 치려는 사이 그나마 두 눈을 감지 않으려는 소수의 이들 덕분에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내가 말할 때는 입 다물고 있어! 염병할 남자들 같으니라고! 당신들이 문제야! 종교는 싸우지 않고 총기는 죽이지 않아.
그리고 씨발, 똑바로 알아두라고.
하키는 지금까지 아무도 강간한 적이 없어. 그런데 누가 그러는지 알아? 누가 싸우고 죽이고 강간하는지 알아?"
수네는 헛기침을 한다. "남자들?"
"남자들! 항상 염병할 남자들이 문제라고!" -p.446

"당신들은 마야에 대해 쥐똥만큼도 관심도 없지? 케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지?
왜냐하면 걔들은 당신들한테 인간이 아니라 그냥 값나가는 물건이니까. 그리고 케빈 이 마야보다 몸값이 훨씬 비싸고!" -p.451

사춘기 아이들의 철없는 모습보다 더 화가 나게 만드는 건 진실에 눈을 감아버리려는 어른들의 모습이다. 더욱이 사건에 대해 두 코치 수네와 다비드의 대화는 답답함을 몰고 왔다. 수네는 최선을 다해 다비드를 이해시키려 해본다. 그러나 다비드처럼 자신의 문제로 공감대를 끌어내지 못하는 이들은 사건의 핵심을  들여다보지 못한다. 얼마나 애처로운 일인가.

결국 우리가 서로에게 바랄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모든 걸 알 수는 없지 않느냐고 인정하는 그는 옆으로 비켜서 공간을 만든다. -p.495

배크만은 무거운 소재로 이야기를 끌고 나갔지만 가족의 사랑과 힘을 이야기했고 분노와 용서 그리고 용기도 그려내었다. 인간 본연의 속내를 잘 드러낸 그의 말들은 뇌리에서 빙빙 돌다 가슴으로 잔잔한 파동을 일으켰다. 마야의 한방이 자제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건 본인이 위선자임을 알아차린 케빈의 엄마 덕이었고 뒤집어 생각해보면 케빈의 엄마는 자식을 살린 셈이다.
이는 가해자 중 누구 하나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요즘 같은 세상에 내던지는 중요한 메시지가 아니었나 한다. 물론 케빈과 그의 아빠처럼 끝까지 위선자로 남을 사람들도 부지기수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론 오베보다 할미전이 좋았는데 베어 타운의 감동이 더 오래 남을 듯하다. 왜냐하면 난 엄마이고 딸도 있다. 나도 미라처럼 내 아이들을 모두 덮을 정도의 담요를 가진 상태는 아니지만 꾸준히 담요 사이즈를 넓혀보아야겠다.
마지막으로 배크만이 던져놓은 다음 이야기의 힌트를 곱씹으며 그가 돌아오길 기다리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